▲ JLPGA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안선주는 놀랍게도 타이틀스폰서가 없다. AP/연합뉴스 |
# 일본골프장 합법점거!
“한국 선수들은 차원이 다른 경기를 한다.”
지난 5월 한국의 이지희(33·진로재팬)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브릿지스톤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하자 ‘일본 여자골프의 간판 스타’인 아리무라 치에(25)는 탄식하듯 이렇게 말했다. 1998년 박세리의 미LPGA 제패와 함께 미국에서 “엄청난 실력을 가진 한국선수들이 몰려온다”고 놀랐는데 지금 일본에서 이를 능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도문제로 한류스타 연예인들에 대해 “한류건 K팝이건 모두 금지해야 한다”는 등 일본 내에서 망말이 계속되고 있지만 공정한 룰에 의해 실력으로 겨루는 골프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는 셈.
일본의 골프 한류는 1985년 구옥희(56)가 JLPGA 투어 첫 승을 거둔 이래 2010년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안선주 등이 34개 대회에서 15승을 합작하며 일본열도를 뒤흔든 것이다. 2011년 8승으로 주춤하는가 싶었는데 올해는 지난 8월 19일 전미정이 CAT레이디스 대회에서 시즌 3승(통산 20승)째를 수확하며 한국의 시즌 10승째를 올렸다. 아직 남은 대회가 13개나 있기 때문에 2010년 기록 경신을 노릴 만하다.
JLPGA투어는 2012년의 경우 35개 대회에 총 30억 엔(약 435억 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27개 대회에 4700만 달러(약 544억 원)가 걸린 미LPGA 투어에 비해 상금은 조금 뒤지지만 투어 수는 더 많다. 남은 13개 대회 중 9, 10월에 큰 대회가 몰려 있고, 최근 JLPGA에서는 대회마다 한국선수 5명 이상이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2012년 한국 초강세는 한층 심화될 수 있다.
▲ 박인비. 사진공동취재단 |
JLPGA투어에는 20여 명의 한국선수들이 뛰고 있다. 풀타임으로 뛰는 것은 물론이고 박인비, 신지애처럼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출전하는 선수도 있다. 이들은 일본투어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입을 모아 얘기한다. “미국보다 대회가 많고, 한국과 가깝고, 연습환경이 좋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불만도 있다. 한국에서 일본투어가 미LPGA에 비해 너무 저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언론보도 등은 물론이고 스폰서십도 큰 차이가 난다. 축구 등 다른 종목의 한일전에는 그렇게 열광하면서 일본 한가운데로 들어가 일본인들이 놀랄 만큼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한국선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대표적인 선수가 안선주다. 지난 8월 5일 메이지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잠깐 귀국했던 안선주는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이 너무 심하지만 시즌 중이라 제대로 치료도 하지 못하고 뛰고 있다. 올해는 상금왕 3연패가 걸려 있어 아파도 참으면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안선주는 지난 8월 24일 현재 세계랭킹 9위에 올라 있다. 안선주보다 앞선 한국선수는 최나연(4위·SK텔레콤), 양희영(7위·KB금융그룹) 두 명밖에 없다. 일본에서 안선주의 괴력은 유명하다. 데뷔 후 2년 연속 상금 1억 엔을 돌파하며 상금왕을 2연패한 것은 JLPGA 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15개 대회 만에 상금 1억 엔을 돌파한 것도 역대 최단시간 기록.
안선주의 활약은 대회별 상금액을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아예 일본투어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 안선주는 2년 반 동안 64개 대회에서 총 3억 3420만여 엔의 상금을 벌었다. 대회 당 523만 엔꼴이다. 이는 전설적인 선수인 후도 유리(348만 엔·역대 총상금 1위)나, 일본이 자랑하는 미야자토 아이(478만 엔)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JLPGA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안선주는 타이틀스폰서가 없다는 점이다. 안선주는 유일하게 연간 1000만 엔(약 1억 4500만 원)의 조건으로 투어스테이지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사실 이는 서브스폰서 계약으로 타이틀스폰서가 생길 때까지 임시로 모자 중앙에 로고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미LPGA에서 뛰는 한 유명선수는 메인스폰서는 물론이고, 7~8개 서브스폰서가 있다. 인센티브가 상금의 몇 배이고, 한 서브스폰서 업체로부터만 5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받고 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일본투어 경시 풍토’와 더불어, 안선주의 외모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국내 기업은 안선주의 후원을 검토했지만 최고위층에서 “외모가 좋지 않다”며 덮어버렸다. 확실한 것은 한국여자골프의 남벌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안선주가 한국기업으로부터는 전혀 후원을 받지 못하고, 간신히 일본기업(투어스테이지)의 값싼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선주의 부친 안병길 씨는 “솔직히 아버지로 많이 미안하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여자선수들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과 성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