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도 큰 피해 입어…주가 조작 일당 낮은 증거금률 악용 불구 “리스크 관리 소홀” 지적
영풍제지 주가는 올해 1월 2일 기준 5829원에서 10월 17일 기준 4만 8400원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18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대량의 매도 물량이 나오며 주가가 하한가를 맞았다. 영풍제지의 최대주주인 대양금속도 같은 날 오전 하한가로 떨어졌다. 주가 흐름에 이상을 감지한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19일 두 종목 모두 거래정지 조치를 내렸다.
금융당국에서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의 조사 결과 영풍제지는 약 1년간 주가조작 세력에 의해 시세가 조종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이 여러 계좌를 이용해 매일 조금씩 주가를 상승시켜 11개월 동안 주가를 12배 이상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주가 조작 일당이 체포된 다음 날인 18일 공범들이 개장과 동시에 주식을 대량 매도해 영풍제지와 대양금속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세 조종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피의자 4명은 지난 10월 17일 체포됐고, 20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0월 26일 거래가 재개된 후 영풍제지는 연일 하한가로 직행하고 있다. 거래정지 전 3만 3900원이었던 영풍제지 주가는 11월 2일 개장하자마자 또 다시 하한가로 직행해 4010원으로 곤두박칠쳤다.
영풍제지 주가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키움증권의 손실 규모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주가 조작 일당들이 시세 조종 과정에서 사용한 계좌는 100여 개에 달하는데, 대부분 키움증권 계좌다. 이들은 시세 조종에 키움증권의 낮은 증거금률을 악용했다. 키움증권은 영풍정지 거래정지 다음 날인 10월 20일 공시를 통해 “영풍제지 하한가로 인해 고객 위탁 계좌에서 미수금이 발생했다”며 “20일 기준 해당 종목의 미수금 규모는 4943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키움증권의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 영업이익인 4955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키움증권은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하겠다고 했지만 영풍제지가 연일 하한가로 직행하면서 미수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안영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24일 “미수금 규모와 증거금률(40%)을 고려해 단순 계산 시 총 투자금은 약 8238억 원으로 추정되며, 거래정지 해제 이후 작년 말 주가로 회귀한다면 회수가능금액은 약 1285억 원이다”라며 “추가적인 변제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반대매매를 통한 최대 손실액은 3658억 원”이라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이 리스크 관리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타 증권사들은 영풍제지가 특별한 호재 없이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니까 선제적으로 증거금률을 100%로 올렸는데 키움증권만 40%를 유지하다보니 주가 조작 세력들에 활용이 됐다”며 “키움증권이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증권사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리스크 관리를 안 하는 상태에서 공격적으로 영업을 한다면 손실이 최대로 발생할 수도 있다”며 “키움증권은 증거금율을 낮게 유지해서 주가조작 세력들이 키움증권으로 꼬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영풍제지 주가가 급등하자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 7월까지 영풍제지의 미수거래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과 8월 영풍제지를 각각 투자주의종목‧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주가가 급락한 10월 18일까지 미수거래 증거금율을 40%로 유지하다 거래가 정지된 10월 19일이 돼서야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 조정했다. 미수거래 증거금률이 40%라는 것은 10만 원짜리 주식을 사기 위해 4만 원만 내고 나머지 6만 원을 증권사에서 빌려 주식을 매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키움증권은 늦은 대응으로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큰 피해를 줬다. 키움증권은 지난 4월 일어난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때도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영풍제지 사태까지 더해져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키움증권은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영업을 해서 성장을 한 증권회사인데 두 번이나 신뢰를 잃어 고객 이탈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손실뿐 아니라 고객들의 신뢰 상실 등 추가적인 손실을 감안하면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이런 식의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것이 벌써 두 번째니까 위험 리스크 관리 시스템 자체를 점검해야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지금까지 키움증권이 쌓아올린 명성이 있기에 급격하게 고객 수가 감소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겠지만 서서히 고객 이탈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키움증권은 개인투자자들이 기여를 많이 한 증권사인데 너무 이익에만 치중하다 보니 고객 보호에 소홀했다.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선제적으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도 영풍제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의 노후자금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3월 말 기준 영풍제지 주식 5만 9891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영풍제지 전체 지분의 0.27%다. 국민연금은 특정 종목 등 세부 내역에 대해 6개월 이전까지 정보만 공개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확한 보유 주식 규모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영풍제지 주가가 연일 폭락하면서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공시된 것 이외에는 개별 종목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가 키움증권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과 국민연금까지 영향을 준만큼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현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자본시장에 이렇게 주가 조작 세력들이 계속 개입되는 것을 보면 자본시장법이 허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주가조작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금융당국의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키움증권 차원에서의 리스크 관리도 필요하지만 증권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한 이유에 대해 키움증권 관계자는 “거래소 규정에 의하면 종목별 증거금률은 증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데, 영풍제지의 재무구조가 양호하고 유동성도 풍부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한가가 지속됨에 따라 미수금 전액을 회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반대매매가 일부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체결 주수가 많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더욱 강화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업무 프로세스 개선, 조직개편 및 전문인력 확충 등의 리스크관리 역량 강화를 하겠다”며 “키움증권은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투자자 보호를 위한 모든 사항을 철저히 재점검해 보다 촘촘하게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가 조작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감원 차원에서 사전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났을 때 얼마나 그 행위를 빨리 잡아내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실질 조사인력을 증원하고, 시장정보 분석 능력 제고, 유관기관과 협업을 강화해 불공정 거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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