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3’ ‘엘리멘탈’ ‘스즈메’ 모두 비수기 개봉…성수기 대작과 경쟁하면 관객수 출혈 불가피
극장가를 찾는 관객이 많은 시기와 적은 시기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전반적으로 극장 관객이 줄어들었지만 성수기에는 그나마 관객들이 꽤 극장을 찾아온다. 이는 지난 1년 동안 월별 100만 명 이상 관객 동원 영화를 봐도 알 수 있다.
11월은 전형적인 비수기다. 2022년 11월에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203만 2199명)가 마블의 저력을 입증했고, 한국 영화 ‘올빼미’도 112만 7316명의 관객을 동원했지만 여기까지였다. 단 두 편만 100만 명 이상 관객의 선택을 받은 것.
12월부터 겨울 성수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2022년 12월에는 관객들이 ‘아바타: 물의 길’(731만 3149명)에 집중되면서 ‘올빼미’(209만 5451명)와 ‘영웅’(148만 7679명)까지만 100만 관객 고지에 올랐다. 1월에도 겨울 성수기가 이어졌다. ‘아바타: 물의 길’(309만 2106명)이 흥행세를 이어가 1000만 관객 대열에 이름을 올렸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198만 9173명)의 조용한 돌풍도 시작됐다. 흥행세를 이어간 ‘영웅’(158만 9884명)과 ‘교섭’(148만 9069명) 4편이 100만 고지에 올랐다.
2월부터는 긴 비수기가 시작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164만 8196명)가 돌풍을 이어갔고 마블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137만 6484명)도 1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이 두 편이 전부였다. 3월에는 ‘스즈메의 문단속’(326만 5990명)이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이어갔지만 이 한 편만 홀로 100만 고지에 올랐다. 4월에도 ‘스즈메의 문단속’(183만 142명)의 흥행세가 이어졌고 ‘존 윅4’(159만 7373명)가 가세해 그나마 2편이 100만 관객 고지에 섰다.
공휴일이 많은 5월은 성수기와 비수기 중간이다. 어린이날 연휴가 있었던 올해 5월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393만 6453명),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162만 4933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55만 9739명), ‘범죄도시3’(122만 4178명) 등 4편의 영화가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참고로 ‘범죄도시3’는 5월 31일에 개봉해 하루 동안 무려 74만 844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개봉 이전에 벌써 48만 3334명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해 단 하루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시 비수기인 6월. 그렇지만 2023년 6월 극장가에는 ‘범죄도시3’가 버티고 있었다. 6월 한 달 동안 무려 874만 5222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도 6월에 개봉해 169만 173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렇지만 이 두 편만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영화계 최대 성수기가 시작되는 7월. ‘엘리멘탈’(408만 6918명)이 흥행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359만 4887명)도 흥행에 성공했다. 진정한 성수기의 시작점인 7월 26일 개봉한 ‘밀수’도 일주일 만에 197만 8231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성수기지만 이 세 편만 100만 관객 고지에 올랐는데 흥행 성적의 규모가 다르다. 두 편이 400만, 300만 고지를 돌파했고 ‘밀수’도 200만 고지에 근접했다.
8월 역시 성수기로 8월 9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345만 2681명)를 필두로 ‘밀수’(304만 3851명), ‘오펜하이머’(252만 5875명), ‘엘리멘탈’(128만 5652명), ‘비공식작전’(101만 3010명) 등 5편의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겼다. ‘달짝지근해: 7510’도 97만 436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00만 관객에 근접했다.
9월은 비수기 혹은 성수기다. 추석 연휴가 9월에 있다면 성수기지만 10월에 있다면 비수기다. 올해는 유난히 추석 연휴가 길어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이어졌음에도 ‘잠’(140만 9809명) 한 편만 100만 관객 고지에 올랐다.
추석 연휴가 이어지며 시작된 10월에는 ‘30일’(186만 1659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106만 3665명) 2편이 100만 고지를 넘었다. 추석 연휴에 개봉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9월에 94만 4241명, 10월에 96만 9784명으로 두 달 연속 아쉽게 100만 고지에 오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많이 극장을 찾는 성수기와 비수기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개별 영화의 흥행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2023년 흥행 순위 10위 안에 든 영화 가운데 성수기인 12월과 1월, 7월과 8월에 개봉한 영화는 4위에 오른 ‘밀수’와 5위 ‘더 퍼스트 슬램덩크’, 7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8위 ‘콘크리트 유토피아’, 9위 ‘아바타: 물의 길’, 10위 ‘오펜하이머’ 등 6편이다. 절반 이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우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1월 4일 개봉했지만 비수기인 2월까지 장기간 흥행을 이어가며 5위 자리에 올랐다. 성수기에 반짝 흥행한 영화가 아닌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며 장기간 상영으로 일궈낸 성적이다. 7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는 7월 12일 개봉했다. 7월은 성수기지만 실질적으로는 여름방학과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 마지막 주에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된다. 오히려 7월 초중순은 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라 비수기에 가깝다. 10위 ‘오펜하이머’는 여름휴가철과 연휴가 끝나는, 다시 말해 성수기가 끝나고 비수기가 시작되는 시점인 8월 15일에 개봉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성수기에 개봉해 흥행 10위에 오른 영화는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바타: 물의 길’ 등 3편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성수기를 피한 ‘범죄도시3’는 1000만 관객 신화를 달성했고 ‘엘리멘탈’도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흥행 순위 3위에 오른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비수기인 3월 개봉작이다. 2023년 5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4편 가운데 성수기 개봉작은 ‘밀수’ 한 편뿐이다.
아무래도 성수기에는 대작들이 한 주 간격, 심지어 같은 날 개봉해 출혈 경쟁을 벌인다. 경쟁에서 이기면 비수기 대비 큰 흥행 성공이 가능하지만 잘못하면 한 주 만에 개봉관 대부분을 내주게 된다. 특히 한국 대작 영화들이 성수기 개봉을 고집하는데 그 전략은 거듭 실패하고 있다. 영화만 괜찮다면 오히려 비수기에 개봉해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독주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 추석 성수기만 봐도 그렇다. 추석 연휴 하루 전인 9월 27일 ‘거미집’, ‘1947 보스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 대작 3편이 개봉했고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3일 ‘30일’이 개봉했다. 결국 승자는 ‘30일’이다. 성수기인 추석 연휴에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치고 나갔지만 연휴가 끝난 뒤 비수기에 홀로 독주한 ‘30일’이 결국 11월 3일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누적 관객수를 넘어섰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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