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어려워진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행복의 나라’…주인공 교체하는 ‘노웨이 아웃’
이선균이 유흥업소 등에서 대마초 등 마약류를 흡입하고 처방전 없이 마약 성분의 수면제를 복용한 혐의를 받으면서 그 후폭풍은 시간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당장 순제작비 185억원을 쏟아 부은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개봉이 불투명하다. 그보다 먼저 촬영한 영화 ‘행복의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촬영을 시작하자마다 주연 이선균의 스캔들이 불거져 주인공을 다시 찾아야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이선균 2차 경찰 조사 앞둬…‘마약 연류’ 자체로 거센 후폭풍
경찰에 입건된 이선균은 10월 28일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해 간이 시약 검사를 받았다. 당시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경찰은 이선균의 소변과 모발 등 검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감정 의뢰했고 11월 4일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소환해 조사한다. 경찰은 이선균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를 입증할 증언 및 증거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선균의 혐의도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마약 연루’ 사실로 피해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당장 거액의 자본을 투입해 촬영을 마친 두 편의 영화가 직격탄을 맞았다. 촬영이 진행 중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배우를 교제할 수 있지만 이미 모든 작업을 마치고 개봉 시기를 조율 중이었던 만큼 사실상 ‘해법’을 찾기 어려운 속수무책의 상황이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2023년 연말 혹은 2024년 초 개봉을 준비 중이던 작품이다. 이선균과 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순제작비가 185억 원인 블록버스터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공항대교에서 연쇄 추돌 사고가 벌어지면서 군이 비밀리에 개발한 특수 생명체가 탈출해 일어나는 아비규환을 다룬다.
이선균은 주인공인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을 연기했다. 주지훈과 더불어 영화를 이끄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인물. 편집해 분량을 축소한다면 영화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 있고, 그렇다고 다른 배우를 투입해 재촬영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특히 이 영화는 5월 열린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돼 주목받았다. 그 후광효과에 기대 개봉을 준비해왔지만 이선균 사태로 공개시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2021년 촬영을 시작해 이듬해 초 일정을 마친 영화 ‘행복의 나라’(가제)의 사정도 비슷하다. 영화는 현대사를 뒤흔든 사건 속에 휘말린 한 인물과 그를 살리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1000만 흥행작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하고 이선균과 배우 조정석이 주연을 맡은 기대작이지만, 뜻밖의 스캔들로 제작진은 물론 출연한 배우들도 피해를 입게 됐다.
#드라마 ‘노 웨이 아웃’ 하차, 촬영 지연 피해 극심
연예계 관계자들이 이번 이선균 스캔들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부분은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출연작을 결정하고 촬영에 임했다는 부분이다. 이선균은 내사를 받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을 때 법률 대리인을 통해 “사건과 관련된 인물로부터 지속적인 공갈, 협박을 받아와 이에 대해 수사기관의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언제부터 협박을 받았는지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마약류 투약을 빌미로 협박을 받는 등 위태로운 상황에서 드라마 ‘노 웨이 아웃’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까지 나선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안일한 대처는 결국 사태를 키웠다. 이선균이 주연을 맡았던 ‘노 웨이 아웃’은 오랜 기획과 제작 준비 끝에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뜻하지 않은 난관을 만나, 촬영 도중 주인공을 다시 찾아야 하는 처지다. 현재 배우 조진웅과 출연을 위한 막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들이 논란을 일으킨 주연 배우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귀책사유가 판가름 날 때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데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처럼 200억 원 가까운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작품은 더욱이 배우 한 명이 책임을 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다가 배우가 얽힌 스캔들로 작품이 소송전을 벌인다면 작품의 이미지 자체가 훼손될 수 있기에 손해배상 대처는 대체로 이뤄지지 않는다.
마약 혐의로 재판을 받는 배우 유아인 역시 촬영을 마친 영화 ‘승부’와 ‘하이 파이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말의 바보’까지 무려 3편의 주연으로 참여했지만 아직 이들 작품으로부터 손해배상과 관련한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광고 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모델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브랜드들의 경우 모델이 연루된 스캔들이 일어나면 즉각 광고를 중단하고 손해배상도 요구한다. 이미 계약서에서 모델 개인이 연루된 불미스러운 스캔들이 벌어질 경우 모델료의 몇 %를 위약금으로 배상한다는 등 세부 조항을 꼼꼼하게 명시하고 있기에 해결은 간단하다. 이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의 대처법은 사실상 느슨한 편이다. 때문에 최근 제작진 사이에서는 주연배우의 리크스로 인한 피해의 경우 손해배상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든 탑 스스로 무너뜨린 이선균
이선균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으로 출발해 200억 원대 영화를 혼자 이끄는 배우로 우뚝 섰다.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주역이 됐고,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자라는 역사도 썼다. 최근 출연한 SBS 드라마 ‘법쩐’의 회당 출연료가 2억 원에 이를 정도. 16부작인 ‘법쩐’ 한편으로 무려 32억 원을 벌어들인 스타다.
어렵게 쌓아올린 공든 탑을 스스로 무너뜨린 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이선균 자신이다. 외신들도 그의 마약 스캔들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기생충’을 통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됐고, K콘텐츠를 알리는 데도 앞장선 배우이기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버라이어티지는 이선균의 경찰 조사 사실을 알리면서 “이선균은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미국 배우 조합상을 받은 유명한 배우”라고 소개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마약에 보수적인 한국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선균의 경력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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