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성 측 “고액 이자 ‘앵커 프로토콜’, 권도형 책임”…권도형 측 “외부 공격으로 폭락, ‘폰지 사기’ 아냐”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0월 30일 열린 1차 공판기일에서 신 대표 변호인 3명은 연달아 총 1시간 48분 동안 신 대표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재 신 대표 변호인단은 20명으로 매머드급이다. 이날 검찰이 공소사실을 설명한 시간은 46분. 신 대표 측 반론 시간이 검찰의 두 배 이상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구체적인 반박이 이뤄졌다.
이날 신 대표 변호인은 검찰을 거세게 비판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검찰이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강압적으로 조사를 진행” “가상자산과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검찰의 잘못된 이해 혹은 이해 부족” 등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신현성 측 "앵커 프로토콜 전혀 관여 안해"
그런데 신 대표 변호인이 검찰 주장에 동조한 부분도 있었다. 테라 코인을 예치하면 연 20%에 가까운 이자를 주는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서비스 '앵커 프로토콜'에 관해서였다. 검찰은 앵커 프로토콜은 신규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는 '폰지 사기' 구조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테라 프로젝트 팀이 앵커 프로토콜을 통해 투자자들로부터 테라 코인 515억 개를 받았다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신 대표 역시 앵커 프로토콜은 지속 불가능한 상품이었다는 입장이다. 신 대표 변호인은 앵커 프로토콜을 콕 집어 "루나 폭락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신 대표 변호인은 "연 20%라는 지속 불가능한 이자율을 동원하는 바람에 앵커 프로토콜에 자금이 몰렸다. 앵커 프로토콜이 위험하다는 경고도 수차례 있었다"며 "이로 인해 테라 보유자들이 테라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서 폭락이 일어났을 때 불안감을 느껴서 같이 매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외부 공격이 더해져서 테라가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신 대표는 자신은 앵커 프로토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2020년 3월 테라폼랩스를 떠나 권 대표와 사업적으로 결별했다는 이유에서다. 앵커 프로토콜은 이보다 1년 뒤인 2021년 3월 출시됐다. 신 대표는 앵커 프로토콜과 관련한 유사수신법 위반 혐의 내용을 반박하지 않았다. 신 대표 변호인은 "권도형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며 공모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권 대표를 겨냥한 신 대표 변호인 발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신 대표가 2020년 3월 이후 테라폼랩스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권도형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고 적극 비판했다.
신 대표 변호인은 "테라 프로젝트 팀은 테라 수요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페깅(1테라=1달러 가치 고정)이 깨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며 "권도형이 신현성과 결별 이후 무리한 디파이 사업을 하면서 급격한 수요 변화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규제 범위 안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싶었던 신현성과 달리 권도형은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여러 금융 서비스를 하고 싶어 했다. 이와 관련해서 계속 충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결별 이전과 이후의 테라 프로젝트는 굉장히 다르다"며 "신현성이 관여하고 있을 당시 루나 가격은 안정되게 유지됐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2022년 5월 루나 폭락 당시에도 테라폼랩스 싱가포르 본사 지분 8.3%를 보유해 책임 소재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신 대표 변호인은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진의 모든 혐의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과 같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권도형 측 "앵커 프로토콜 문제 아니다"
반면 2020년 3월 이후 테라폼랩스에 남았던 직원 A 씨와 B 씨는 신 대표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A 씨와 B 씨 변호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앵커 프로토콜은 폰지 사기 구조가 아니"라고 적극 반박했다. 김앤장 변호사는 "A 씨와 B 씨는 앵커 프로토콜을 출시하면서 없었던 사기 범죄가 갑자기 생겼다고 믿지 않는다"며 "앵커 프로토콜은 문제가 아니다. 외부 공격으로 폭락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김앤장 변호사는 "앵커 프로토콜은 투자자 신규 유입이 없더라도 이자 지급이 가능하게 설계됐다"며 "차입자가 제공한 담보자산 가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청산돼서 환수는 보장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앵커 프로토콜 예치금과 이자 지급준비금 등을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지급준비금이 없어지면 이율이 떨어진다는 점도 공개돼 있었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앵커 프로토콜은 금전이 아닌 테라 코인을 받았다"며 "유사수신행위는 금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앵커 프로토콜은 현행 유사수신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은 유사수신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관련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앤장 변호사는 "A 씨와 B 씨는 앵커 프로토콜 설계나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책임 소재에도 선을 그었다. A 씨는 전산시설 인프라 유지보수 업무, B 씨는 개발 계획서에 정해진 내용대로 코딩 업무를 했을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90억 논란' 권도형과 김앤장 무슨 관계?
김앤장은 루나가 폭락한 2022년 5월 전후로 테라폼랩스 싱가포르 본사 법인으로부터 90억 원을 넘게 송금받아 논란이 됐었다. 통상적인 자문료보다 큰 금액의 성격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앤장 측은 언론에 "적법하게 자문료를 받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첫 공판기일에서 "김앤장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 출처에 관해 설명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소명이 안 된 것으로 봐서는 사건 경과에 따라 김앤장이 단순히 변호인인지 아니면 사건관계인인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앤장 변호사는 "A 씨, B 씨와 별도의 수임 계약을 맺었다"며 "영장 단계에서부터 밝혔다"고 해명했다.
권 대표 측과 김앤장의 관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앤장은 권 대표의 추징보전 인용결정 항고심과 재항고심 변론도 맡았다. 다만 권 대표 변론을 맡은 김앤장 변호사가 A 씨와 B 씨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다.
앞서 서울남부지법은 권 대표 재산을 추징보전해 달라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청구를 4월 21일 일부 인용했다. 추징보전액은 2333억 6109만 2749원이다. 추징보전은 피의자가 범죄로 얻은 것으로 의심되는 수익을 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권 대표는 추징보전 인용결정에 항고하면서 5월 19일 김앤장 변호사 선임계를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권 대표의 항고는 7월 18일 기각됐다. 재항고 역시 10월 12일 기각됐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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