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킨 부유층 학부형들이 여권을 위조하는 등 부정을 저지른 사례가 적발됐다. 지난 8월 20일 서울 상암동에 개교한 미 드와이트 외국인학교.(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
또한 이들은 조사를 받으면서도 “남들도 다 하는데 무슨 문제냐” “합법적인 국적취득인 줄 알았다”며 뻔뻔한 핑계만 늘어놓고 있어 검찰 관계자들이 진땀을 빼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일부 학부모는 벌써부터 대형로펌과 계약을 맺고 조사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외국인학교는 말 그대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나 장기간 해외에 머물렀던 주재원 자녀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모든 수업이 외국어로 진행되며 교육프로그램도 일반학교와 달리 진행된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외국인학교가 부유층 자녀들의 조기유학 창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신설 외국인학교가 등장하고 내국인이라도 일정 조건에 부합하면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학교 입학허가 기준을 살펴보면 내국인이라도 3년 이상 해외에서 거주하며 교육을 받았거나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외국국적이라면 입학이 가능하다. 물론 각 학교당 내국인 입학 제한 인원이 정해져 있지만 이를 준수하는 학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입학정원을 쉽게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내국인을 받아들여 정원의 80%가 내국인인 곳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너도나도 외국인학교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입학만 하면 어린 자녀를 홀로 타지에 보내지 않고도 외국어를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또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서 마치기 때문에 이들이 형성하는 인맥도 무시할 수 없다.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상류층 자녀들이라 여기에 끼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업료를 지불하고도 기를 쓰고 외국인학교에 입학하려고 하나 문제는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통 특정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됨은 물론이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언어능력테스트를 거쳐야 하며 귀화 신청에만도 짧게는 수개월에서부터 길게는 5년이 소요된다.
브로커들은 이 점을 노리고 부유층 학부모들에게 접근해 부정입학을 알선해왔다. 대부분은 지인의 소개를 받아 금액을 흥정하고 위조된 여권을 주고받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여기에 유학원도 연계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여권 위조해드립니다’ ‘국적 바꿔드립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부정입학 방법이 널리 공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브로커를 만나 1인당 2000만~1억 원만 건네면 순식간에 외국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남편의 사회적 신분을 고려해 대부분 아내가 국적을 바꿔 자녀를 입학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국적세탁의 주된 무대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였는데 일부는 한국 재외공관이 없는 내전 국가 지역의 여권을 만들기도 했다.
자녀의 국적을 바꾸는 경우에는 과테말라나 브라질, 시에라리온 같은 나라에서 사나흘씩 머물며 위조한 여권과 시민증을 받아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한국 국적을 포기하기만 하면 외국인학교 입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해당 나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도 여권을 받아 입학서류로 제출했다.
부모의 국적을 탈바꿈하는 것은 보다 쉬웠다. 학부모들도 재벌가 며느리, 딸이라는 신분도 잊은 채 오직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일념 아래 한 번도 가지 못한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도 불사했다. 전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아들 내외는 지난 6월부터 이민알선업체를 찾아 브로커와 접촉했다. 부인의 이름으로 온두라스 국적의 가짜 여권을 만든 이들 부부는 곧장 입학서류를 꾸몄고 올해 8월 결국 아들을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주의 고손자 A 군도 부모의 비슷한 방식으로 같은 학교에 입학한 정황이 포착됐다. A 군의 부모 역시 이민알선업체를 통해 니카라과 국적의 가짜 여권을 만들어 학교에 서류를 제출했고 입학허가를 받아냈다. 또한 1990년대 이름을 떨치던 거평그룹 전 회장의 아들도 같은 방식으로 딸을 입학시킨 것으로 드러나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다.
재벌가뿐 아니라 김앤장 소속의 변호사, 서울 강남 유명 성형외과 원장, 골프장 소유주, 투자업체 대표 등 40여 명이 1차 소환 대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이번 부정입학 사건에 정치인의 자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국회도 조사결과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인천지검 외사부 관계자는 “지금은 어떤 정치인의 자녀가 입학했는지 알려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앞서의 관계자는 “현재 서울 소재 외국인학교 3곳을 압수수색했으며 수사를 계속 진행해나갈 예정이다. 외국인학교라고 해도 외국국적의 여권만 확인하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확인을 해주지 않으면 정말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했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여권만 위조하고 한국에서 국적상실 신고를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입학취소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교과부나 해당 학교에 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다. 검찰은 권한이 없기 때문에 사후 조치는 해당 학교에서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부정입학이 확인되면 자격조건 미달로 입학이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않다”고 설명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