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 “무면허 의료행위” vs 한의사단체 “집속형 초음파 사용 금지 규정 없어”
미용의료기기를 이용한 피부 시술을 시행하고 있는 한의원들의 온라인 홍보 문구다. 이들 한의원은 고강도 집속형 초음파(HI-FU) 장비 등을 이용해 피부 탄력을 개선시키는 시술을 하고 있다. 한의원에서 HI-FU 등 미용의료기기를 이용한 시술을 받아봤다는 소비자들 중엔 피부 처짐이나 톤 개선, 모공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의 후기도 다수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의원의 미용의료기기 시술이 조심스럽다는 입장도 있다. A 씨(28‧여)는 “(한의사가 피부 시술하는 것에 대해)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험한 시술이 있으니 되도록 전문의한테 받는 게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B 씨(26‧여)는 “혹시라도 부작용이 생겼을 때 피부과 전문의가 대처를 더 잘할 것 같아 피부과 전문의한테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법원이 초음파기기에 이어 올해 8월 뇌파계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합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한의업계에서는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에 대한 제한이 대부분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미용의료기기 사용도 한의사의 면허 범위 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미용의료기기 개발 근거가 현대의학에 기반한 것으로 한의학에서 미용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학문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최근 서울의 한 한의원 관계자가 관할 보건소에 한의원에서 미용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되는지 묻는 민원을 접수했다. 보건소 측은 민원인에게 “의료법상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의사와 한의사 간 구분하는 규정이 없고,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한의사는 레이저, 고주파, 초음파 및 단순 자동진단 의료기기 사용은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답변해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보건소 관할구청 관계자는 “지난 22일 서울시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질의했고 답변에 따라 처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한의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 회원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의원에서 미용의료기기 장비 사용이 가능한지 묻는 글이 올라오는 등 한의사들 사이에서 미용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제로 미용의료 장비를 도입해 한의학의 매선 침 치료와 병행해 치료하는 곳도 있다. 연이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법원의 긍정적인 판결이 나오면서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앞서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의사 C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C 씨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 자궁내막의 상태를 확인‧진단하는 등 초음파 진단기기로 진료행위를 했다.
검찰은 C 씨가 초음파 진단기기로 진료한 것에 대해 의료법 제27조의 ‘면허된 것 이외의 진료행위’라 판단, 의료법 위반으로 C 씨를 재판에 넘겼다. 1‧2심은 C 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적으로 사용해 진단한 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의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거나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 우려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지난 9월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도 재판부는 무죄판결을 내렸다.
‘한의사 뇌파계 사용’ 합법 여부를 두고 13년간 이어졌던 한의사들과 의사들의 갈등도 지난 8월 한의사들의 승리로 결정됐다. 해당 논란은 뇌신경전문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 D 씨가 2010년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게재하면서 불거졌다. 이밖에도 지난 9월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측정기를 활용해 한의사가 진료하는 것이 합법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뇌파계 판결 후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는 의료법 제2조를 들어 “대법원이 의료법 규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렸다. 현행 의료법이 의료와 한방 의료를 이원화해 규정하고 있음에도 대법원 스스로 법 원칙을 무시했다”며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판결은 의료인 면허제도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는 “현대 진단기기는 양의계의 전유물이 아닌 한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필요한 도구이자 문명의 이기이며, 이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라며 “초음파와 뇌파계 등 다양한 현대 진단기기로 보다 더 효과적인 한의약 치료를 시행해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미용의료기기까지 그 영역을 넓히는 것에 대해 의사단체는 “무면허 의료행위”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시한의사회가 한의사를 대상으로 미용치료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유료 강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하자 서울시의사회는 반대 성명서를 냈다. 서울시의사회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한의사들이 무면허 의료 등 불법적인 행위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진단용 기기에 대해서만 새로운 법원 판단 기준을 적용하고 IPL 등 침습적인 치료수단은 적용하지 않는다 밝혔다”고 설명했다.
임현택 미래를생각하는의사모임 대표는 “대법원 판결을 보더라도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는 ‘진단용 의료기기’이고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한 것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의료자문을 받았다”며 “진단에 한해서 보조적 수단으로 써야 한다는 의미이고, IPL 등 판례를 고려했을 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집속형 초음파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사의 교육수준, 관련 연구 내용, 한의사에게 사용이 허용된 다른 의료기기 등을 고려할 때 한의사가 집속형 초음파를 사용하더라도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하기 어려우며 국소부위에 직접 에너지를 가하여 피부 내의 한 초점에 자극을 집중시키는 외과적 시술 방법은 과거부터 한의학에서 존재하였던 시술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의사의 집속형 초음파 사용이 한의학의 적용‧응용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러한 시술은 한의사의 면허 범위 내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당국의 명확한 규정이나 지침이 없는 한 당분간 두 업계의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대변인은 “한의업계 시장이 위축되다보니 미용시장으로 눈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라며 “인체에 침습적인 주사와 조직을 녹이는 기기 등은 모두 해부학적 구조와 관련된 기술로 한의사가 이를 이용한다는 것은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의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최근에 나왔던 여러 판결들로 인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에 대한 제한은 대부분 없어진 상황이고, 이제는 이러한 기기들에 대한 보험급여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모든 현대 진단치료기기의 사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업계의 갈등이 지속될수록 의료 소비자들의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의료 소비자들의 합리적 판단이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존에 한의원을 주로 이용했던 중장년층 이상에게는 피부과는 허들이 높다 느껴질 수 있고, 크로스셀링(교차판매)으로 한방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미용시술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이 쉬울 수 있다”며 “편의성 면에서 좋을 수 있겠으나 두 업계가 갈등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소비자가 짊어질 리스크를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업계 간 갈등이 진정되고 소비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규정을 내놓는 것이 시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과거 유권해석이나 판례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의료기기 종류, 사용 방법 등 개별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의사, 한의사, 간호사의 직무범위 명확화 등을 위해 의료법 개정 준비에 착수했다. 지난 9월 초고령사회에 맞는 새로운 의료법 체계 마련을 위한 전문가 논의 기구로 의료법 체계 연구회를 구성, 제1차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으나 뚜렷한 방안이 나오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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