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를 늘리겠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컵밥 포장마차에서 고시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변호사 문재인
“문재인 후보가 변호사 시절 어떤 사건을 수임했는지 다 살펴보고 있다.”
박근혜 캠프의 한 관계자는 지난 9월 16일 민주통합당 내 경선이 끝난 직후 나눈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후보를 겨냥한 대대적인 검증을 예고했다. 그는 “문 후보는 사법고시 합격 후 주로 인권·노동 등 ‘돈이 안 되는’ 분야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제보 중엔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고 귀띔했다. ‘변호사 문재인’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는 민주통합당 경선 과정에서도 불거졌던 문 후보의 서청원 친박연대 전 대표 변호 경력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비문 후보들은 문 후보가 지난 2008년 공천헌금 수수 의혹으로 기소된 서 전 대표의 변호인에 참여한 것을 놓고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서 전 대표는 정치적 입장이나 노선과 상관없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지만 당 안팎에선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했었다. 박근혜 캠프는 이와 같은 사례들이 추가로 있을 것으로 보고 광범위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변호사 시절에 대한 검증은 문 후보 가족 등을 둘러싼 의혹과 맞물려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야권 진영에선 문 후보 아들의 취업 특혜 시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4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진섭 전 의원이 제기한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고용정보원이 2007년 초 신규로 직원을 채용하면서 문 후보 아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아들은 2008년 3월 휴직한 뒤 2010년 1월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용정보원 측은 “문 후보 아들은 입사자격이 있었다”며 해명했지만 새누리당은 향후 대권 레이스에서 이 문제를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다. 박근혜 후보 캠프 관계자는 “10월 5일부터 치러지는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를 담당하고 있는 환경노동위원회가 문 후보 아들의 증인 출석을 추진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 노무현을 넘어야 2007년 문재인 비서실장이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서 몸담았던 직원들은 문 후보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다.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사정기관 관계자(2003년 청와대 파견)는 “정권 최고실세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겸손했던 분이었다. 책임감도 강했다. 박연차나 노건평 모두 문 후보가 예의주시했던 인물이었지만 나중에 비리가 불거지자 무척 괴로워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2005년 청와대 파견)는 문 후보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부산지역에서 한 사업가가 문 후보와 가깝다며 정치인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첩보를 받고 확인에 나선 결과 실제로 문 후보 지인이었다. 그런데 문 후보가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원칙대로 하세요. 나를 파는 사람은 친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 지인이 문 후보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일각에선 문 후보가 민정수석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절 ‘왕수석’으로 불렸다. 특히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사정기관의 컨트롤 타워인 민정수석을 두 차례나 맡았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 후 터졌던 박연차 게이트, 형님 노건평 씨 비리 등에 대한 책임론에서 문 후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문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사전에 조치하고 예방했더라면 이러한 사건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까지 들린다.
한 친노 인사는 “2008~2009년 사이 잇따라 대형 비리가 터지면서 노 전 대통령 서거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민정수석을 두 번이나 했던 문 후보는 그렇게까지 될 때 무엇을 했느냐. 확실하게 노 전 대통령을 ‘커버’하거나 ‘몸빵’을 했어야 했다”면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을 뛰어넘겠다고 하지만 우선 지켜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한 진지한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단 새누리당은 문 후보가 민정수석이던 지난 2003년 부산저축은행 퇴출 저지 구명 로비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이종혁 전 새누리당 의원은 “문 후보가 부산저축은행 2대 주주를 만나고 난 뒤 금감원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이 명예훼손 혐의로 이 전 의원을 고발(무혐의 처리)했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 후보가 유병태 금감원 국장에게 “철저히 조사하되 예금 대량인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히 처리해 달라”고 전화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청탁이나 외압 여부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새누리당은 당시 금감원과 부산저축은행 직원들을 상대로 문 후보의 관련성을 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 후보가 근무했던 법무법인 부산이 참여정부 시절 급성장했다는 의혹 역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종혁 전 의원에 따르면 2003년 2월 문 후보가 민정수석에 발탁된 이후 법무법인 부산의 연간 매출액은 10억 원대에서 2005년 41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당시 법무법인 부산은 사건 수임 전국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민정수석 문재인’에 대한 검증에 대해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문 후보가 친인척 관리 및 실세들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문 후보는 참여정부의 굵직굵직한 사업부터 사소한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공과를 논할 때 문 후보 이름도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문 후보의 ‘말 바꾸기’도 대권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정치인 문재인
지난 4·11 총선은 ‘대권주자 문재인’을 가늠해볼 수 있는 예비 시험대였다. 새누리당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박근혜 후보의 ‘카운터 파트너’ 격인 문재인 후보가 어떠한 정치력을 보여줄지 비상한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총선이 끝난 후 정치권에서는 문 후보를 향해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우선 문 후보는 새누리당의 거센 공세를 ‘정치 신인’답지 않은 내공을 발휘하며 방어했다. 총선을 앞두고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이 문 후보의 부산저축은행 구명 비리 연루설을 제기하자 법적 조치를 취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던 게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의 약점인 정수장학회 문제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상에서 신랄하게 꼬집으며 역공을 취했다. 이를 놓고 당시 친노 진영에선 “문재인이 독해졌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총선 야권연대가 결렬될 위기에 놓이자 부산에서 긴급 상경해 심야에 각 당 대표들(한명숙·이정희)을 만나며 중재에 나섰던 장면도 ‘백미’ 중 하나로 꼽혔다.
반면, 문 후보는 풀어야할 과제도 받았다. 자신이 출마했던 부산을 포함해 경남지역에서의 선거 결과가 부진하자 전국 선거에서 문 후보의 리더십이 통할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또한 공천 과정에서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친노 인사들을 대거 밀어주었던 것도 ‘친노 프레임’을 깨야 할 문 후보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 대통령 감 문재인
문재인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 단일화에서 이겨야 한다. 설령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더라도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눌러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우선 문 후보가 스스로를 넘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는 문 후보의 권력 의지와도 직결된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안 원장과 마찬가지로 문 후보는 4·11 총선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른 적이 없다. 대선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치열한 전장이다. 문 후보는 물론 가족들까지도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 “문 후보가 그러한 것을 버틸 만한 맷집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 후보 리더십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핵심 보직을 맡으며 갈등을 조정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긴 했지만 비전을 제시하고 국정 전반을 이끌어 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를 보일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한 친노 진영 인사는 “문 후보는 전형적인 참모 스타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라는 뛰어난 주군이 없었다면 문 후보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친노 관계자 역시 “참여정부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2인자 역할을 했다. 민주통합당 대권주자로 나선 지금은 어떠하냐. 친노의 대표적 전략가인 이해찬 대표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후보 역시 고 노 전 대통령을 뛰어넘어 본인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부분에 있어서 그리 좋은 점수를 받고 있지 못하다. 총선 공천 당시 친노 쏠림 현상, 당내 경선 과정에서 비노 주자들과의 불협화음 등을 비춰봤을 때 여전히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문 후보 비서실장 시절 함께 일했다는 한 참여정부 전직 관료는 “인간적인 면만 봤을 때 문 후보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다. 항상 아랫사람을 존중해준다. 그런데 때로는 싫은 소리도 해야 하는 거고 ‘나를 따르라’식의 리더십도 필요한 것 아니냐. 그런 점에서 문 후보는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것 같았다. 또 노 전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모습도 별로 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박근혜 캠프 관계자 역시 “문 후보는 초선 의원일 뿐이다. 박근혜 후보와 정치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서 “문 후보가 본선에서 박 후보와 맞붙을 경우 그 한계는 여실히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은 “문 후보가 정치적인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게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형태의 대통령 리더십을 문 후보가 보여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