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김강자 교수 이름 앞에는 늘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서울경찰청 초대 민원실장, 여자형사기동대 초대 대장, 최초의 여성 일선 경찰, 최초의 여경 출신 총경까지 이력도 화려하다. 경찰 재직시절 가는 곳마다 이슈를 만들어내던 김 교수가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성매매 단속이었다.
순경 때부터 유독 성폭력과 성매매에 관한 범죄에 관심이 많았던 김 교수는 일선 경찰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옥천경찰서장을 지내며 미성년자 티켓다방을 뿌리 뽑은 김 교수는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명 ‘미아리텍사스촌’을 단속하면서 성매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경찰의 전국 집창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지면서 성매매가 공론화됐으며 마침내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김 교수의 활약상은 여기까지다. 지난 2004년 공직 생활을 마감한 김 교수는 잠깐 정계에서 활동하다 이제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이처럼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수년간 별다른 대외적 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가 돌연 공창제를 주장하며 모습을 드러낸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김 교수는 자신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부터 풀길 원했다. 공창제 도입은 자신의 과거 행적과 모순되는 부분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지난 18일 기자와 만난 김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오랫동안 공창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김강자 교수가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당시 ‘미아리텍사스촌’ 윤락업소를 순찰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
▲세계적으로 봤을 때 성매매에 관한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성매매 자체를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법으로 금지하는 ‘금지주의’와 일정형태의 성매매를 인정하는 ‘합법주의’가 있다. 그 사이 원칙적으로는 성매매가 불법이나 암묵적으로 이를 용인하는 ‘규제주의(비범죄주의)’가 있는데 내가 주장하는 공창제는 이 분류에 속한다.
모든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특정지역을 선정해 이곳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만큼은 묵인해주자는 뜻이다. 공창제야말로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은 보호해주고 성적 소외자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길이다.
-성매매 허가지역에 대한 기준은 어떻게 세울 것이며 처음과 달리 무차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성매매지역이니 여기서 한 발짝만 나가면 불법이다. 이런 식으로 하자는 뜻은 아니다. 전국 곳곳의 집창촌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매매 일부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되 그 외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는 엄중히 단속하자는 말이다. 지금처럼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시켜 놓고 단속하면 더욱 음지로 숨어들 뿐 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특정지역에서는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해놓고 나머지는 싹 쓸어버리면 자연스레 일정 범위 내에서만 성매매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며 꼭 필요한 사람만 찾아 시장이 확대되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성매매를 더럽고 비윤리적이라 주장하면서도 뒤로는 불법 업소들을 찾아다니며 성매매를 즐긴다. 이런 사람들만 없어도 성매매 수요자는 절반 이상 사라진다.
-공창제가 실시되면 성범죄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나.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성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돼도 성욕을 풀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결혼을 통해서도 풀 수 있고 연인과의 성관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 소외자들이나 자제력이 약한 남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이들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인데 공창제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교육을 통한 성숙된 성문화가 바탕이 된다면 우리나라도 성범죄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공창제가 오히려 성매매를 더욱 조장시키고 성범죄의 증가 요인이 된다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그건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이미 규제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경우 성매매 여성 인구가 우리나라의 1/10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성매매를 한다.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으로 삼는 여성들이 일하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성적 소외자들이다.
또한 규제주의나 합법주의를 택한 나라의 성범죄율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금지주의 국가보다 낮다고 한다. 합법주의를 택한 독일의 경우 성폭력 범죄가 우리나라의 1/4 수준이다. 솔직히 우리나라도 성 문화만 성숙돼 있다면 합법주의를 도입해도 상관없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안 된다. 우리나라 성문화는 왜곡되고 너무 저질이다.
-저질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나.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살다보니 봐서는 안 될 장면, 들어서는 안 될 소리까지 다 보고 들었다. 하루는 경찰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다. 모두 경찰대학 출신부터 고시합격생까지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서장 출신의 한 간부가 “내가 기동대 중대장 할 때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모두들 데리고 미아리 텍사스촌을 갔었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더라. 주변 사람들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여 당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잘못된 성문화를 알기에 지금 당장은 합법주의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문화에 대한 비난의 물꼬가 터지자 김 교수의 신랄한 비판은 한동안 계속 됐다. 특히 남성들의 왜곡된 성문화에 대해 김 교수는 환멸감마저 느낄 정도라 했다. 김 교수가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미아리에서 만난 중2 남학생 사건도 한몫했다고 한다.
12년 전 단속을 위해 미아리 집창촌을 찾았던 김 교수는 성관계를 끝낸 남성 한 명을 붙잡았다. 겨우 중2 남학생으로 ‘총각 딱지’를 떼기 위해 홀로 집창촌을 찾았다고 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김 교수를 마주하고도 이 학생은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드디어 남자가 됐다”며 자랑스러워해 주변사람들마저 경악케 만들었다고 한다.
-그토록 성매매 단속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공창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인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한 번도 정상적인 범위에서 이뤄지는 성인의 성매매를 반대하거나 단속한 적은 없다. 티켓다방이나 미아리텍사스촌, 양천 윤락가까지 모두 미성년자나 강요에 의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을 구하기 위해 단속을 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같은 여자로서 성매매 여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밉고 화가 났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직접 만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성매매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공창제 도입을 주장했는데 이제야 주목을 받고 있을 뿐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창제를 주장해왔다는 말인데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사람들은 성매매특별법 제정이 나로 인해 비롯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당시 나는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은밀히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악덕 업주를 처벌하고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공창 아닌 공창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의 결실을 거두기 직전 정부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법은 맹점이 많았다. 무조건 집창촌을 때려 부수기만 할 뿐 사후 대책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여성부 장관에게 찾아가 생계형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을 알리고 내가 해왔던 일을 설명하며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달라 요구했지만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공창제라는 말만 꺼내도 이상한 사람 취급했으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과 동시에 제복을 벗었다. 이후 정계에 입문했지만 오래 머물진 못했다.
▲전담인력도 없고 사후 대책도 없는 성매매특별법은 풍선 효과만 낳았다. 법 시행 이후 성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통계도 나왔지 않는가. 이미 나는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반대를 했다. 그 과정에서 윗사람들의 눈 밖에 나 승진대상에서 제외됐다. 더 이상 경찰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때문에 보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명예퇴직을 하고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국회도 내가 생각했던 정의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나를 정치에 이용만 하려 했을 뿐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으려 했다. 뱀의 꼬리로 있느니 다 때려치우고 나와 버렸다.
-모든 걸 놓았다고 하지만 이제 다시 공창제가 주목받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아직도 성매매 단속 과정에서 만난 여성들과 연락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더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손님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강간을 당해도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적발될까 신고도 못한다고 한다. 그런 얘길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프다. 이제라도 공창제가 화두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객관적으로 공창제의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해도 되나. 지금으로서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공창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불법 성매매가 근절돼야 하며 성숙된 성문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공창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된다는 것 자체로도 상당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성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나도 여자지만 성욕이 있는 사람으로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잘 안다. 모두가 함께 잘못된 성 문화를 고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2004년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방지법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성매매 여성들 보다 나은 삶 기회 박탈하나”
여성·아동인권 지킴이라 불리는 법무법인 나우리 이명숙 대표변호사는 어떤 형태의 성매매도 합법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매매를 법으로 합리화 시키는 순간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책무를 유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이 변호사는 “성매매나 성범죄는 다를 게 없다. 성매매는 돈이 오갈 뿐 자연스러운 성관계가 아니지 않는가. 무릇 성관계는 연인·부부관계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성이나 여성의 몸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매매를 허용해야 성범죄가 줄어든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그는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성적 충동을 자제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한다. 마음만 먹으면 여성을 취할 수 있다는 의식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각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이 변호사는 “갑자기 성범죄자가 넘쳐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성범죄는 늘 존재해왔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단속이 강화되고 적발사례가 늘어 성범죄가 늘어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공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도 지적했다. 공창제를 통해 성범죄를 줄일 수 있고 성적 소외자들도 보듬을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로 닥치면 모두 외면할 것이라는 것. 이 변호사는 “내 아내, 내 딸은 절대 성매매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왜 남한테 몸을 팔라고 말하는가. 성매매 여성들도 교육과 지원을 통해 얼마든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 공창제는 이런 기회마저 박탈하는 짓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