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하순 시작되는 ‘제주 삼다수배 전국 아마 최강전’은 ‘편바둑’을 도입, 재미를 더하고 있다. 출전 예정 선수들이 지인들과 수담을 나누고 있다. |
▲ 출전 예정 선수들이 지인들과 수담을 나누고 있다. |
‘8도 대항전’이다. 대회 이름에 ‘8도 대항전’이라는 말을 넣지는 않았지만, ‘8도 대항전’이다. 8도는 서울 인천-경기 강원 충청 광주-전남 대구-경북 부산-경남 제주. 대전 방식은 단체전 토너먼트. 한 팀은 4명이고, 40세 이상의 남자 시니어만 출전할 수 있는데, 선수들은 고향이 그쪽이든, 학교를 거기서 나왔든, 현재 거주지가 거기로 되어 있든 아무튼 연고가 있어야 한다. 대국은 바둑TV가 전부 생중계한다.
대표는 주장 역할을 하는 선수다. 첫눈에 서울 팀이 강세로 보인다. 장시영은 국내 아마 최고수들의 상설 경연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압구정리그’의 무대, 한국기원 압구정지원의 원장으로 리그를 주관하면서 리그 멤버로도 뛰고 있다. 잔 신경 쓸 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성적도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에서 은퇴한 김희중 홍태선을 보고는 의아해 하는 눈길도 있지만, “그들에겐 바둑이 인생이고, 프로에서 아마로 전향한 것으로 보면 되는데 뭐 어떠냐. 각자 생각이 다르고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반가워하는 사람도 많다.
임동균 선수는 아마 바둑계의 맏형으로 통한다. 요즘은 주로 바둑TV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다. 김세현의 ‘막강 외대 바둑’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자.
서울이 선수 숫자도 많고 눈에 띄긴 하지만, 사실은 만만한 팀이 없다. 충청이나 대구-경북, 광주-전남도 호화 라인업이다. 김동근은 대전-충남의 간판. 박성균은 얼마 전에 끝난 내셔널리그에서 소속 팀인 ‘충남 서해바둑단’의 우승을 견인, 챔피언 시리즈 MVP를 수상했고 김정우는 내셔널리그에서 충청북도 팀을 이끌고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했다. 조규훈은 숨은 실력자.
대구-경북의 박강수는 내셔널리그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한 ‘대구 덕영치과’ 팀의 주포이자 정규 시즌 MVP 수상자. 박강수와 박영진은 시니어 선수 중에서 지금도 지치지 않고 성적을 내고 있는 몇 명에 드는 선수들이며, 이학용과 조병철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차례로 아마 바둑계를 주름잡았던 역전의 강호다. 광주-전남은 일단 조민수의 존재감으로 무게를 갖는 팀. 그러나 심재욱 선계성 곽웅구도 충분히 제 몫을 하리라는 것이 중론이고, 곽웅구는 지자체 바둑선수단의 원조 ‘고양시 바둑선수단’의 멤버인데, 고향이 이쪽이어서 이번 대회만큼은 광주-전남 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모처럼 고향에 돌아와 흐뭇해진 기분은 플러스 알파일 것이다.
이번 대회의 주안점, 제일 큰 재미, 주최-주관-후원의 제주도바둑협회와 바둑TV와 (주)삼다수가 야심차게(?) 기획한 것은 따로 있다. ‘8도 대항전’이라는 형식도 형식이지만 승부를 ‘편바둑’으로 가린다는 것, 바로 그거다. 일반 아마추어 바둑팬들이 즐기는, 요즘 유행하는 바로 그 편바둑이다. ‘집수’로 승패를 가리는 것. 이기되 집 차이가 많게 이겨야 하는 것. 가령 동료 세 사람이 각각 2집반, 5집반, 7집반 차이로 다 졌어도 나머지 한 명이 2집반+5집반+9집반=17집반보다 큰 차이로 이기면 우리가 이기는 것. 따라서 불계승, 불계패는 없다. 도중에 더 이상 해 볼 데가 없이 불리하다고 해서 돌을 던질(거둘) 수 없다. 무조건 계가를 해야 한다. 편바둑은 어차피 방내기다. 방내기는 당연히, 어차피 정파(正派), 백도(白道)의 바둑이 아니라 사파(邪派), 흑도(黑道)의 바둑이다.
그런 결정적 변수가 있기에 인천-경기와 부산-경남도 전의를 다지고 있다. 인천-경기의 김동섭 이문의 안재성은 잘 무너지지 않는 스타일. 거기다 큰 거 한방을 곧잘 터뜨리는 안병운을 믿어본다는 것. 부산-경남은 문미열 최호철이 지키면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바둑’에서 수십 년 용명을 떨친 최철수에게 기대하는 작전을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도 강순찬 말고 한공민 김준식 같은 강자가 있지만, 주최 측 프리미엄으로 연고에 상관없이, 지명권을 주었다. 첫 판은 전남-강원, 서울-경남, 제주-경기, 경북-충청이 붙는다. 경북-충청이 빅카드다. 현재 판세는 4강 2중 2약 정도.
소개하는 기보는 9월 20일, 2012올레배 16강전, 김승재 5단(20) 대 강유택 5단(21)의 바둑. 강유택 5단이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데, 그 현장이다. <1도> 백1로 틀을 잡고 흑2로 갈라치자 백3으로 협공했다. 다음 흑4, 6에 백5, 7, 눈이 시원해진다. 계속해서 <2도> 흑1로 안정하자 백2, 4를 선수하고 우상귀 쪽으로 날아가 백6, 스케일이 마음에 든다. 흑7에는 백8, 그리고 흑9에는 여기는 쳐다보지 않고 백10으로 갈라간다. 기세가 마음에 든다.
<3도> 흑1, 3은 백2, 4로 참아준다. 흑5에는 백6, 8로 외곽을 좀 다져놓고 다시 백10, 흑11에는 백12, 아~ 질 때 지더라도 한번은 이렇게 두고 싶다. 흑9는 백A에 대한 방비책.
<4도> 흑1로 터를 잡자 백도 2로 모양을 조금 손질하고 흑3에는 백6, 일관된 고압-포위전술. 이 바둑은 강 5단이 졌다. 그래도 모처럼 만나는 신선함이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