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한 최태원 SK 회장(왼쪽), 2006년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한 최신원 SKC 회장. | ||
물론 최 회장도 다른 ‘회장님’들처럼 줄곧 호화 주택에서 살아왔다. 지난 1994년까지 최 회장의 주소지는 서울 광장동 산21번지였다. 이는 SK그룹 계열인 쉐라톤워커힐호텔의 주소지다. 1995년 서울 방배동 월드빌라트로 주소지를 옮긴 최 회장은 2년 후인 1997년 서울 광장동 현대리버빌로 거처를 다시 옮겼다. 2001년 11월 최 회장은 서울 청암동에 있는 SK청암대 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겼는데 이곳은 다수 재계인사들이 최 회장의 현 주소지로 여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SK청암대 아파트는 88평형으로 한 채당 17억~18억 원을 호가한다. 최 회장은 청암대 아파트에서 가장 높은 3개 층을 터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자신 명의로 된 집에 살지 않기는 최 회장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도 다를 바 없었다. 고 최종현 회장은 워커힐호텔 내 에스톤하우스 안에 있는 일명 ‘에머랄드’라 불리는 VIP룸에 거주했다.
최종현-최태원 부자가 셋방살이를 고집해온 이유로 재계인사들은 거주지 선택의 용이함과 재산 공개에 대한 부담 축소 등을 꼽아왔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일어났다. 최태원 회장은 올 1월 주소지를 서울 논현동 35번지로 옮겼다. 이곳은 지난해 말부터 최 회장 명의로 돼 있다. 처음으로 자신 명의로 된 집을 주소지로 갖게 된 것. 서류상으론 무주택자에서 유주택자로 탈바꿈한 셈이다. 최 회장 명의로 된 논현동 35번지와 35-14번지 일대엔 지하 1층·지상 3층의 저택이 들어서 있다. 대지 275평에 연건평 344평 규모의 대저택이다. 등기부상 건축물 허가를 지난해 5월 16일 받은 것으로 돼 있어 기존 건물을 헐고 새로 지었거나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소유의 이 저택엔 눈길을 끄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이 집의 전 주인은 최신원 SKC 회장이다. 최신원 회장은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장남이자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이다. 논현동 집과 해당 토지는 지난 2001년 6월 최신원 회장 명의재산이 됐다. 그리고 4년 4개월 만인 2005년 10월 최태원 회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것이다.
2005년 5월에 건물 신축(혹은 증축)을 하고 나서 불과 5개월 만에 최태원 회장에게 소유권을 넘긴 이유는 무엇일까. 최태원 회장이 이 집을 매입한 직후에 벌어진 최신원 회장의 지분 매입과정에서 단서가 엿보이기도 한다. 현재 업계에선 최신원 회장이 친동생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함께 계열분리를 추진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해 11월 SKC 주식 2만 5000주를 사들이면서 개인명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특히 최신원 회장의 지분 매입에 속도가 붙은 시점이 최태원 회장에게 논현동 집을 넘긴 직후라는 게 눈길을 끈다. 논현동 집 매각 직전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은 0.32%(10만 5000주)였는데 현재 1.34%(46만 5000주)까지 늘어난 상태다.
▲ 최태원 SK 회장이 최초로 ‘소유’한 서울 논현동 집 전경.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부동산 업자들에 따르면 논현동 집 일대 평당시세가 약 2000만 원이라고 한다. 논현동 집 대지면적이 275평이니 땅값만 따져도 55억 원에 이른다. 논현동 집 값과 최신원 회장이 지난 1년간 SKC 지분 매입에 사용한 금액이 거의 일치한다. SKC 지분 확보용 실탄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충분한 셈.
한편 최신원-최창원 형제의 계열분리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신원 회장 못지않게 최창원 부사장 또한 SK케미칼 지분을 늘려 현재 SK케미칼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논현동 집은 최신원 회장 명의 재산이었지만 그 집에 최 회장이 거주했던 것은 아니다. 최신원 회장의 실제 주소지는 서울 청담동 삼호빌라다. 인근 주민들은 “SK 총수일가가 영빈관 식으로 써온 집”이라 입을 모은다. 최태원 회장이 손님 맞는 용도로 논현동 집을 자주 활용했다는 것. 계열분리를 앞두고 최신원-최창원 형제가 SK그룹 총수일가 차원에서 활용해온 상징적인 집을 SK그룹 주인 최태원 회장에게 넘긴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최 회장이 최근까지 활용해온 SK청암대 아파트 세 채 또한 SK건설 명의로 있으니 최 회장이 활용할 수 있는 주거공간과 영빈관 규모는 가히 이건희 회장에 필적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