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사 책임자 한동훈 “대법 의뢰로 수사”…검찰 항소에 법원 안팎 “쉽지 않을 것”
#2.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농단 1심 무죄 판결이 나오자,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한동훈 위원장은 1월 29일 사법농단 1심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 사건은 대법원의 사실상의 수사 의뢰로 진행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 속에서도 법원 안팎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론’이 등장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는 평이다. 2017~2018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은 세 차례 자체 조사를 진행했지만 ‘법적으로 문제 삼을 부분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시 법원 내부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데 왜 계속 진상조사를 하냐”는 반발도 있었지만,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수사 협조를 당부하자 결정을 내렸다. 법원을 상대로 한 수사를 허가한 것이다.
2018년 9월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 수사에 특수1~4부를 투입해 전면 수사에 나섰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허가했다. 당시 서울 서초동 법원행정처 1층에 압수수색 공간을 마련하고 대법원 관계자가 입회한 가운데 법원행정처 PC 등을 포렌식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1층 조사실이 마련됐던 기간은 무려 207일. 검찰은 1층 조사실에 상주하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핵심 간부들의 PC 속 자료를 확인했다. 법원의 정책 결정, 내부 인사, 판사 관련 징계 검토 서류 등 온갖 것들이 다 있었는데, 검사들은 수사와의 관련성 확인을 위해 ‘보겠다’고 하고, 법원 심의관들은 ‘관련이 없는 자료’라며 막는 게 일상이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필두로 한동훈 3차장 검사가 특수1부~특수4부를 모두 동원됐던 수사였다. 296쪽의 공소장을 쓰고 211명의 증인을 신청하며 14명의 전현직 법관을 기소했지만 4년 11개월이 걸린 재판은 검찰의 참패로 끝났다. 또 다른 핵심으로 꼽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5일 1심에서 일부 유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재판 거래 등 핵심 혐의는 대부분 무죄를 받았다.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 등 무려 47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됐지만, 1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검찰이 항소하면서 5년 가까이 걸린 ‘사법농단 의혹’이 2라운드로 접어들면서 검찰 책임론과 함께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론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당시 수사를 받은 한 판사는 “검찰 수사 때부터 ‘문제가 될 부분이 없지 않냐’고 얘기를 해도 검찰에서는 ‘대법원장이 수사를 허락하지 않았냐’고 얘기를 해 반박할 수가 없었다”며 “당시 검찰이 판사들 간 주고받은, 의혹들과 관계없는 이메일 중 사적인 내용들도 다 일일이 확인해서 불만이 상당했고 이 과정에서 판사들 상당수가 판사를 지켜주지 않는 법원에 대해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법원행정처 상황에 정통했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진상조사를 세 차례 하는 과정에서 보고는 ‘징계 사유는 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어 보인다’는 내용이었는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5년 넘게 법원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료 판사들 간에 ‘신뢰에 금이 간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당시 분위기가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고등부장판사들은 마치 적폐의 취급을 받았다”며 “배석판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기고, 적폐 판사라고 하면서 같이 밥도 먹지 않는 문화를 보고 법원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 법원을 떠난 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의 수사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당시 법원이 ‘내부적으로 뭉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 아쉽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2심에서는 ‘일반적 직권남용’과 ‘권한 유월형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를 따져 보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장이라도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2심에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선 변호사는 “검찰이 최근 몇 년 동안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앞 정권의 치부를 터는 수사를 여러 차례 했었는데 법원도 자연스레 ‘직권남용 기준을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중 최종 책임자를 일단 임종헌 전 차장 선에서 자른 셈인데 이에 대해 2심에서 오히려 더 무죄의 판단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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