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 핵심 인사들에 대한 2선 후퇴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후보가 어떠한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후보(오른쪽)와 7일 사의를 밝힌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 연합뉴스 |
‘위기론’을 넘어 ‘필패론’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헌 판을 버리고 새 판을 짜야 한다는 다소 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 서병수 당 사무총장 겸 선대위 선대본부장, 이정현 공보단장 등 원조친박, 나쁘게는 ‘종박’(從朴)으로까지 회자하는 일부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살벌한 말들이 오갔다.의원회관에서 회자하는 말들은 좀 달랐다. 사실 지금의 이런 위기는 약 두세 달 전부터 감지되면서 몇몇 의원들 입에서 공론화됐다는 것이다. 추석 민심을 잡지 못하면 박근혜 후보의 상승은 어렵다느니, 10월에 두세 차례 큰 태풍이 불 것이라느니, 누가 누가 돈 파문에 연루돼 있다느니 하는 식이었는데 대부분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친박계 보좌진은 “현영희 현기환 홍사덕 송영선에다 이번 황영철까지 전·현직 의원들이 대부분 이니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구설에 올랐고 박 후보에게도 큰 외상을 입혔다”며 “문제는 이런 사건이 앞으로도 더 나온다는 이야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 서병수 사무총장과 이정현 공보단장. |
그런 와중에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마저 등을 돌리는 형국이다. 경제민주화로 연일 갈등을 빚어온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 의총’ 소집을 요구하자 격분해 “내가 여기서 더는 할 일은 없다”고 했고, 다시 이 원내대표가 사석에서 “저런 사람을 믿고 쓰느냐. 쌤통이다”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선거에서는 홍보만 있을 뿐 보안은 없다는 말이 있듯 박 후보와 박 후보를 돕는 사람들의 ‘어눌한 외부수혈’도 박 후보의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의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송호근, 손숙, 이재오, 정몽준, 이외수, 장하준, 김재범, 김지하, 윤여준까지 언론에 ‘애드벌룬’을 띄웠다가 모두 단칼에, 또는 정중하게 거절당한 꼴이 됐다. 소비자(국민)는 생각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테이블에 앉아 이 사람이 낫느니, 저 사람은 어떠니 하는 통에 소리만 요란했지 관객이 다 빠져나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친박계 인사는 이를 두고 “사람 하나 데려오면서 역전을 기대하는 것은 오만방자한 태도 아니냐?”라고 했다. 이 인사는 이어 “지금까지 거론된 인물들이 새누리당에 오려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부정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명예가 필요할 뿐 권력욕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정치판에 뜻이 없는 사람들 아니냐. 새누리당의 얼굴마담은 싫다는데 자꾸 들어오라 그러고, 나가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저분들이 들어와서 여론이 뒤집힐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국민을 정말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대선과 함께 치러질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한 홍준표 전 대표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박근혜 후보가 얼마 전까지는 대선의 상수였는데 지금은 변수로 전락할 위기다. 박근혜 대세론에서 지금 더 우세하게 나타나는 게 박근혜 대안론이다”라고 했다. 박근혜 대안론이라는 것은 중도로의 세 확장을 위해 중도 진영 인사를 포섭, 공략해야 한다는 것으로도 풀이되지만 박근혜의 대안을 찾는, 즉 ‘후보 교체론’의 의미도 투영돼 있다는 분석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최근 “소위 친박이라는 분들이 국민에게는 ‘부패집단’으로 각인된 것이 사실이다. 후보를 교체할 수 없으니 후보를 빼고 모두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후보만 교체하면 다 바뀌고 역전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벼랑 끝 전술’이자 새누리당으로선 ‘최후의 카드’다.
지금 박 후보의 ‘원칙과 신뢰’의 정치 브랜드는 무너진 꼴이 됐다. 그간 한 번도 꺾지 않았던 부친의 과오(5·16,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한 인정은 대세론이 무너지면서 ‘헌정유린’으로 바뀌었다. 일각에서는 아버지를 딛고 일어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밟고 일어선 것이라고까지 해석하고 있다. 만약 박 후보가 현재 고정 지지율이 50%가 넘는다면 과연 과거사와 관련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했을까. 그래서 “그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는 해석이 새누리당 내부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의원은 “친박계 2선 후퇴론이 나오니 모두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 대안을 마련하고 나서 물러나는 것이 무슨 진정성의 발로냐. 역사를 보라. 배수진을 칠 때에는 정말 잘못을 알고 미래를 생각지 않고 자리를 내놓을 때 성공했다. 대안이 있는데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조만간 박 후보는 어떤 식으로든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서병수 이정현 등 친박핵심들이 모두 카메라 앞에 서서 박 후보의 대선가도를 위해 물러나고, 정권이 재창출되더라도 어떠한 임명직에도 연연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들린다. 나아가 선대위에 합류한 대부분의 인사들이 물러나고 소규모 새 실무진 위주의 단출한 선대위가 구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선대위 임명안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무슨 교체냐, 후퇴냐는 당 지도부의 입장과, 내일모레가 선거인데 당의 다양한 의견일 뿐이라는 박 후보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데 면밀히 체크하면 바뀔 것이란 분위기도 보인다.
민주통합당이 최근 박 후보에 대한 어떠한 네거티브도 꺼내 들지 않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네거티브 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타이밍을 살피는 눈치다. 당 내부, 안방(PK, TK)이 자중지란인데 산발적으로 총알을 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네거티브 융단폭격이 예고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결단만 남았다. 결단이란 단어에는 ‘한번, 제대로’란 뜻이 내포돼 있다. 남발하는 결단은 의미가 없다.
선우완 언론인
“시대가 어느 때인데…명함 줄테니 뛰라고?”
박 후보 직능본부는 크게 5가지 기구, 즉 산업금융경제(김재경 본부장), 보건(유재중), 국방치안(황진하), 교육사회과학(서상기), 종교로 구성되는데 그 하위에 분야별로 수 개에서 수십 개의 대책위원회를 둔다. 종교본부장은 정해지지 않았다. 하위 본부의 본부장은 모두 현역 의원이거나 당협위원장들인데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역할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용자원을 놀릴 수는 없기 때문에 “박근혜 돕지 않겠다”며 발 빼는 당내 식구에게 모조리 직함을 주며 겉치레에 빠져 있다.
직제는 ‘본부-위원회-단-팀’의 순이고, ‘본부장-위원장-특보-위원’으로 임명장을 받는다. 한 친박계 인사는 “임명장을 주고 입당을 시키거나 명함을 파 줄 테니 활동하라는 식은 예전 한나라당이 차떼기정당일 때 한 조직선거”라고 했다. 그는 “그때는 각 조직에게 활동비라도 줬지만 지금은 명함만 파 주는데 누가 일을 하겠느냐”고 쏘아붙였다.
직능 관련 한 관계자는 “대선이 70여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이런 조직을 짜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예전의 조직형태를 그냥 생각 없이 물려받아 관성으로만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도대체 선거를 뛸 마음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문건에 적시된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박근혜 캠프의 조직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준다. 직능본부는 ‘소(少) 캠프화 하되 강력한 책임체제로 간다’고 명시돼 있고, ‘득표력, 활동력, 조직력 강한 직능단체 내 유력인사를 대책위원장으로 선정’하고 ‘직능단체별 임명장 수여 대상자를 조기에 선정하라’는 표현도 있다. 이들 직능조직의 역할은 ‘우호적인 여론조성, 사지지선언 준비, 득표 홍보활동’이다. 한 분야의 본부장을 맡은 초선 의원은 “그날 모인 60여 명은 대부분이 초선이고 선거경험이 없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전국에 기관과 단체만 1만 3000개다”라고 울상을 지었다. “A4용지 달랑 하나 주고 구체적 지침 없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떠넘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하소연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직능단체 ‘관리’ 방법은 지나치게 무리하게 구성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단체 방문, 정책간담회, 전화 및 이메일로 접촉 등을 통한 지속적 관리 ▲단체 개최 행사에 대책본부장 필참 ▲후보 메시지 요청 ▲직능단체 건의사항 법안, 예산, 정책 등으로 적극 반영 ▲단체별 성향 및 주요정보 파악 전달’ 등 상당히 자세하게 적시돼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간인 사찰이 아니라 ‘직능단체 사찰’과 닮은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관리방법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짜 맞춘 기대사항”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2007년 이후 5년간 대선을 준비한 박 후보가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 맞느냐는 지적도 하고 있다. 부랴부랴 조직을 만들고 구태의연하게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 지극히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바보가 아닌 이상 각 직능단체가 줄을 설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친박계에 자문을 해주는 한 인사는 “직능분야란 것은 후보가 50% 이상 지지율만 보이면 알아서 와서 줄을 서는 것이지 줄을 세우는 시대는 끝났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꼬집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