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추석 전후 미시적인 관점에서 문재인 후보의 상승세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왼쪽부터 박근혜ㆍ문재인ㆍ안철수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사진제공=문재인, 안철수 |
여론조사전문가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추석 민심이 어느 대선 후보에게 기울었다고 평가했을까. 이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안철수 후보는 향후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며 두각을 나타낼 후보로 거론됐지만 ‘무경험, 무검증’의 높은 난관이 남았고 박근혜 후보의 경우 다자구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과거사 문제와 더불어 “후보 빼고 다 바꿔야 산다”는 당 내 쇄신 목소리가 커지면서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을 지닌 후보로 꼽혔다. 10인의 여론조사전문가 및 평론가들이 바라본 대선주자들의 추석민심 대격돌을 심층 취재했다.
“이번 추석민심 전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누구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10인의 전문가들 중 4인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명절이었다”라고 답했고 특정 후보를 꼽은 전문가들조차 “두드러진 민심 변화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치열한 전투였다는 분석이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이번 추석 민심은 이전부터 고착된 3자구도가 그대로 이어졌다고 본다.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이룬 청계천 복원 사업과 버스준공영제 등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지역 민심까지 사로잡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양훈 미디어리서치 부장 역시 “5년 전만 해도 추석 때 친지들끼리 만나 대선 후보에 관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면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만 요즘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뉴스가 발달하면서 추석 때 깜짝 민심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추석 전후 미시적인 관점에서 문 후보의 상승세가 나타났다”라고 말했고 앞서의 이양훈 부장 역시 “우리 조사만 놓고 봤을 때 유일하게 문재인 후보가 반등했다.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경우 각각 하락세와 상승세가 멈추는 수준에 그쳤다”라고 전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추석 때 유권자들이 야권의 두 후보를 놓고 경쟁력을 따져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높지만 향후 정당정치에 관한 유권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후보 쪽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반면 문 후보와 함께 야권단일화 승부를 벌여야 하는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경우 민심을 얻었다는 쪽과 잃었다는 쪽으로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은 “여론조사가 아닌 실제 밥상머리에서 안철수 후보가 가장 많이 이야기가 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민심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안 후보의 경우 지금 지지율이 최대치이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고 향후 검증 국면에서 어떤 맷집을 보여줄지가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안철수 후보는 (추석 명절이)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민심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흔들렸다”라고 전망했고,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 역시 “안 후보는 출마 선언 이후 임계점까지 도달했다가 추석 직전 다운계약서 문제가 터지면서 6~7%가량 하락했다”라고 밝혔다. 추석민심을 얻은 주자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꼽은 전문가는 없었다.
그렇다면 향후 어느 후보가 두각을 나타내며 여론 흐름을 주도하는 ‘키맨’으로 나설까. 전문가들은 안철수 후보에게 6표(야권후보라고 대답한 경우 포함)를 던졌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좌우 양쪽 표를 모두 갖고 있는 안 후보가 여론조사판을 가장 많이 흔들 것”으로 내다봤고 장덕현 부장 역시 “역대 대선에서 제3의 무소속 후보가 이렇게까지 지지율을 유지했던 적은 없었다. 향후 새로운 정치와 관련해 어떤 개혁드라이브를 거느냐에 따라 다른 두 후보를 압도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의 경우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앞섰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 밑바닥 민심은 안철수 후보다. 호남 민심만 봐도 민주당이 지역 1당임에도 민심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안철수는 호남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호응을 얻고 있다”라며 일반 국민과 정치권의 온도차를 지적했다.
한편 불안한 대세론 속에서도 다자구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가 여전히 여론을 주도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상헌 소장은 “박근혜 후보가 코스피라면 안철수 후보는 코스닥에 비유할 수 있다. 변동 폭이 크지만 그만큼 위험요소도 내포하고 있다”라며 “박근혜 후보는 ‘친박 2선 후퇴론’과 같은 당내 쇄신 문제를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와 함께 안 후보가 가진 중도층을 얼마만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여론의 방향을 주도해나갈 수 있다”라고 전했다. 윤희웅 실장 역시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 문제가 확실히 정리되지 않아 10월에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이를 정당 쇄신을 통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꾼다면 승산이 있다”라고 전했다.
문재인 후보가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대답한 홍형식 소장은 “문 후보가 탄력을 받아 꾸준히 올라갈 여력이 있다. 안철수 후보는 추석 전 지지율이 최대치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입장이고, 박근혜 후보는 아무리 올라가도 5% 이상 오르기 힘들다”라고 전했다. 안일원 대표는 “야권후보들이 박 후보보다 상승여력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다만 두 후보가 서로의 지지율을 뺏고 뺏기는 경향성이 있어 본선에서 어떤 변별력이 있는지 알리는 일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계완 MBN정치아카데미 대표는 “이미 박근혜 후보 40%, 안철수 후보 30%, 문재인 후보 20%로 고정됐다고 본다. 결국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이 얼마만큼 정당 개혁을 보여줄 것인지가 승부처인데 아직까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선 경선을 통한 컨벤션 효과와 함께 추석 민심까지 얻었다는 평가를 들은 문재인 후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사안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는 다양한 의견을 나타냈는데 ‘무소속’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집중 공략하고 있는 정당 쇄신 문제를 꼽은 전문가들이 많았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인적 쇄신을 기반으로 한 새누리당의 정당 쇄신 문제가 앞으로 가장 큰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고, 김능구 대표도 “새누리당은 전부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라고 전망했다. 박상헌 소장 역시 “박근혜 후보의 경우 추석에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응급지혈된 수준에 그쳤다”라며 “향후 모멘텀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는 자기브랜드가 없는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인데 민주통합당 내 쇄신을 통해 호남에서의 지지율을 안 후보에 앞서는 게 급선무”라고 밝혔다. 이철희 소장은 세 후보의 아킬레스건으로 “박근혜 후보는 고질적 불통, 문재인 후보는 친노세력, 안철수 후보는 리더십문제”를 꼽았다.
이상 10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추석민심을 얻은 후보는 문재인 후보, 향후 여론조사의 키를 쥐고 두각을 나타낼 후보는 안철수, 가장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은 박근혜 후보로 압축해 볼 수 있다. 노동일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라든지 보편적 복지와 같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민생 문제를 진솔하게 해결갈 수 있는 후보들”이라고 평가하며 “다만 선거 과정에서 통합이라는 강자의 논리가 적용된 개념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상생’을 실천하는 후보가 결국 대권을 얻지 않을까 싶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이젠 뉘 땅도 아닌 PK가 승패 좌우
PK 지역의 경우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경남 김해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30%의 득표율을 넘지 못한 여권 강세 지역이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40% 가까운 유권자들이 야권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어 50만 표 이상을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윤희웅 실장은 “PK 지역의 민심 이반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새누리당에서 어떤 대책을 내 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장덕현 부장의 경우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모두 PK 지역이 고향인 만큼 표심이 더욱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에서는 PK에서 잃는 표만큼 충청·강원권에서 따야 하는데 이들 지역이 완전히 마음을 줬다고 판단하기도 이른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안일원 대표는 “PK 지역이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역시 승부가 나는 것은 유권자 50%가량이 모여 있는 수도권일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 이번 대선은 지역구도보다는 투표율이 관건이다. 투표자 가운데 50대 이상 비율이 45%를 넘는다면 박근혜 후보가, 그 이하라면 야권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라고 내다봤다.
전계완 대표 역시 “지난 4·11 총선 때 투표율이 54.2%에도 야권표가 20만 표가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민주당 안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지난 2007년 대선 때 투표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63%였는데 이를 넘어설 경우 어떤 후보와 맞붙어도 야권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전했다. 이양훈 부장 역시 “만일 이번 대선에서 투표시간이 2시간 연장된다면 야권은 호재, 다른 쪽은 악재 중의 악재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