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선거 유세 모습.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대선 여론조사에 신뢰성 논란이 일고 있다. 임준선·최준필 기자 |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국내 여론조사가 잦은 논란과 함께 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보내는 상황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정치권마저도 같은 여론조사 지표를 놓고 서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일이 잦다. 전문가들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론조사에 휘둘리지 말고 여론조사 바깥에 숨은 ‘민심’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사회조사분석사 송 아무개 씨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에서 발표한 자료를 찬찬히 뜯어보면 짚고 넘어갈 부분이 적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송 씨는 “먼저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강원도와 제주도의 세부 결과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는 30명 미만 조사는 별도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지역별 표본 추출을 너무 적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밝혔다.
송 씨는 또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2030세대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PK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실제보다 과다하게 잡힌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의 분석을 따르면 앞서 언급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박 후보가 20대 지지율 42.3%를 기록한 것은 보수 성향의 젊은이들만 과다하게 ARS에 응답한 결과라는 것이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20대와 30대의 지지율이 비슷한 추이를 나타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박 후보의 2030세대 지지율(20대-42.3%, 30대 -30.1%)은 다른 때와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다.
송 씨는 같은 조사에서 PK 지역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47.8%, 문재인 후보 45.9%로 불과 1.9%P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에 관해서도 “문 후보의 지지율이 P(부산) 지역의 표심을 과다하게 표집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도농복합지역인 K(경남) 지역은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많을 텐데 이런 분들의 표본을 추출하지 못한 채 부산에서의 ARS 응답률을 경남 지역과 산술적으로 합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송 씨가 지적한 이런 ‘여론조사 디테일의 오류’는 업계 종사자들도 일부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국갤럽의 장덕현 부장은 “전화면접방식에서 고연령층 여성, 2030세대, 수도권 화이트칼라의 표본을 채우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이는 ARS 방식으로 조사하는 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권에서 일간 단위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주간 단위 리포트를 참고하는 것이 여론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100% 휴대폰 ARS 방식을 택하고 있는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 역시 “ARS는 상대적으로 응답하기에 부담이 적어 2030세대의 표본 추출이 전화면접방식보다 쉽다. 오히려 휴대폰 조작에 능숙하지 않은 60대 이상 노년층 표본 추출이 쉽지 않다”라면서도 “대선 단위의 조사에서는 표본 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문제는 각 대선캠프에서도 여론조사의 맹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음에도 같은 결과를 갖고 서로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새누리당에서는 지역별 대결을, 민주통합당에서는 세대별 투표를 강조하며 세부 분석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조직총괄본부 내 한 관계자는 “지역별로 득표수를 계산해보면 박 후보가 최소 100만 표를 더 가진 것으로 나온다. 가장 걱정되는 수도권에서도 문재인 후보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것으로 나오니 이대로 간다면 승리는 예견된 것 아니냐”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는 수도권의 ‘숨은 야권 표’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송 씨는 “지난 총선 당시 서울 종로구를 떠올려보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정세균 후보가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를 겨우 이기는 것으로 나왔고 출구조사도 비슷했다. 하지만 실제 투표함을 열어보니 정세균 후보가 52.3%로 홍사덕 후보(45.8%)를 비교적 큰 차이로 이기지 않았나. 수도권에서 박근혜 후보가 선전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진짜인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라고 전했다.
민주통합당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에 뒤지고 있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승리(논쟁이나 싸움에서 패배했음에도 스스로 머릿속으로만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자기위안적 행태를 일컫는다)’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캠프 기획본부장을 맡은 이목희 의원은 27일 기자회견에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룩한 57만 표 이상으로 승리할 것이다”라고 밝히는가 하면, 앞서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대표 역시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100만 표 내외의 표차로 승리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최근 민주당 사람을 만나면 지금 뒤처지는 지지율은 안철수 후보만 나서면 부동층이 문 후보로 쏠리면서 해결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현실 인식”이라며 “부동층이 늘었다는 것은 투표를 포기하려는 유권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 아니겠느냐. 민주당이 자력으로 승리하려면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여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닥 민심도 읽어내지 못하는 모습이다”라고 비판했다.
지역별·세대별 분석이 끝나면 남는 것은 투표율이다. 투표율은 전문가들조차 가장 예측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 투표율이 70%를 넘었던 지난 2002년보다는 낮고, 2007년 대선(62.9%)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당은 ‘어게인(Again) 노무현’을 기대하면서 내심 70%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민주당 내부 전략팀에서는 최근 66% 투표율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민주당도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2002년의 70.8%를 상회하지는 않을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내부적으로는 투표율 올리기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지난 11월 초, P&C정책연구원에서는 투표율 70%가 되면 야권단일후보의 압승을 점치는 리포트를 발간했다. P&C정책연구원 박창수 이사는 “여론조사가 아닌 지난 5번의 큰 선거를 중심으로 구조적 접근을 한 결과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46.2%, 야권단일후보가 53.8%를 득표한다는 산술적인 결과가 나왔다”라며 “하지만 ‘야권단일후보=문재인 후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새누리당 성향 유권자 43.9%, 민주당 성향 유권자 37.8%, 야권성향 부동층 16%로 나오고 있어 역시 부동층 표심이 관건이다. 부동층 16% 가운데 적어도 10% 이상이 문 후보 쪽으로 이동해야 문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라고 전했다.
사회조사분석사 송 씨는 “네이트 실버가 미국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것은 여론조사의 ‘하우스 효과’를 잘 알고 있었고, 최대한 그것을 피해 자기만의 예측시스템을 넣은 결과였다. ‘하우스 효과’란 여론조사에 개입되는 조사자의 편견이나 당파성, 조사 방법과 대상자의 성향에 따라 어느 한쪽에 유리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결국 캠프에서도 여론조사 자체보다 그 사각지대에서 간과되고 있는 ‘숨겨진 민심’을 찾는 게 승리의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박 수도권 문 PK서 예상밖 선전
박근혜 VS 문재인 지역별 판세가 서서히 완성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불을 뿜는 승부가 예상되는 곳은 ‘수도권, 부산·경남(PK), 그리고 충청권’이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후 발표된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지역별 지지율을 살펴본 결과, 서울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약 43%,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약 47%로 박 후보가 평균 4%P 뒤졌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서 차이가 5% 이상 벌어진다면 문 후보가, 5% 안으로 좁혀진다면 박근혜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야 모두 공을 들이고 있는 PK에서는 박근혜 후보 51%, 문재인 후보 41%로 문 후보의 선전이 돋보인다. 특히 11월 29일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문 후보(48.2%)가 박 후보(44.9%)를 앞서는 결과까지 발표되자 새누리당에서도 박 후보 PK 유세 일정을 추가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큰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충청권 역시 흥미진진하다. 충청권은 선진통일당을 흡수한 새누리당 박 후보가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문재인 후보가 38%를 기록하며 박 후보(52%)의 과반 지지율을 무너뜨릴 조짐이다. 이 지역에서는 두 정당이 서로 ‘세종시를 지켜내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지역 유권자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도 주목된다. [수]
안 지지자 20% 부동층으로…‘최대 변수’
리서치뷰에서도 안 후보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가 이뤄졌는데 안 후보 지지자 중 72.8%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언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박근혜 후보로 대거 이동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지지자들의 80% 이상은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결국 안철수 후보가 선거운동에 적극 지원하면 지지자들의 80%가 결국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수치상 차이는 있지만 안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를 위해 뛰지 않을 경우 야권의 승리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안 후보의 지원이 없다면 대선이 끝날 때까지 문재인 필패론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안 후보 역시 대선 이후에도 정치인으로 남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번 대선에서 좋은 역할을 해 줘야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