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최경주CJ인비테이셔널대회를 치르고 있는 최경주를 만나 그의 골프 인생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미국 PGA투어에 첫발을 내딛은 한국인 골퍼, PGA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골퍼 최경주는 어느새 PGA ‘짬밥’이 13년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는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우승이 있든 없든, 인기를 끌든 잠잠하든, 최경주와 그의 골프는 항상 성실했고 정직했으며 노력이란 뒷받침을 달고 여전히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달려가다가 발이 아파 잠시 쉰 적도 있고, 아예 드러누워 잠들어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는 다시 일어났고 승부의 세계에 자신을 던졌다.
지난 10월 4일, 경기도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골프장에서 열린 최경주CJ인비테이셔널대회 1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기자와 마주한 최경주는 초청 선수의 신분이 아닌 호스트의 입장으로 치르는 대회의 중요성과 책임감, 보람 등에 대해 의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냈다.
프로골퍼가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를 여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 영예 중 하나다. 특히 국내 프로골프 사상 선수의 이름을 딴 대회가 창설된 것은 처음이었고, 최경주는 어느새 두 번째 CJ인비테이셔널대회를 치르고 있다. 인터뷰 답변들마다 교훈과 감동, 메시지들이 팍팍 꽂히다가 ‘최경주식 유머’를 한 방씩 터트리며 기자를 무장해제시키는 ‘스킬’은 세계 랭킹 1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 최경주대회에선 담배를 못 피운다!
제1회 CJ인비테이셔널대회는 ‘휴대폰 벨소리’가 없는 대회로 유명했다. 그러다 두 번째 치르는 올해에는 담배 연기 없는 갤러리 문화를 위해 골프장의 흡연 장소를 따로 지정해 놓고 그곳에서만 흡연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실 흡연자들 입장에선 골프를 관전하며 담배를 못 피운다는 사실이 굉장히 힘들다. 나도 하루 세 갑씩 담배를 피울 때는 그늘집에서 담배 네 대를 연달아 피워대다가 머리가 띵해진 경험도 있다. 그래서 그분들의 마음을 안다. 맛있는 걸 참기가 얼마나 힘드시겠나. 그래도 정해 놓은 규칙을 따라주는 갤러리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할 따름이다.”
최경주는 자신의 이름을 건 대회를 통해 한국 골프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싶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대회를 위해서도 갤러리들의 의식 수준을 올려놔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홀컵에 붙여야지만 박수를 쳐준다. 그런데 올려만 놓아도 박수를 받을 일이다. 아니 버디가 아닌 파를 해도 박수를 보내면 선수뿐만 아니라 갤러리들도 즐거워진다. 골프를 해보니까 갤러리들의 호응이 없으면 재미가 없더라. PGA 갤러리들의 반응은 그래서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을 준다. 우리도 국적에 상관없이 투어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준다면 외국에서 한국의 골프 문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 화를 낼 줄 모른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PGA 투어에서도 최경주는 갤러리들을 몰고 다닌다. 그들은 기회만 되면 최경주한테 사인을 받으려고 하거나 사진 촬영을 원한다. 100% 수용은 불가한 일이지만 최경주는 가급적,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인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선다고 말한다.
“갤러리는 선수를 보러 골프장을 찾는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갤러리 앞에서 피곤함을 이유로 사인을 거절하거나 팬들과의 소통을 소홀히 한다면 프로다운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 투어를 하다보면 외국 선수들 중에서 시합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골프백을 집어 던지거나 채를 부러트리고 발로 차고 욕을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나라고 해서 지난 13년 동안 골프채를 해저드에 빠트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한 번 참으면 두 번 참을 수 있고 1년을 참았다면 10년도 참고 지낼 수 있다. 난 항상 내가 나 혼자의 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순간, 한국인 전체가 욕을 먹는다고 믿으면 양파를 해도 감사, 더블보기를 해도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PGA 선수들 중에는 최경주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다고 한다. 자신을 직접 찾아와 ‘난 너랑 게임하는 게 좋고 너의 공 치는 스타일이 맘에 든다’라며 엄지손가라락을 치켜세운다는 것. 최경주는 “다른 영어는 잘 못 알아들어도 그런 말은 귀신같이 알아 듣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바람에 순간 ‘빵’ 터졌다.
▲ 지난해 최경주(오른쪽)와 신병철 CJ그룹 부사장이 최경주CJ인비테이셔널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최경주가 2011년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출신 골퍼로는 최초로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때 당시 그는 2008년 하와이 소니오픈대회 이후 3년 만의 정상 탈환이었다. 즉 1승을 거두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 당시 그는 체력이 문제니,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느니 하는 날선 여론에 직면하며 3년의 시간을 버텼고 결국엔 PGA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밥이 끓는다고 바로 퍼 먹을 수 없진 않나. 뜸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지…. 골프도 마찬가지다. 안 되면 되게 하기 위해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준비 과정이 길어지면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과감히 은퇴해야 한다. 당시의 슬럼프는 내가 만든 게 아니었다. 기자들을 비롯해 주위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들에 의해 최경주는 오랜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 없는 골퍼가 되기도 하고, 우승을 하면 온갖 역경을 딛고 일군 승리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관심과 수식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난 내가 슬럼프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배를 항구에 정박시키려 할 때 관성의 힘에 의해 배가 닿을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끝까지 잘 닿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힘도 주고 격려도 해줘야 한다.”
# 가장 기억나는 우승이 있다!
2000년 루키 시즌으로 시작한 PGA투어. 어느새 13년의 세월을 함께 한 그곳에서 최경주는 8승을 거뒀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 언제인지를 물었다.
“2007년 잭 니클라우스가 창설한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완도에서 뒤늦게 골프를 시작한 나한테 레슨을 가르쳐준 건 사람이 아닌 책이었다. 잭 니클라우스가 쓴 만화식의 골프 교본을 들고 외우다시피하면서 골프를 배웠는데 그걸 쓴 ‘골프의 전설’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았으니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나. 트로피를 받고 잭 니클라우스와 인터뷰 때 ‘난 당신 책으로 골프를 배웠다’라고 말했다. 그가 무슨 책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책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니까 그가 하는 말이 ‘그 책은 내가 쓴 게 아니라 기자가 대필해준 것’이라고 말해 당황했었다(웃음).”
두 번째 감동을 준 우승은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대회에서의 우승컵이었다고 한다.
“3년 동안 무관에 그치자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인터넷에 넘쳐 났다. 기도 안 차는 기사들이 많았다. 그런 기사를 쓴 사람의 속을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속을 갖고 있어야 그런 엉터리 기사를 쓰는지, 자신도 나처럼 똑같이 당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승을 거머쥔 탓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닌 쓰라림의 눈물이었다. 바닥을 쳐본 운동선수만이 느낄 수 있는 쓰라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우승한 선수의 국기가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에 1년 내내 꽂혀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승 이상의 의미를 선물한 대회였다.
# 잊지 못할 캐디가 있다
흔히 골퍼와 캐디와의 관계를 ‘바늘과 실’ ‘아내와 남편’으로 비유한다.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최경주한테는 9년을 동고동락했던 캐디가 있었다. 한국 골프팬들한테도 잘 알려진 앤디 프로저(60)다. 최경주의 PGA 통산 8승 중 7승을 앤디와 함께 일궜다. 지난해 공식 결별을 선언했다가 올해 새로 구한 캐디가 말썽을 일으키자 최경주는 앤디한테 SOS를 치기도 했었다.
“앤디는 참 특이하고 결이 좋은 사람이다. 나를 대하는 마음이 선수 이상이었다. 2003년 9월에 만나 9년을 함께 보냈으니 얼마나 깊은 정이 들었겠나. 그는 나한테 아내이자 큰형 같은 존재였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가 휴가 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농담을 던진다. 그때마다 그가 한 말이 있다. ‘이곳(미국)에 KJ가 있는 한 난 돌아올 수밖에 없다’라고. 내가 붙인 별명이 있다. ‘여시’ ‘귀신’이라고. 그가 건네주는 채로 치면 백발백중이었기 때문이다. 환갑이 넘어 투어 생활을 하려다보니 체력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엔 내 곁을 떠나기로 했고, 마지막 이별을 하는 순간엔 서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분이다.”
최경주는 골프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지금도 첫 홀에 올라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는 걸 즐기려 한다. 어려운 숙제, 난관들이 쉽게 풀릴 것 같은데도 정성과 간절함이 있어야 그게 해결된다는 것도 이젠 알고 있는 그다. 그래서 ‘최경주한테 골프란?’이란 화두를 던졌다.
“나한테 골프는 인생이다. 18번 홀 중에서 지금 11번 홀 정도에 다다른 것 같다. 은퇴 시기를 6년 후로 보고 있는데, 앞으로 2년 동안은 ‘뒈지게’ 한 번 해보고, 그 후에는 승부에 상관없이 즐기면서 골프를 치고 싶다. 한 홀 한 홀에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그걸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는지를 보여드릴 것이다. 그게 곧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