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주 구인회 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고교 시절 구광모 씨(왼쪽부터). | ||
그동안 재계 1위 삼성그룹과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의 2세 승계 작업이 검찰수사와 맞물려 주목을 받아왔다. 반면 재계 3위 SK그룹은 40대 중반인 최태원 회장이 아직 한창이란 이유로 승계논의가 시기상조란 평을 듣는다. 재계 4위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동생 구본능 희성정밀 회장 아들 구광모 씨를 양자로 입양하면서 LG 구 씨 가문의 새로운 4세대 장자를 등장시켰지만 LG 측은 “경영권 승계에 대해 (구본무) 회장님이 결정내린 바가 없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구광모 씨의 의미심장한 최근 행보가 포착돼 그를 황태자로 보는 재계의 시선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최근 구 씨가 여의도의 LG 쌍둥이 빌딩에 매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일요신문>에 의해 포착됐다. 현재 구 씨는 부서를 돌며 OJT(On the Job Training:견습 훈련)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이는 구인회-구자경-구본무 3대에 걸쳐 내려온 LG그룹에 드디어 4세대 경영인이 경영 수업에 첫 발을 내디딘 의미심장한 변화다.
78년 1월 생인 구 씨는 그간 학생 신분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왔다. 지난해까지는 국내 한 IT솔루션 업계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 동안에도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와 LG상사의 지분을 조금씩 사 모으고 있어 승계 작업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했었다.
LG가는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부터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까지 장자 계승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구본무 회장은 현재 연경(28), 연수(10) 두 딸을 두고 있다. 연경 씨는 올해 5월 결혼했다.
재계에는 오리온 그룹과 동양 그룹처럼 두 딸이 각자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여성 경영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LG가의 경우 여자 가족은 경영 참여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었다.
단순히 장자 계승이 원칙이라면 입양절차 없이도 차순위인 구광모 씨가 경영권을 승계받을 수 있겠지만, 구본무 회장은 2004년 11월 12일 구 씨를 입양시키는 것으로 장자 계승의 원칙을 지켜냈다. 획일적인 원칙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분가한 형제의 사업과 겹치는 사업에는 진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나, GS그룹과 LG그룹이 별다른 잡음 없이 계열 분리가 가능했던 것을 보면 LG가의 일원들이 이 원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켜내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그룹에 출근하기 시작한 구 씨는 현재 대리 직급으로 불리고 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직원들이 대리로 승진할 때라 그에 맞는 직급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구 씨가 자리를 마련한 곳은 LG화학. 8월 말부터 재무회계파트를 시작으로 업무를 익히고 있다. 한 달이 지난 현재는 인사부에 출근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주)LG를 놔두고 LG화학을 선택한 것은 일단 실무 분야를 겪어 보도록 배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 여의도에 위치한 LG 쌍둥이 빌딩. | ||
LG그룹의 대표적인 사업부인 LG전자보다 LG화학을 택한 것은 쌍둥이 빌딩의 서(西)관에 위치한 LG전자가 보안을 이유로 현관부터 출입이 까다롭게 통제되는 반면, 동(東)관에 있는 LG화학은 엘리베이터를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도 있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이다. 또 (주)LG와 같은 동관 건물에 있어 그룹 상층부와의 접촉이 용이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LG화학의 인사본부장은 예전 (주)LG의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인물로 그룹 사정에 훤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 보니 그 아래서 업무를 배우는 것이 그룹 내 업무를 빨리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구 씨의 경영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구 씨의 퇴근 시간은 낮 12시. 이후 구 씨는 지맷(G-mat)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영어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내에서는 구 씨가 미국 MBA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한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MBA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지맷과 토플(TOEFL)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 이론보다는 실무를 중시하는 미국 MBA의 경우 실무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구 씨의 경영 수업은 본격적으로 업무를 익힌다기보다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실무 감각을 조금 맛보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오전에는 실무 감각을 익히고 오후에는 입학 준비를 위한 시험 공부를 하는 일정인 것이다. 어쨌든 지금 막 학교를 졸업한 스물아홉 살의 구 씨는 적응 기간을 가지는 배려를 받은 셈이다.
한편 LG 그룹에 출근을 시작한 구광모 씨가 언제 공개 석상에 나서게 될 지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새롭게 LG 그룹의 ‘황태자’로 떠오른 이상 재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