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개막전에서는 추승균 코치의 등번호 4번, 영구 결번과 은퇴식이 진행된다. 친형처럼 따르고 좋아했던 이상민 코치도 함께 자리를 하는 탓에 추 코치는 “행여 울기라도 할까봐 걱정이다. 상민이 형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되는데…”라며 은퇴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개막전이 열리기 전 경기도 용인 죽전에서 ‘초보 코치’들을 만나 데뷔전을 앞둔 심정을 들어봤다.
@‘코치’로 산다는 건
‘초보 코치’들의 하루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선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기상 시간이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계속 잠을 청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상민(이): 그때 일어나서 선수들 아침 먹는 거 체크해요. 이전의 저처럼 아침 안 먹고 자는 선수들 깨워서 아침 먹게 하고, 식사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거죠. 처음에는 이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추승균(추): 코치가 은근히 할 일이 많아요. 아침도 아침이지만 막내 코치다 보니 감독님 계실 때는 퇴근할 수가 없어요. 저녁에 술자리도 많고요. 그래도 감독님이 배려해주시는 편이에요. 안 그랬으면 위가 견뎌나지 못했을 겁니다. 선수 때 ‘한 술’한다고 자부했었는데, 어휴 힘들어요.
이: 벤치에 앉아 있으니까 선수 때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돼요. 우리 팀의 허점, 선수의 단점들이 눈에 속속 들어오더라고요.
추: 형님도 그래요? 저도 은근히 답답해지는 걸 느껴요. 선수들 행동이나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들 때는요. 허재 감독님이 워낙 불같은 성격이라서 저는 큰소리도 못 쳐요. 저까지 몰아치면 선수들이 힘들어하니까 오히려 선수들을 다독거려주는 입장이죠.
이: 우리 김동광 감독님 성격도 만만치 않아(웃음).
@선수 때의 추억
추: 한양대 시절부터 상민 형은 우상이었어요. 인기도 많았고 실력도 정말 좋았고. 한 마디로 배울 게 많은 선배였죠.
이: 승균이가 코치되더니 립 서비스가 심한데요^^. 사실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제 모습은 좋게 포장된 이미지가 많아요. 실제로는 모범, 성실과는 거리가 멀었죠. 야간 운동도 빼먹고 놀러 다니는 걸 좋아했고 담배도 피우고 술 마시는 것도 즐겨했고요. ‘산소 같은 남자’ 이미지와는 정반대였어요^^.
추: 그래도 술은 잘 못하시잖아요. 술자리는 좋아하시지만. 참, 형님! 제가 신인 때 형님의 ‘방졸’이었잖아요. 그때 형님이 절 혼자 두고 외출하시곤 해서 조금 서운했습니다.
이: 사실 승균이랑은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어요. 더욱이 승균이는 모범과 성실로 대변되는 선수라 술 마시는 걸 안 좋아하는 줄 알았죠. 솔직히 제대로 챙겨주질 못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한 번 술자리를 해보니까 진짜 잘 마시는 거예요. 같이 안 어울렸더라면 많이 서운해 할 뻔 했어요.
@최고의 외국인 선수?
추: 아무래도 조니 맥도웰과 찰스 민렌드이겠죠. 둘 다 똑똑했거든요.
이: 그중에서도 맥도웰은 힘도 좋고 영리한 플레이를 했어요. 얼마 전에 페이스북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영어가 달려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웃음). 한 번 통화만 했어요. 한국에 있을 때 맥도웰의 꿈이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 차리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의류 사업을 한다고 하네요.
추: (조)성원이 형이 포함된 ‘이-조-추’ 트리오에다 ‘검은 탱크’ 맥도웰까지 포진된 전력은 어느 팀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구성이었어요. 프로농구 역대 가장 막강했던 멤버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물었다. 만약 ‘이조추’ 트리오에다 조니 맥도웰까지 포진한 상태에서 다시 붙고 싶은 팀이 어디인 지를. 이상민 코치가 먼저 대답했다.
이: 2007-200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원주 동부가 삼성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이조추’ 트리오와 맥도웰이 가세한 팀과 당시의 원주 동부가 맞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해요. 그때 김주성은 ‘사람이 아니무니다’였어요. 어떤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왜 못하는 거야?(웃음)
추: 전 2001-2002 시즌에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동양 오리온스와 다시 붙고 싶어요. (김)병철 형, (전)희철 형에다 외국인 선수 마커스 힉스가 있을 때 정말 막강했어요.
이: 안 될 걸? 맥도웰을 누가 막아? 맥도웰을 막을 선수가 없잖아.
추: 그런가? 그런데 외국인선수들은 한국에서 2,3년만 있으면 처음 보여줬던 성실함을 잃어버려요. 많이 약아지고 긴장감이 사라지죠. 구단에 바라는 것도 많고.
이: 그래서 한 팀에 오래 있으면 안돼요. 그런 점에서도 맥도웰은 특별한 선수였어요.
@영구결번식과 눈물
이: KCC와 삼성의 개막전에 승균이의 영구결번식과 은퇴식이 치러진다는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이죠. 전주실내체육관에는 제 등번호였던 11번이 영구결번 돼 걸려 있어요. 당시에는 제가 미국에 있는 바람에 영구결번식 행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해 이번에 처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전 제 은퇴 기자회견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조)성원이 형 은퇴식 때는 진짜 눈물이 마구 나더라고요. 설마 승균이 은퇴식에서 울기야 하겠어요?
추: 저도 울면 안 되는데, 분명 훌쩍 거리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보면.
이: 남자의 눈물에는 여러 사연들이 담겨 있어요. 제가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던 때가 아마 KCC에서 삼성으로 팀을 옮길 때 가졌던 입단 기자회견이었을 거예요. 사실 기자회견 장소로 가면서도 제 마음은 은퇴 쪽으로 기울고 있었어요. KCC에서 버림받았다는 충격과 더 이상 농구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KCC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기자회견 장소에 나타나 ‘삼성에 입단하는 대신 은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라고 말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어요. 기자회견 장소로 차를 타고 가는데 한 지인의 전화를 받게 됐어요. 그 분은 저한테 은퇴는 절대 안 된다고. 지금 은퇴하면 반드시 후회한다며 강하게 만류하시더라고요. 기자회견 장소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이 오락가락했어요. 결국 삼성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을 굳히고 발표를 했는데,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린 것 같아요. 그런데 인생이 참 재미있어요. 그때 왜 울었나 몰라. 삼성에서 이렇게 코치 생활까지 하고 있는데(웃음).
추: 저도 그때 상민 형의 모습을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을 형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가는 거예요. 상민 형이 삼성으로 팀을 옮긴 후 처음으로 맞붙었던 경기가 기억나네요. 형의 모습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보였어요. 잠시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이 들더라고요. 패스를 하면 제가 가서 받아야 할 것 같고 상대팀 선수라는 생각이 안 들다보니까 플레이하는데 혼선이 생기는 거예요.
이: 그런데 5개월 동안의 코치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선수와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코치는 물론 감독님이 얼마나 고민하고 갈등을 하시는지 알았다는 점입니다. 트레이드되거나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하는 선수 입장에선 그런 결정을 내린 감독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감독님 또한 선수 못지 않게 가슴 아파하시고 상처 받는다는 걸 코치되고서야 알게 됐어요.
추: 맞아요. 제가 코치 생활 시작한 이후 KCC에서 두 명의 선수가 옷을 벗었습니다. 정말 마음 아파요. 선수를 취하고 버릴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고 해서 마음 편한 감독님은 한 분도 없을 겁니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원망이나 배신감이 들 수 있지만, 그걸 결정하는 분 또한 잠 못 이루시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는 걸 저도 뒤늦게 보게 됐습니다.
@한 번쯤 뛰어보고 싶었던 팀?
이: 전 어렸을 때부터 유재학 감독님을 롤 모델로 삼았어요. 사석에서는 편하게 ‘재학이 형’이라고 부르는데, 재학이 형 때문에 대학도 연세대로 간 거였어요. 그분의 플레이가 정말 좋았어요. 모든 걸 배우고 따라하고 싶었죠. 코트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드의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감독님 밑에서 선수 생활했음 했어요. 첫 번째 FA 때 그럴 기회가 찾아왔는데 모기업이 재정 위기로 넘어가는 상황이라 인연이 닿지 못했습니다.
추: 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대표팀에서도 여러 감독님들을 만나기 때문에 굳이 KCC를 떠나 다른 감독님 밑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이: 그러니까 승균이는 성실한 선수였던 거예요. 전 좀 삐딱해서 다른 감독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고 하하.
@‘산소같은 남자’ VS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 ‘소리없이 강한 남자’란 별명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가끔은 ‘소리있는’ 남자이고 싶었으니까. 결국엔 2인자라는 뜻이 그 별명 안에 내포돼 있잖아요. 그래도 상민 형의 ‘산소같은 남자’보다는 백배 나아요(웃음)
이: 전 이 별명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어요. 담배를 피워도, 술을 마셔도, ‘산소 같은 남자’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느냐는 팬들 질타 때문에. 이영애 씨의 광고 때문에 졸지에 ‘여자’에서 ‘남자’로 바뀐 그 별명은 오랜 시간 인기상을 받게 했던 계기가 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인기상을 받는 것도 창피하더라고요. 승균이야말로 ‘소리없이 강한 남자’ 맞아요. 감독님들 마다 승균이의 성실함과 탁월한 실력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셨지만 이상하게도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9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승균이는 팬들 보다 동료 선수들, 감독님들이 더 인정해줬던 베스트 플레이어였어요.
추: 상민이 형의 패스는 제가 지금까지 받아본 패스 중 최고였습니다. 대표팀에서 강동희 감독님과도 김승현과도 호흡을 맞춰봤지만 상민이 형은 슈터가 슛을 쏘기에 제일 편하고 좋게 패스해주는 가드였어요.
이: 저도 그래요. 슈터는 어느 자리, 어느 지역에서든 슛을 쏠 줄 알아야 해요. 현재 각 팀 슈터들 중 수비 잘하는 슈터가 누가 있나요?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추승균, (조)성원이 형, (문)경은이 형은 최고의 슈터였어요. ‘방가’ 방성윤이 진정한 슈터에 근접해 가다가 공을 너무 난사하는 바람에 무너졌던 케이스이죠. 전 경기를 뛸 때 냉정하게 판단했어요. 그 날 경기에서 컨디션이 좋은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패스를 했어요. 선배, 친분, 전혀 관계없었죠. 제가 패스하려고 하는데 슈터가 움직여주질 않으면 어떻게 패스를 하겠어요. 빠른 판단과 눈치있는 플레이로 인해 가드의 마음을 읽는 슈터가 저한테는 최고의 슈터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프로농구에는 슈팅가드가 엄청 많은데 반해 리딩가드를 찾기 어려워요. 그 또한 안타깝네요.
@그리고 서로에게 전하는 메시지
추: 올시즌 KCC나 삼성이나 전력면에서 어려운 시즌을 치를 것 같아요. 형도 저도 서로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지금부터는 모두 경험으로 쌓이기 때문에 나중에 감독이 될지 어떨지는 몰라도 뭔가를 목표로 세웠을 때 단단한 바탕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상민 형은 잘 해내실 겁니다. 저도 더 노력할 것이고요.
이: 선수 때는 성실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성실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선수들한테 편하고 살가운 코치로 다가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네요. 종종 싫은 소리도 해야 하니까. 그래도 승균이와 제가 코치로 첫 발을 내딛는 첫 시즌이잖아요. 욕 안 먹으려면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막내 코치들이 이렇게 인터뷰해도 되는 건가?(웃음)
이-추 코치는 다소 민감한 문제라는 전제를 달고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느꼈던 안타까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이번 드래프트 때 개인적으로는 모든 선수들을 다 뽑고 싶었어요. 그런데 농구팀들 중에는 2군을 운영하는 팀이 세 팀 밖에 안 돼 그 선수들을 다 뽑을 수가 없는 거예요. 현재 2군제도를 실시하는 팀이 KT, SK, KCC 밖에 없거든요. 소위 프로 스포츠라면 야구, 축구에 있는 2군 제도를 모두 실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드래프트 장에 나왔다가 선택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후배들 보면서 정말 마음 아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각자의 차에 오른 코치들. 어? 그런데 차종이 바뀌었다. 선수 시절, 고가의 수입차를 몰고 다녔던 그들이 국산차로 바꿔 타고 다니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추승균 코치가 간단하게 정리한다.
“어휴, 막내 코치가 어떻게 외제승용차를 몰고 다녀요. 감독님도 국산차를 이용하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