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는 응답하라! 본지 취재 결과 문재인-안철수 후보간의 단일화 작업이 수면 아래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후보가 11일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타운홀미팅을 갖는 모습. 사진제공=문재인 |
▲ 안철수 후보가 12일 ‘안철수에 바란다’란 주제로 재외국민들과 타운홀미팅을 가졌다. 사진제공=안철수 |
안철수 후보가 공식적으로 대권 출사표를 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진보진영의 한 교수는 “(단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소명”이라고 했다. ‘안철수-문재인’ 단일화만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였다. 정치권 일각에선 “누가 되든 (단일화가) 성사만 되면 무조건 정권교체”라는 호언장담까지 나왔다.
하지만 안 후보가 단일화에 대해 선을 긋고 나서면서 야권의 부푼 꿈은 꼬이기 시작했다. 안 후보는 지난 9월 19일 대권출마 기자회견에서 단일화를 묻는 질문에 정치 쇄신과 국민 동의를 거론하며 “단일화 논의는 현 시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 후보 출마선언을 계기로 단일화 협상에 나서려 했던 민주통합당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안 후보를 다소 얕봤던 분위기가 있었다. 민주통합당이 주도하는 협상 테이블로 안 후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후 양측의 샅바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도 “지지율은 앞서지만 조직이나 경험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단일화 논의에) 성급하게 나설 필요가 없었다”고 귀띔했다. 양측 모두 단일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시기 등을 놓고 견해가 엇갈렸던 것이다.
단일화 주도권을 둘러싼 두 후보 진영의 ‘기 싸움’은 최근 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분위기다. 상대방을 겨냥한 공세의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선공은 문 후보 측이 날렸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안 후보를 겨냥, “전 세계 민주국가에서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국가를 경영한 사례는 없다.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던 문 후보 역시 10월 10일 전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민주통합당으로의 단일화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 후보 문재인으로의 단일화만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며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무소속 대통령 불가는) 단일화 승리를 위해 문재인 캠프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간결하고 효과적인 문구”라고 전했다.
안 후보 측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유민영 대변인은 “지난 1년간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 온 국민의 기대는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을 다 이룰 수 있는 후보를 원하는 것이다. 국민은 다른 기대를 갖고 있는데 지금 이대로 가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안 후보도 “지금 와서 정당후보론을 꺼내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지금까지 정당이 어떤 책임을 졌는가”라며 문 후보 측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동안 정제되고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해 왔던 안 후보의 이러한 대응에 정치권에선 ‘정치인 안철수의 진화’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안 후보 발언에 대해 문 후보는 “그렇게 험한 말을”이라며 불쾌한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처럼 두 후보 간 공방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기미를 보이자 정치권 일각에선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의 대선 필패 공식으로 여겨지는 단일화 무산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두 캠프의 일부 실무자들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안 후보 측 한 관계자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지금 단일화 성사 여부를 논의하기엔 시기상조”라면서도 “우리뿐 아니라 문 캠프에서도 독자적인 완주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3자구도로 싸워도 저마다 승산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야권 인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단일화 무산=대선 필패’라는 인식이 강하다. 최근 진보 성향의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가 단일화 3단계 방안을 제시한 것도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 결렬에 대한 야권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후보 진영에선 단일화 무산 가능성에 대해 입을 모아 일축하고 있다. 시기와 방법 등을 놓고 의견이 부딪히고 있긴 하지만 단일화라는 대명제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얘기다.
민주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가 안 후보와 아무리 펀치를 주고받는다한들 집안싸움일 뿐이다. 박근혜라는 외부의 적을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둘 다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 역시 “안 후보와 문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은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왔던 사이가 많다. 이번에 민주통합당에서 안 후보 캠프로 건너간 송호창 의원을 비롯해 두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들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수면 아래에서는 여러 채널을 통해 단일화 조율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문 후보 측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지난 10월 초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직을 지냈던 전직 관료가 안 후보와 가까운 한 지인에게 단일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양측이 각각 절반씩 추천한 인사들로 꾸려진 제3의 별도기구를 11월 초까지 마련, 단일화 협상에 나서자는 게 골자다. 당시 이런 소식을 접한 안 후보 측 인사는 “(안 후보와) 상의해 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안 후보에게 그다지 유리하진 않을 것 같다”며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그동안 단일화를 위한 페이퍼 정당 혹은 위원회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이번 문 후보 측 제안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현재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단일화 작업의 물밑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데 있다. 비록 볼썽사나울 정도로 치고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양측의 핵심 실무진들은 이미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인 단일화 협상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민주통합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일화 방안을 제시한 것은) 맞다. 아직 그 내용을 밝히긴 어렵다. 얘기를 꺼낸 당사자의 위상을 감안했을 때 문 후보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안 후보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문재인 캠프 진성준 대변인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과연 문 후보 측에서 제안한 단일화 협상 기구의 실체 및 내용은 무엇일까. 연말 대선정국 판세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뇌관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수면위로 부상할지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2선 후퇴 안하면 행동 나설 것”
민주통합당 쇄신파를 대표하는 황주홍 의원이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다. 초선의원인 황 의원은 이미 지난 7월,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저축은행 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 소환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 발언,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5일, 자신의 공식 블로그에 게재한 ‘초선 일지’라는 글을 통해 박 원내대표와 이해찬 당 대표 등 당 지도부를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비판했다.
황 의원은 글을 통해 “이-박(이해찬, 박지원)은 이미 더는 나의 당 대표, 나의 원내대표가 아니다. 당의 대표적 ‘두 얼굴’로서 더는 ‘아니올시다(No more)’다. 두 분은 입만 열면 상대 당과 후보를 비난하고 조소하고 저주함으로써 구태정치 연장을 고착화하고, 치욕적인 이미지를 민주당에 부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의 전 국민이 두 분에게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두 분과 우리 당 후보(문재인 지칭)는 정작 모르는 것 같다”며 강도 높은 독설을 덧붙였다.
기자와 통화한 황 의원은 박 원내대표와 이 당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한 ‘초선 일지’ 게재 배경에 대해 “민주당 쇄신이 대선 승리의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보다 먼저 쇄신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변화 없이 국민에게 표만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글을 게재한 것은 내 나름의 고충과 안타까움의 표현이다”고 주장했다.
황 의원은 당 지도부의 중심인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2선 퇴진을 분명히 요구했다. 그는 “두 분이 깨끗이 2선 퇴진해야 한다. 당 쇄신을 위해 이번 주부터 쇄신파 의원 41명이 ‘쇄신의원토론회’를 갖기로 했는데 참석인원 모두가 두 분의 2선 퇴진에 공감하고 있다. 공감대는 형성됐는데 본인들이 버티고 안 나가니까 문제다. 우리가 억지로 끌어낼 수는 없지 않느냐. 안타깝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더불어 문재인 후보와 선대위 측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그는 “우리 당 선대위와 안철수 후보 간 날카로운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우려된다. 얼마 전 우리 당 선대위 측 인사(안도현 선대위원장)가 안 후보를 일컬어 ‘소멸하고 있는 태풍’으로 지칭했다.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이러한 네거티브 전략은 우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행위다. 우리 당과 안 후보 측은 서로 띄워 주고 덕담하고 안아줘야 하는 관계다. 제로섬(한 사람이 이기면 한 사람은 지는 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합하면 모두가 이득인 게임)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포함한 우리 당 쇄신파 의원들은 야권 대선 승리를 위해 우리 당과 안 후보 측 가운데서 공정한 심판관 역할을 할 것이다. ‘안’이든 ‘문’이든 잘못하면 견제할 것이다. 이것이 대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황 의원은 “당 지도부 2선 후퇴와 당 쇄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쇄신파 의원들은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