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검사’ 제외됐으면서도 ‘자율배상’엔 가장 먼저 반응…소비자주권 “임종룡 회장 전관예우” 주장
홍콩H지수 ELS 상품은 지수가 만기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받는 구조를 띤다. 현재 논란이 되는 상품의 계약 시점은 2021년 상반기다. 당시 지수는 1만~1만 2000포인트 수준이었으나 현재 6000포인트가 붕괴했다. 이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이유다.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총 판매 잔액은 19조 3000억 원이다. 이 중 79.6%인 15조 4000억 원이 올해 만기를 앞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만기 예정 잔액은 10조 2000억 원이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 4조 7700억 원, NH농협은행 1조 4800억 원, 신한은행 1조 3770억 원, 하나은행 7530억 원, 우리은행 249억 원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12월 주요 판매사를 대상으로 현장·서면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일부 판매사에서 전반적인 관리 체계상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돼 올해 1월부터 ELS 현장검사를 두 차례 진행했다. 대상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은행 5곳과 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KB·NH투자·신한, 증권사 6곳이었다. 우리은행은 금감원의 1·2차 현장검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융당국은 ELS 판매 전체를 중단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월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은행에서 (전체) ELS를 판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질의에 “상당 부분 개인적으로 공감한다”고 답한 바 있다. 이 대답 직후 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은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열고 ELS 관련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키로 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부터 ELS 판매를 중단해 5대 금융그룹 중 유일하게 우리은행만 ELS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이러한 행보가 가능한 데는 박근혜정부 시절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있기 때문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금융당국이 금융위원장 출신의 ‘금피아’ 낙하산 임종룡 회장을 전관예우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봐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이 현장검사에서 우리은행을 배제한 까닭은 다른 은행에 비해 잔액 규모가 적고, 제한된 검사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분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2019년 수조 원대 대규모 환매 중단을 초래한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사태에서는 현 사태보다 많은 6곳의 은행이 검사를 받은 데다 판매 규모가 우리은행의 홍콩H지수 ELS 판매 금액보다 적은 곳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논란이 불거졌을 때 판매 은행을 전수 조사하는 게 금융당국의 원칙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우리은행은 판매액이 다른 은행보다 적기 때문에 신속성을 고려하면 가장 먼저 조사를 했어야 했다”고 전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는 금액과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형평성을 위해서는 전체를 다 조사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우리은행은 금융당국의 제안을 가장 먼저 수용하는 모습도 보여 눈길을 끈다. 우리은행은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안을 기준으로 가장 먼저 자율 배상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22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 일정과 손실 예상 규모 등을 보고하고 자율 배상에 관한 사항을 부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투자 손실에 대한 가입자별 배상 비율은 20~60%가 될 것이며 평균 배상 비율은 40%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금감원이 지난 11일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홍콩H지수 ELS 검사결과 및 분쟁조정기준안 예상 배상 비율에 부합한다.
우리은행의 자율 배상안은 다른 은행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동안 은행 측은 섣불리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상액이 최대 ‘조 단위’로 관측되는 만큼 과잉 배상에 따른 판매사 주주들이 배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서다. 또 우리은행의 배상 비율은 업계 기준이 될 수 있다. 손실률 50%, 배상 비율 40%를 단순 적용할 경우 판매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의 배상 규모는 상반기에만 9500억 원에 이를 수도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사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것 외에는 말씀 드릴 수 있는 게 없다. 어떤 안건으로 회의가 진행될지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현장검사에서 배제됐더라도 판매를 안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율 배상 역시 검토 중이나 세부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우리은행과 관련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금융당국과 우리은행이 서로 돕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우리은행에 대한 감독 강도를 완화하는 대신 우리은행은 금감원의 권고에 가장 먼저 반응해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금융당국이 제안한 상생금융 활성화 방안에서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자율 프로그램도 가장 먼저 발표한 바 있다.
우리은행은 당초 홍콩H지수 ELS를 판매에 신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담당 리스크 부서가 중국 및 홍콩 주식시장을 꾸준히 모니터링한 결과 홍콩H지수 변동성 확대가 우려돼 중국 및 홍콩 투자 상품 신규 출시를 보류하거나 비중을 축소하도록 투자 상품 부서에 전달했다. 투자 상품 부서는 리스크 부서의 의견을 수용해 2019년부터 판매 규모를 축소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판매를 완전히 중단했다. 현재는 고객 요청일 경우에만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자율배상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상반기 만기 예정 금액이 적어서다. 우리은행은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 가산 요소 50%대로 가정했을 때 총 배상액 규모가 최대 1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리은행은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자율배상을 결정하더라도 배임 혐의를 받을 소지가 없다는 1차 법률 검토 결과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조사 대상은) 금융당국이 결정하는 일이지 우리가 넣어달라 빼달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또 그 대가로 선제적 자율 배상을 검토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LS 판매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전부터 ELS 판매를 PB(프라이빗 뱅커)창구로만 제한하고, 판매 인력도 필수 자격증을 보유하고 판매 경력이 풍부한 직원으로 한정하는 등 상품 판매 창구와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해 왔다”며 “우리은행은 금융소비자의 투자 상품 선택권 보호 차원에서 판매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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