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도 “내 목소리랑 구분 안돼” 우려…방통위, 목소리는 저작권법으로 보호 안돼 고민 중
#AI 커버곡, 어디까지가 재미일까
‘밤양갱’ 커버곡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버전 중 하나는 배우 황정민 버전이다. 물론 그도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 그의 대사를 이어붙여 만든 AI 커버송은 제작자의 기막힌 아이디어와 맞물려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3월 28일 오전 기준 조회수 376만 회를 기록 중이고, ‘원본 노래보다 황정민의 밤양갱을 더 많이 들었다’ ‘밤양갱 AI 시리즈 중 제일 나은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더 기막힌 버전도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른 ‘평양갱’도 등장했다.
이런 AI 커버송은 ‘밤양갱’ 이전에도 다양하게 변주됐다. MZ세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인 뉴진스가 부른 ‘하입 보이’를 가수 임재범이나 팝스타 브루노 마스 버전으로 제작된 영상도 올라왔다.
물론 이는 일종의 놀이라 볼 수 있다. 특정 기술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제는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AI 커버송을 만든다. 이를 만들어주는 유료 사이트도 있다. 즉 커버송을 만드는 것이 대단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나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엔지니어의 영역이 아닌 세상이 됐다. 적잖은 네티즌이 이 놀이 문화에 동참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뮤지션들의 입장은 다르다. 놀이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목소리가 도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윤정은 자신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밤양갱’ 커버송이 나오자 “이건 좀 심각하다. 소름 돋는다”면서 “노래까지는 AI가 안 될 줄 알았는데 이러면 가수가 레코딩을 왜 하냐. 그렇게 해서 음원 팔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박명수도 거들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입힌 ‘밤양갱’ AI 커버곡이 나온 것에 대해 박명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저도 들어봤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냐”면서 “재미삼아 하는 거면 상관없지만 보이스피싱하는 나쁜 인간들이 AI 목소리를 활용할 수도 있지 않냐.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AI 커버송 문제는 이미 ‘재미’ 수준을 넘어섰다고 음악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를 ‘딥페이크’와 동일선상에 놓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 시장에서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톱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내세운 딥페이크 영상이 등장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AI로 합성된 커버송 역시 ‘모습’과 ‘목소리’의 차이만 있을 뿐, 넓은 범주로 봤을 때 딥페이크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다고 하다라도 현재 법안으로는 막는 데 한계가 있다. 기술의 발달이 이에 따른 법적, 윤리적 기틀을 마련하는 속도를 크게 앞지르고 있는 셈이다.
#AI 커버송, 법적 처벌 가능한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법적인 처벌 근거가 없다면 불법이라 볼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는 네티즌도 있다. 실제로 AI 커버송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는 것일까.
통상 노래에는 저작권이 있다. 그 노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노래를 만든 원작자, 즉 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 이를 통해 2차, 3차 저작물을 만들 때 저작인접권도 따져야 한다. 하지만 ‘가수의 목소리’ 자체는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즉 AI 커버송을 저작권법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영상으로 통해 상업적 이익을 누렸다면, 부정경쟁행위로 보고 퍼블리시티권을 적용해 볼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인격 요소를 도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소리 역시 이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음성에 대한 음성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을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를 무단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면 범법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방통위가 최근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 중에는 AI 피해 구제를 위한 전담 창구 신설이 포함됐다. 아울러 AI를 활용한 콘텐츠에는 “AI가 제작했다”고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무분별한 콘텐츠 생성 및 유포가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의 질서를 저해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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