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과 달리 농협금융 인사 어려움 겪어…후보시절 공약은 조합장과 조합원 갈등 부추길 수도
NH투자증권은 지난 3월 27일 제57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윤병운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취임 첫날인 지난 3월 7일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사장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NH투자증권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3월 11일 윤병운 NH투자증권 부사장을 신임 사장 후보로 최종 추천했다.
‘농협법’상 농협중앙회장에게는 인사권이 없다. 농협중앙회장은 비상임·명예직으로서 지역조합 및 조합원 권익 증진을 위한 대외활동으로 업무가 국한된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을 100% 소유하고 있어 농협중앙회장이 농협금융 계열사 임원 인사 단행시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늘 제기돼 왔다.
농협중앙회는 중앙회장이 바뀌면 그에 따른 인사도 이뤄져왔다. 이성희 전 중앙회장 취임 당시 직전 회장인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여겨졌던 허식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소성모 전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대표, 나병만 전 농협유통 대표, 이대훈 전 NH농협은행장, 이상욱 전 농민신문사 사장, 김위상 전 농협대학교 총장 등의 사퇴가 이어진 바 있다.
NH투자증권 대표자리도 강호동 중앙회장 사람이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석준 회장이 사재훈 전 삼성증권 부사장을 지지하면서 균열이 생겼다. 금융감독원이 NH농협은행과 NH투자증권 등에 대한 검사에 들어가면서 양측이 지지한 인물은 모두 취임에 실패했다.
강호동 회장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 신규 임원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우군을 확보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3월 21일 서울 서대문 본관에서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고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 여영현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대표, 박석모 조합감사위원장을 선임했다. 농협경제도 박서홍 전 NH농협은행 부행장을 NH농협경제지주 대표로 선임했다.
중앙회와 농협경제 및 계열사 임원은 각 회사 인사추천위원회(인추위) 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각 회사의 이사회에서 의결 후, 각 회사 총회를 통해 선임된다. 인추위 위원 7명은 모두 각 회사의 이사회에서 위촉됐다. 이사회 구성원의 50%는 조합장으로 꾸려진다. 중앙회장의 인사 입김이 농협금융보다 농협경제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다. 총회 역시 회원 기준이 지역조합, 품목조합 및 품목조합연합회 등 단체 위주다. 각 조합 수장들의 의견이 높게 반영돼 사실상 이사회에서 의결된 임원들은 총회를 ‘프리패스’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규 선임된 지준섭 부회장, 여영현 대표, 박석모 대표는 강호동 중앙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NH투자증권 대표 선임에 힘을 쓰지 못한 강호동 회장은 박흥식 광주비아농협 조합장을 농협금융 비상임이사로 추천, 선출토록 함으로써 농협금융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협금융 비상임이사는 농협금융 임추위를 통하지 않고 주주총회에서 선임된다. 농협금융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중앙회의 회장 측근이 비상임이사로 선임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진 이유다. 안용승 전 농협금융 비상임이사도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장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비상임이사는 임추위와 이사회운영위원회, 보수위원회 등에 참여하며 농협금융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NH투자증권 사례처럼 금감원이 나선다면 강호동 회장이 농협금융에서만큼은 우군을 꾸리는 데 어려움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을 비롯해 이석용 NH농협은행장, 윤해진 NH농협생명 대표, 서옥원 NH농협캐피탈 대표(이상 2025년 1월 임기 만료)와 서국동 NH농협손해보험 대표(2025년 12월 임기 만료), 오세윤 NH저축은행 대표(2026년 1월 임기 만료) 등 농협금융 계열사 대표들이 모두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기도 한다.
강호동 회장이 금감원과 관련해 걸림돌이 있어 농협금융에 대해서는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강호동 회장은 2014년 8월 7일부터 2018년 12월 27일 사이 특정인에게 동일인 대출 한도를 최대 48억 1700만 원 초과해 부당대출을 실행한 사실이 적발돼 금감원으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 행정처분을 받았다. 강 회장은 금융당국의 처분이 과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서울행정법원(행정 제3재판부)은 지난해 11월 10일 이를 기각했다. 강 회장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향후 예상되는 조합장과 조합원 간 갈등을 차단하는 것도 강호동 회장의 과제다. 강 회장이 조합장으로 다섯 번의 임기를 보낸 율곡농협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실제로 율곡농협의 임직원 수는 지난해 기준 23명이었다. 강호동 회장과 중앙회장선거에서 경쟁했던 조덕현 후보가 조합장으로 있는 동천안농협의 임직원 수는 130명이었고, 송영조 조합장이 재직 중인 부산금정농협은 185명이다. 지난해 영업수익에서도 율곡농협은 약 261억 원, 동천안농협 약 842억 원, 부산금정농협 약 1453억 원으로 차이가 크다. 강호동 회장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이유다.
강호동 회장이 당선된 원동력은 직선제였다는 평가가 많다. 강호동 회장의 파격적인 공약이 직선제에서 먹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의원(292명) 간선제 방식으로 중앙회장을 선출했던 농협중앙회는 지난 선거부터 1111명 전체 조합장이 투표에 참여하는 직선제로 17년 만에 중앙회장 선출 방법을 바꿨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파격적이라고 평가받은 강호동 회장의 공약은 사실상 조합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합장들을 위한 것”이라며 “공약을 이행하는 데 표면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이지만 조합원의 반대가 거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공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조합장들의 마음이 떠날 것이기에 강호동 회장의 고심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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