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원군서 걸림돌로… 당 안팎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모태인 이해찬 대표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대선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 DB |
최근 문재인 캠프에서는 이런 침체 분위기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특단의 대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 대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해찬-박지원 정리’ 문제다. 최근 캠프 내부에서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카드로 ‘이-박 쳐내기’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의 문 후보를 만든 ‘이-박 라인’이긴 하지만 상황이 그들에 대한 보은 차원에 머무를 수 없을 만큼 급박하다는 얘기다. 여전히 문재인 후보는 수구이미지 박근혜, 불안정한 안철수에 비해 개혁적이고 안정적인 카드다. 하지만 앞으로 문 후보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보여주는 데 실패할 경우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있다. 문 캠프가 후보단일화 협상카드의 하나로 논의 중인 ‘이해찬 쳐내기’ 전략을 집중 조명해봤다.문재인 후보 진영의 위기감이 깊어지고 있다. 당의 모래알 같은 조직력, 캠프총괄 컨트롤타워의 부재, 이해찬-박지원의 족쇄 등으로 좀처럼 정통야당 대선후보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거환경을 바꿔볼 수는 있겠지만 후보의 개혁 의지와 역량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며 문 후보 개인의 ‘대오각성’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4면 기사 참조).
최근 당 안팎에서는 “문 후보가 이해찬을 넘지 않고서는 대선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후보 위기론의 근원도 바로 ‘이해찬-박지원 담합’이라는 잘못된 한 수에서 잉태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상황이 이렇게 꼬여가면서 서서히 야권주자의 힘의 균형이 문재인에서 안철수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위기감은 문재인 캠프 측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최경환 의원을 비롯해 박근혜 후보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총 사퇴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지난 10월 5일 저녁 여의도의 한 음식점으로 민주통합당 의원 두 명을 포함한 당직자들과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모였다. 단연 화제는 새누리당 사태였다. 대화를 나누던 중 자리에 참여했던 문재인 캠프의 한 실무자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것이다. 현 체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조만간 인적 쇄신 요구가 거세게 불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민주통합당 의원 역시 작심한 듯 “문재인 후보가 용광로 선거 캠프를 꾸리긴 했지만 소외된 의원들이 제법 있다. 결국 친노 인사들 위주 아니냐”면서 “친노를 이끌며 대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해찬 대표의 2선 후퇴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세했다.
지난 10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 토론회 때 벌어진 안철수 후보의 ‘이해찬 디스’(disrespect:무례·결례의 줄임말로, 주로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행동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 사건도 이해찬 대표의 거취에 쏟아지고 있는 민심의 따가운 눈총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문재인 캠프도 특단의 대책을 강구 중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그 중심에는 ‘뒷방 늙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이해찬 대표에 대한 처리 여부가 자리 잡고 있다. 문 후보 측은 내부 전열을 재정비하고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진 상태라고 한다. 특히 최근 민주통합당 몇몇 의원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는 ‘이해찬 2선후퇴론’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란 전언이다.
문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우원식 의원이 10월 12일 “이해찬 대표가 백의종군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친노가 다 해먹고 있다’는 말들이 많은데 그 중심에 이해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 대표이기도 하지만 친노의 상징적인 분 아니냐”면서 “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방안이 최선인지 (이 대표 사퇴 요구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안 후보도 ‘이해찬 체제 정리’가 정치개혁의 상징성이 있는 만큼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안 후보의 ‘이해찬 디스 사건’은 안 캠프 내부의 ‘안티 이해찬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일화 채비에 한창인 문재인 후보에게 ‘이해찬 대표의 거취’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 대표가 ‘안철수-문재인’ 간 단일화 논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안철수 캠프 일부 관계자들은 “안 후보가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민주통합당 정치쇄신의 핵심은 이 대표의 사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이 대표가 안 후보를 겨냥해 여러 차례 도발한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얼마 전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불가능하다”는 이 대표 발언은 안 후보 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안 후보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나를 불쏘시개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강경한 표현을 써가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안 후보 측이 특정인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면 우리로서도 흘려들을 순 없는 상황”이라면서 “단일화라는 대명제를 성사시킬 수 있다면 이 대표뿐 아니라 그 누구도 용퇴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해찬 정리’ 문제는 문재인-안철수 진영 간에 구체제 청산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혁신과 통합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문 후보측이 이미 구체제와의 단절 결심을 굳히고 단일화 협상 전에 ‘이해찬 쳐내기’를 단행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그렇게 해야 안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서 정치개혁 명분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이해찬 쳐내기는 최소한의 카드다. 이해찬 체제는 단일화 승리를 위해 이미 오래전에 정리됐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시기가 많이 늦었기 때문에 이 대표를 쳐낸다 해도 단일화 협상에서의 효과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직접 자신의 정치적 모태인 이해찬 대표를 쳐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 후보가 시민캠프의 힘을 동원, ‘차도지계’(남의 칼을 빌려 자신의 적을 친다)로 이해찬 쳐내기에 나설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앞서의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현재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내 인적쇄신을 포함한 정치쇄신안을 준비 중이다. 그 핵심은 이해찬-박지원 체제의 전면 개편이 될 것이다. 이 대표가 문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민들이 만족하는 수준의 정치쇄신안 수립의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시민캠프 차원에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출입하는 한 기자도 이에 대해 “문 후보 성향상 직접 이해찬 대표를 쳐내기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해야 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민캠프에서 쇄신안을 만들어 움직인다면 문 후보가 외곽에서부터 정치쇄신의 동력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가 이해찬 대표를 쳐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 대표가 캠프와 조율되지 않은 발언과 역할을 자처할 경우 문 후보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문 후보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으로 영입할 때 이 대표와 ‘엇박자’를 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대표는 “윤 전 장관은 우리가 영입한 게 아니고 스스로 온 것”이라고 했지만 문 후보 측은 “먼저 윤 전 장관에게 요청했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를 놓고 문재인 캠프 관계자들은 겉으로는 표현을 못했지만 상당히 속을 끓였다는 후문이다. 당시 캠프 내부에서는 “이 대표가 문 후보를 우습게 본다” “문 후보를 통해 섭정을 하려 한다” 등과 같은 다소 ‘과격한’ 얘기가 돌기도 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 대표가 보기에 문 후보는 정치 초년병일수도 있지만 엄연히 대권주자다.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경우 문재인 캠프는 이 대표를 내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주변에서는 “(이 대표가) 문 후보를 국회의원 만들어주고, 제1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올려놨는데 이제 와서 2선 후퇴를 꺼내는 것은 ‘토사구팽’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표 측의 한 관계자가 사석에서 문 후보를 돕고 있는 정치권 인사에게 “이 대표는 민주통합당의 수장이다. 당 대표로서의 역할도 있는 것 아니냐. 이를 두고 문재인 캠프가 ‘월권’ 운운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강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 전해지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뒷배인 이해찬 대표를 하루 빨리 떨쳐내지 못하면 단일화 전쟁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패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이해찬은 내 은인인데…’
문 후보 측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중견 언론인은 이에 대해 “문 후보가 과감하게 인적 쇄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낯가림이 심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문 후보의 온정적인 캐릭터와 함께 (인적쇄신에 대한) 문제의식 부족 때문 아닌가 싶다. 새로운 사람을 쉽게 사귀는 스타일이 아닌 문 후보의 특성 때문에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은 편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또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했으면 됐지 뭘 더 해야 하느냐는 식의 생각도 작용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문 후보가 대선을 자신의 지역구 선거운동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선후보가 개인의 호불호로 행동해서 되겠는가. 지금 민주당 발등에 떨어진 가장 급한 불은 안철수 후보가 던진 정치개혁 화두에(일각에서는 애매모호한 요구라고 주장하지만) 국민의 눈높이 수준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 후보가 민심의 인적쇄신 열망을 모르는지, 무시하는지 전혀 대응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문제 해결 없이 대권은 절대 없다”라고 말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