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끼야 어디 가니? 지난 13일 과학기술나눔마라톤축제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정치권에선 박 후보의 오락가락 표심공략 행보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2007년 17대 대선 이후 공을 인정받아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공식적인 직함 없이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을 돕고 있는데 도대체 산토끼 잡자 해놓고 아무런 전략도 시나리오도 없다”고 말했다. 대 수도권 전략의 부재를 꼬집은 것이다.
“솔직히 박 후보의 대권 행보가 늦은 감이 있다. 지난 대선 때에는 2007년 2월에 이미 이명박 캠프가 ‘완성’된 상태였다. 전국적 피라미드(‘조직’을 의미)가 있고 점조직까지 해서 그때부터 ‘크게’ 움직였다. 지금보다 5~6개월 빨랐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캠프는 모두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장 노릇이나 하고 있고 조직력도 없고, 있다 해도 별로 힘도 못 쓰는 것 같더라. 5년이나 준비했는데 해놓은 게 없다. 지금 문제는 서울하고 수도권 아니냐. TK 출신이거나 나이 들어 힘이 달려 보이는 인사들을 모조리 갈아치우지 않는 한, 그리고 그때 MB를 도왔던 인사들이나, 친박계가 아닌 인사들을 전면 배치하지 않는 한 수도권 표는 없다.”
새누리당 선대위는 애초 원희룡 전 의원에게 서울시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가 정중히 거절당했다고 한다. 당 안팎에서 남경필 당 대표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박 후보는 거들떠도 안 본다고 한다.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아무리 표가 되는 인물이라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중용된 김무성도 원래는 ‘남이 아닌’ 친박이었다. 김무성 효과가 잠시 일다 주춤하는 이유다.
2007년 경선 당시 MB는 “언론이 곧 여론 아니냐”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현장도 좋지만 실상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얻는 표가 훨씬 많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MB는 이틀에 한 번꼴로 조계사 인근의 한정식 ‘유정’에서 언론인들과 만찬을 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과 방송을 합해 20여 개 언론사를 상대로 국장단, 부장단, 일반 평기자끼리 따로따로 볼 때도 있고, 1개사에서 데스크와 취재기자를 ‘한 세트’로 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약 3주 정도, 그것도 아주 ‘띄엄띄엄’ 언론인들과 ‘오찬’을 했다. 박 후보가 초청하지 않은 언론사도 많다. 당시 박 후보 경선 캠프에서는 “MB는 힘 있는 남자 기자들이 마크하고 있어 기사도 크고 잘 나오는데, 박 후보한테는 여자 기자들만 모여 힘도 없고 기사도 눌린다”는 말이 나왔다. 대 언론 스킨십에서 MB가 큰 점수를 땄다는 것이다.
▲ 지난 17일 역사정의실천연대가 박 후보에게 정수장학회 환원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전영기 기자 |
“MB는 현장 방문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휴대전화 통화를 했다. ‘원 퍼슨 원 미닛(one person one minute:1인 1분 직접통화)전략’ 이었는데 그게 굉장히 잘 먹혔다고 본다. 특히 아침에 본 자기 식구(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에게도 ‘아침에 사람이 많아 말 못했는데 열심히 해주고 있다는 소릴 들었다. 고맙다’는 취지로 전화를 해대니 도와주는 우리가 신명이 나서 더 열심히 했다. 그게 하루 100명이 아니라 1000명이다.”
MB의 ‘집토끼’ 관리는 보통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확고한 지지층은 더 면밀하게 챙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저녁 먹을 시간에 MB는 미리 식사를 하거나 미루고 나서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저녁 시간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커 전화 한 통으로 몇 명, 몇 십 명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 10월 18일 대구에서 온 한 정치권 인사는 “도대체 선거 분위기가 없다. 박 후보는 털끝도 안 보이고 애들은 다 안철수 이야기를 한다. 지역 신문에 안철수 지지도가 30% 이상이라고 하는 보도가 있었는데 2030세대가 결집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는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박 후보가 토끼(유권자)를 놓치는 큰 이유는 ‘가족력’에도 있다. 당시 MB는 김윤옥 여사와 이상득 의원, 이재오 의원 등으로부터 ‘분신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한다. 가족이거나 가족과 같은 사람이 동서남북을 누볐으니 이는 MB의 ‘준 방문’과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동생 지만 씨, 근령 씨의 지원이 전혀 없다. 오히려 적 같다는 느낌도 있다.
사실 영남권은 박 후보에게는 잡아놓은 집토끼로 인식됐다. 부산과 대구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건립 뒤 ‘40분 왕래’가 가능해진 이웃사촌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부산 민심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다. 문재인 안철수가 부산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남권은 원래 한 몸, 한 식구였는데 동남권 신공항 이야기가 나오면서 완전히 쪼개졌다. 부산 출신 문재인, 안철수는 ‘가덕도 신공항’에 무게를 두고 있고, 박근혜는 신공항은 필요하다는 얘기만 하지 다른 말이 없다. 그런데 만약 지금이 MB 캠프라면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도를 가야 합니다’. 문-안 후보의 가덕도 신공항은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이냐. 그야말로 부산 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인데 그렇다면 싸잡아 비판하면 될 일이다. 초대형 프로젝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주장하면 된다. 박근혜는 신공항 입지에 대한 조건이나 방법을 이야기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전략도 없으니 집토끼 다 떠나가는 것 아니냐.”
정세판단에 능한 한 친이계 인사의 말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인 달성군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도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달성군수 자리에 올려놓지 못했다. 그때 달성군에서는 처음으로 박근혜가 탄 유세차량을 향해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군수감을 후보로 내세우지 않은 데 대해 군민들이 박근혜라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안방에서도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
▲ 18일 전국언론노조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김재철 MBC 사장, 이진숙 MBC 기획홍보부장을 공직선거법과 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기 전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①오리발 전략 ②최필립 사퇴 ③사회에 환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난 21일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박 후보가 진일보한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 향후 상당한 논란이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공세라고 규정하고 정면대결 전략을 선택함에 따라 이 논란은 대선의 최대 이슈의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다. 박 후보측은 정수장학회 문제를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자신들의 정체성 문제로 간주하고 몇 가지 대응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누리당은 정수장학회 대응전략을 크게 3가지로 요약했다고 한다. 하나는 박 후보와 ‘연관 없음’을 끝까지 주장한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그동안 “노무현 정부에서 그렇게 많이 조사를 했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만약 또 그 입장을 번복하면 위기감에서 내놓은 극약처방일 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다시 불러온다는 논리를 일부에서 펴고 있다. 인혁당 사과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하락세가 반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학습효과’다.
다른 하나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사퇴를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새누리당에서는 밑밥을 던진 상태인데, 그 일례로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 “최 이사장 등 이사진이 오해를 불식시키려면 그만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특위 위원들의 기대”라고 말한 것이나,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여야가 공감할 수 있는 인사로 이사진을 세우는 게 답이며, 부일장학회를 세운 김지태 회장의 후손 한 두 명 정도는 이사로 참여해야 한다” “정수장학회 최 이사장과 MBC 김재철 사장이 마치 자신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데 두 사람은 박 후보의 대선 행보에 일종의 장애물”이라고 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수장학회만큼은 박 후보가 주변 인물들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오는’ 자세를 취하면서 “상황이 이러저러하니 최 이사장의 사퇴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야권이 정수장학회를 ‘장물’로 프레임해 공격하는 것에 대한 대응인데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다수가 원한다면 사회에 환원하든지 유족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다만 MBC 측이 최 이사장과 만나 지분을 판다는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해서는 전국 대학생의 반값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며 잘 ‘포장’해 퇴로를 연다는 복안도 있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해 정면대결을 선택한 것은 야당의 공세에 더 밀릴 경우 향후 대선 정국에서도 계속 수세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수장학회 문제만큼은 박 후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정치적 정체성과도 맞물려 있다. 정수장학회라는 둑이 터질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 수호 가치도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정수장학회를 정리하게 되면 학교법인 영남학원, 육영재단, 한국문화재단으로까지 불씨가 번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민심을 명백히 거스르는 이번 기자회견으로 박 후보는 ‘아버지’를 건 대도박에 나선 셈이 됐다. 자칫 정수장학회의 강공책 하나로 대선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수장학회가 박 후보와 직접 관련이 돼 있다는 의혹들도 여전히 그를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1998년부터 2005년 2월까지 연간 1억 원에서 2억 3000여만 원씩, 모두 모아 약 11억여 원을 보수로 지급받았다. 2005년 서울시교육청의 ‘공익법인 감사결과 처분서’에 나온 내용이다. 박 후보는 IMF 외환위기 이후 재단 사정이 열악해지자 2000년 장학생 선발을 담당한 장학국을 폐지한다. 1100%던 직원 상여금을 절반 수준으로 깎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비상근직이던 이사장 신분을 상근직으로 바꿔 1억 3500만 원의 연봉을 2억 5350만 원으로 늘렸다. 박 후보 측은 2007년 경선 당시 한나라당 검증위에 제출한 소명자료를 통해 “이사장 급여가 인상된 사실이 있습니다. 다만, 이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사항이며, 타 재단법인 이사의 임금 범주 내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직원의 월급은 깎고, 본인의 연봉을 올리면서도 ‘합법적 인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를 두고 박 후보가 ‘재벌 다스리기’에 나설 수 있냐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는 야권이 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수장학회는 불법 기부행위 논란에도 빠져 있다. 정수장학회는 2000년 2월 28일, 2004년 2월 26일 ‘정수장학회 이사장 박근혜’ 명의로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같은 해 4월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었다. 공익법인이 선거일 전 120일간 후보자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금품을 주면 안 된다는 선거법에 위반되는 상황이다. 민주통합당 김경협 의원은 지난 9월 국회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올해 8월 27일에도 정수장학회가 장학금 및 장학증서를 지급한 바 있다. 안철수재단에 대한 선관위 해석을 준용하면 이 역시 선거법 제114조 및 115조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선관위가 안철수 재단에 대해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안 원장의 이름을 딴 재단의 활동은 공직선거법의 기부행위에 해당한다. 정수장학회는 박 후보 부모 명의의 장학재단으로 정수장학회 장학금은 박 후보가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