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우선 탐색전이다. 대선 후보 3인의 화법 타입에 대해 살펴보자. 대선 후보 3인 모두 말이 적고 달변과는 거리가 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화법 성향은 제각각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세 후보 중 가장 많은 경험이 있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대원이엔씨 대표는 “박 후보는 세 후보 중 기성 정치인과 가장 가까운 화법을 구사한다. 허투루 말을 하기보다는 준비된 원칙을 토대로 할 말만 하는 타입이다”고 설명했다.
정치컨설턴트 이재관 마레컴 대표는 “박 후보는 예전부터 논리력과 지식부족으로 설전에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완전히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 후보 중 박 후보가 카리스마로 따지면 최고다. 설전에서는 보이는 이미지도 중요하다. 상대 후보들 역시 박 후보와 토론장에서 마주하면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평했다.
박 후보는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토론에서 상대인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혼쭐이 난 적 있다. 이 후보의 기후문제 해결방안과 관련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허둥지둥 대다 엉뚱한 답변만 남발했던 것. 당시 박 후보는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 대책을 묻는 이명박 후보의 질문에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라는 엉뚱한 용어를 사용하고, 구체적 대책도 ‘정부나 기업이 잘해서’ 정도의 발언으로 일관해 정책공부가 너무 안 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박 후보의 발언이 담긴 동영상이 ‘돌박영상’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포되면서 ‘돌박(石朴) 사건’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물론 현재도 약점은 남아 있지만, 과거보다 상당히 성장했다는 평이다. 올해 있었던 당내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서 박 후보는 김문수 후보에게 올케 서향희 변호사의 특혜 논란과 관련한 기습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당황하지 않고 원칙적이지만 정돈된 답변을 내놔 “예전보다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직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경험이 경험인지라 이제 박 후보의 화법 속에서 서서히 여유가 묻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변호사다운 논리적 화법을 구사한다. 지난 4·11 총선 때 그는 지역구 총선후보 토론회에서 ‘공정선거법’ 조항을 토대로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의 ‘3000만 원 선거 뽀개기 논란’에 대해 집요하게 공격했다. 반대로 손 후보가 문 후보 자신의 ‘한-미 FTA 말 바꾸기 논란’에 대해 공격할 때는 독소조항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차분하게 반박해나갔다. 달변은 아니지만, 자신의 법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앞서의 김대진 대표는 “문 후보는 변호사다. 분명 달변은 아니지만, 자신의 법적 지식을 잘 활용할 줄 안다. 물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지만, 어려운 법 조항만 지나치게 들이댄다면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공감을 못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정치경험이 전혀 없다. 당연히 공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바 없다. 다만 평소 화법은 자신의 직업인 교수의 강습 화법과 유사하다. 마치 교수가 학생에게 차분하게 설명하듯, 부드러운 구어체 표현을 즐겨 쓴다. 예를 들면 “~했습니까?”보다는 “~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김 대표는 “사실 이러한 구어체 화법을 공식 자리에서 즐겨 사용한 이는 안 후보가 거의 처음이다. 서로 물고 뜯는 대선 후보 토론에서도 자신만의 기존 화법을 사용할지, 나도 궁금하다. 만약 이러한 부드러운 구어체 화법을 토론장에서 사용한다면 대중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몰라도 상대 후보에게 얕보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라운드에서는 대선 후보 3인의 조합에서 나올 수 있는 토론 전개 양상을 가늠해 보자. 과연 이 조합이라면 어떤 화학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역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장 기대되는 화학반응은 사냥개처럼 서로 물고 뜯는 난타전 양상일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세 후보의 조합이라면 화끈한 난타전 양상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비를 걸고 분위기를 띄울 사냥개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관 대표는 “세 후보 중 새누리당 홍준표 전 의원처럼 상대를 물고 뜯으며 분위기를 띄울 사냥개 타입의 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서로에 대한 공격은 어느 정도 있겠지만, 이 조용한 세 후보의 조합이라면 뜨거운 화학반응은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 대표는 “후보들 조합 상, 미지근하고 재미없는 분위기의 토론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의외성이라는 게 있다. 더군다나 후보 모두 자존심이 강한 스타일이다. 특히 안 후보는 자신을 향한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불현듯 반응할 수 있다. 최근 민주통합당 이해찬 당 대표가 ‘무소속 대통령 후보 불가론’을 들고 나오자 공식석상에서 이 대표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있지 않았나. 무척 자존심 강한 사람이다. 그의 반응에 따라 의외의 화학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평온하고 차분한 토론이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그래도 각 후보 간 충돌할 수 있는 논란거리는 충분하다.
역시 토론의 논란거리는 각 후보의 아킬레스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 후보는 ‘과거사’, 문 후보는 ‘친노 정권의 과오’, 안 후보는 ‘무소속 후보로서의 검증’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현재도 각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토대로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문제’, 문 후보의 ‘NLL 대화록 의혹’, 안 후보의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 등 서로를 향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 후보나 문 후보보다는 안 후보에 더 주목했다. 김 대표는 “박 후보는 기본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한 상황이다. 문 후보 역시 광주 방문 당시 민주당 분당사태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인정했다. 문제는 안 후보다. 안 후보의 검증 문제는 어떻게 사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 후보는 무소속 후보다. 상대편인 박 후보와 문 후보는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정당이 받쳐주고 있다. 그가 현재까지 내건 공약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수준이다. 토론에 앞서 ‘생각의 정리’, ‘정책의 정리’, ‘2013년 집권 후 명확한 비전’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토론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도 이번 대선 후보 토론에서는 대권을 앞두고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경제 민주화’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이 있을 수 있다. 세 후보 모두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에 대해 목적론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지만, 방법론에는 입장을 달리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이 3자구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어 토론회도 3자간 대결로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가능성이 높은 경우의 수는 1인에 대한 나머지 2인의 협공 포메이션이다. 역시 가장 먼저 그릴 수 있는 그림은 박 후보에 대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협공 포메이션이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야권후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문 후보와 안 후보는 현 정권의 평가와 심판의 짐을 짊어진 박 후보를 상대로 당연히 협공을 벌일 것이다. 박 후보로서는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여권 후보로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은 정당 후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박 후보와 문 후보가 무소속 안 후보를 공격하는 협공 포메이션이다. 역시 주요 공격 논점은 ‘검증’이 될 것이다. 이 대표는 “안 후보는 상대 후보의 협공에 대해 분명히 반박할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기존 정당정치 불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자신이 그것을 넘어 정치혁신을 이룩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잘 준비해 간다면 오히려 역공에 나설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
박 냉철한 CEO, 문 순박한 아버지, 안 인자한 어머니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정치가의 덕목 중 하나는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연설 실력이다. 스피치 전문가 이성호 수스피치리더십센터 대표는 “대선 후보의 연설은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하다. 정확한 목적의식을 담은 ‘방향성’, 정치·사회·경제 현황에 관한 ‘전문성’, 청중을 믿게 하는 ‘신뢰성’을 갖춰야 한다. 물론 시선, 표정, 목소리 등 기술적 부분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앞서의 이 대표가 각 후보의 대선 출마선언 연설 영상을 토대로 분석한 대선 후보 3인의 연설 유형과 장단점이다.
# 박근혜 후보
카리스마가 있지만 대체로 딱딱하고 어둡고 차가운 어조다. 유형으로 따지면 냉철한 CEO형에 가깝다. 사용하는 문장도 대체로 간결하다. 짧은 연설에 적합한 유형이다. 기술적 부분을 살펴보자면 전체적으로 표정과 시선이 무척 불안하다. 연설 시작부터 시종일관 긴장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는 청중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박근헤 후보의 냉철하고 강한 어조는 여성 후보로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장기 불황 때 이러한 어조를 고집하면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지금보다 따뜻한 공감적 표현을 늘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어조를 개발해야 한다. 말을 끝낼 때, 양 어금니를 살짝 물어 옅은 미소를 띠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 문재인 후보
하지만 중후한 어조에도 소리가 뻗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다. 치아 시술의 영향일지 모르나 부정확한 발음과 더불어 소리의 막힘이 심하다. 호흡법을 통해 뱃심을 사용할 줄 알았던 명연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은 크게 쭉 뻗어 나가는 매력이 있었다. 이를 잘 참고해야 한다.
# 안철수 후보
문 후보가 아버지형 연설이라면 안철수 후보는 인자한 어머니형과 가깝다. 겸손하면서도 편안한 구어체를 사용한다. 기존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분명 정통적 연설법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의 연설은 최악이다. 하지만 연설에도 트렌드가 있다. 지난 격동기에는 공격적이고 강한 연설이 주목 받았다면, 지금은 감성적 연설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의 연설은 전형적인 감성 스피치다. 최근 트렌드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 타고났고 세 후보 중 가장 영리한 스피치를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말 처음과 끝이 다소 흐릿하다. 청중들에게 다소 지루함을 줄 수 있다. 이 점은 유의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 [한]
전문가가 꼽은 최고 달변가는?
DJ 논리로 공격 재치로 방어
완벽한 국어 어법을 사용할 줄 아는 기본적 능력과 다독으로 다져진 그의 논리력 및 지식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여기에 재치 있게 위기를 넘기는 능력도 있었다. 김대진 대표는 “1997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이회창 당시 후보가 그에게 ‘빨갱이 시비’를 붙이며 강도 높은 색깔론 공격을 편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여기에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내 얼굴이 어디 봐서 빨개요. 저도 다른 사람과 똑같아요’라고 맞받아쳤다.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여의도를 청중들로 가득 채웠다는 그의 대중 연설능력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성호 대표는 “분명 김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일반인과 다르다. 쇳소리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독특한 톤을 개성 있게 사용할 줄 알았고 청중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다”라고 평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