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성 교수가 주도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 일명 장하성 펀드의 영향으로 주가가 들썩이고 있다. | ||
증시에선 이미 벽산건설에 한 차례 풍랑이 지나갔고 최근에는 대한제강에 바람이 불었다. 지난 여름 장하성펀드 측이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것이 소문의 단서였다. 지난 11월 1일에는 장하성펀드가 투자기업을 공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등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장하성펀드’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까. 지금까지 증권가에서 거론된 예상 기업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공통적인 특성이 있지는 않을까.
장하성펀드는 이미 밝힌 대한화섬과 태광산업 외에도 10개 기업의 지분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0월 27일에는 장하성 교수가 한국상장사협의회 조찬강연회에서 향후 투자 규모를 더 늘리고 일반인 투자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대상 기업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가는 상황.
대한화섬과 태광산업에 투자한 금액은 48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장하성 펀드의 규모 1200억 원.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27일 강연회에서 장 교수는 앞으로 펀드 규모를 3000억~5000억 원까지 늘릴 수 있다고 얘기했다.
증권가에서는 장하성펀드가 이미 10개 기업의 지분을 매입해 놓았고, 지분율은 5%에 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돌고 있다. 금감원이 이미 거래소에서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외부인이 알 수는 없는 상황이다.
피투자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5% 미만인 이유는 5%가 넘을 경우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장하성펀드 입장에서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에 알려질 경우 주가급등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부담감 때문에 아직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각 기업들의 지분을 4.99%까지 사놓았다’는 설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몇몇 기업에 대해서는 이미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진행중이다”라고 밝히고 있어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대한화섬의 경우를 볼 때, 5%를 넘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재고를 요구하는 ‘레터’를 소액주주의 자격으로 계속 보내며 해당 회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했었다. 장하성 교수도 10월 27일 강연회에서 “몇 개 기업에 투자해 경영진, 대주주와 접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징후를 통해 장하성펀드의 움직임이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다만 해당 기업이 주가의 급변동을 막고 지분을 늘리는 등의 방어자세를 취할 때까지는 보안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소문과 더불어 몇몇 종목은 벌써부터 장하성펀드의 수혜주로 점찍혀 주가가 들썩이기도 했다. 벽산건설 주식은 10월 18일 오후부터 장하성펀드 매입설이 돌면서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벽산건설은 주가급등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한제강도 10월 30일 오후부터 상승해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단 하루 만에 하락세를 탔다.
장하성펀드 운용책임자인 존 리(한국명 이정복)는 이에 대해 ‘투자를 했는지 안 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런 루머 때문에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은 잘못된 것으로 중요한 것은 기업의 펀더멘탈’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힐 뿐이었다.
벽산건설에 대한 소문의 근거가 장하성펀드의 움직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올 4월부터 외국인 지분율이 꾸준히 증가한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장하성 펀드는 라자드에셋이 맡고 있기 때문에 매수시 외국계 자본으로 분류된다.
중견그룹들 가운데 배당에 소극적이고, 자금력이 있고, 보유자산 대비 시가총액이 작아 지분매입이 용이한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벽산건설과 함께 한진해운, 한신공영, 한진, 조선내화, 동화약품 등이다. 이들은 주당순자산비율(PBR)이 1이 되지 않아 전체 자산가치보다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이다.
한진해운은 감소세이던 외국인 지분이 4월 이후 증가세로 돌아섰고, 한신공영도 6개월간 잠잠하던 외국인 지분이 4월 이후 증가했는데 외국인들이 지분신고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이 증권가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장하성펀드 투자가 알려지기 전 대한화섬의 시가총액이 929억 원(6월 기준)으로 그 규모가 작아서 소액으로도 투자가 용이했던 것을 보면, 벽산건설 시가총액 5288억 원(6월 기준)이나 한진해운 1조 6243억 원(6월 기준)은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6월 기준 시가총액으로 보면 한진이 3177억 원, 한신공영이 1805억 원, 조선내화가 1868억 원, 동화약품이 1418억 원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장하성펀드가 굳이 투자한 회사를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면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 적당하다. 지금까지 장하성펀드의 타깃으로 거론된 기업들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로 금호산업, 한화석화, 대한전선, 현대상선, 삼양사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가총액이 4000억 원을 넘는다.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 중 인지도가 있으면서 자산가치가 높은 회사를 보면 한국공항, 대상홀딩스, 풀무원이 있다. 한국공항은 전국 공항마다 토지 및 공장을 보유해 부동산이 204억 원, 당좌자산이 1119억 원으로 PBR이 0.5에도 못 미친다. 대주주 지분율은 58.9%로, 한국공항은 대한항공 지배구조의 핵심고리 역할을 하는 회사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시가총액이 734억 원(6월 기준)으로 적은 금액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대상홀딩스는 지주회사로 부동산은 없지만 계열사 지분이 있다. 시가총액 1771억 원(6월 기준)으로 PBR은 0.5∼0.7이다.
풀무원은 시가총액 1553억 원, PBR이 1.4로 자산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편이다.
한편 장하성 교수는 지난 27일 강연회에서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의 투자 사례를 통해 자산주가 부각되고 있지만 반드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되며 중기업들 중에서 현금흐름이 우수한 기업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투자 기업의 중요 판단 근거로 굳이 자산가치를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오히려 향후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기업인 ‘성장주’에 중요성을 둔다는 것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펀드로서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제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장하성 교수는 연내 투자기업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장하성펀드로 또다시 증시가 들썩이면서 연말 상승랠리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업계의 관심이 장하성펀드에 모아지는 또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장하성펀드 테마로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에는 우려의 시선도 교차하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