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첼라’에서 음이탈 이어 AR 도마 위…‘음악’ 자체에 초점 맞추는 그래미어워즈 K팝 외면
4월 22일 방송된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 옥주현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걸그룹 핑클의 메인보컬 출신으로 현재는 뮤지컬 시장의 ‘큰손’이다. 최근에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이끌고 있다.
가수(歌手)는 표현 그대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이를 업(業)으로 먹고 산다면 응당 잘 불러야 한다. 역대 ‘아이돌 보컬 원톱’으로 꼽히는 옥주현의 이야기라 더 설득력 있다. 그의 당연한 듯한 이야기가 더 주목받는 건 최근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이 해외 대형 무대에서 부족한 라이브 실력으로 가창력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퍼포먼스를 앞세우는 K팝 그룹은 가수로 봐야 할까. 퍼포머로 봐야 할까.
#싱어와 퍼포머 사이
르세라핌은 4월 1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코첼라 밸리에서 열린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코첼라)의 사하라 스테이지에 올랐다. 그들은 약 40분간 히트곡 10곡을 불렀다. 글로벌 팬들은 열광했다. 내로라하는 K팝 그룹의 등장만으로도 환호했고, 한글 가사까지 따라 불렀다.
하지만 멤버들의 라이브 실력은 그리 흡족하지 못했다. 음이탈 하는 장면이 포착됐고, ‘스마트’를 부를 때는 정확한 음정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대 직후 국내·외 네티즌은 유튜브 채널 등에서 이 영상을 돌려보며 혹평을 쏟아냈다.
멤버 사쿠라의 반응은 성난 대중의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무대에 선다는 게 어떤 건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관객을 즐겁게 하는 거야? 아니면 하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고 무대를 소화하는 것인가? 사람마다 기준은 다를 것”이라면서 “데뷔한 지 채 2년도 안 된, 투어도 한 번밖에 안 해본 저희가 코첼라라는 무대에서 가슴을 펴고 즐기고, 진심으로 이 무대에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인이라고 무대 위 허점이 용납될 순 없다. 일단 공식 데뷔 후부터 그들은 ‘프로’이기 때문이다. ‘신인답지 않은 가창력’으로 칭찬받을 수는 있어도, 모자란 실력이 ‘신인다운 가창력’으로 포장될 순 없다.
르세라핌은 20일에 다시 코첼라 무대에 섰다. 설욕전을 펼칠 기회였다. 분명 앞선 공연보다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이 공연 직후 “라이브 AR 사용이 잦다”는 반응이 나왔다. ‘라이브 AR’은 무대에 서는 가수가 미리 라이브로 부른 녹음 파일을 트는 행위다. 실제로 어느 정도 라이브 AR이 쓰였는지 구분하긴 어렵다. 하지만 가창력 논란 직후 라이브 AR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항간에는 “K팝 그룹 수준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라이브를 완전히 소화하긴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르세라핌 이전에도 여러 K팝 그룹의 라이브 무대에서 배경 음악을 삭제한 ‘MR 제거 영상’이 공개된 후 부족한 가창력 때문에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보는 음악’으로서 K팝 그룹이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노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과연 싱어(Singer)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아무리 격한 안무를 소화하더라도 그들의 본질은 ‘가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룹의 특성상 멤버들이 파트를 나눠 부른다. 담당하는 부분이 한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자기 파트에서 제대로 된 음정을 낼 수 없다면 함량 미달로 봐야 한다.
#퍼포먼스만으로는 안 된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17년 미국 빌보드뮤직어워즈에 처음 등장한 이후 K팝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BTS가 이 시상식 외에도 아메리칸뮤직어워즈, MTV뮤직어워즈 등 미국 4대 대중음악시상식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아직 무주공산인 시상식이 있다. 바로 그래미어워즈다. 4대 시상식 중 ‘음악’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가장 권위 있는 무대로 손꼽힌다. BTS가 공식 초청을 받고 무대를 꾸민 적도 있지만 수상의 영광은 누리지 못했다.
그래미어워즈는 두 가지를 중시한다.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라이브 실력이다. 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이들은 대부분 직접 곡을 쓴다. 자신의 노래를 짓고 부르는 종합적인 뮤지션의 역량을 본다는 의미다. 또한 그래미어워즈 무대에 설 때는 반드시 라이브 무대를 꾸며야 한다. 웬만한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전 세계 음악팬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무대에 설 엄두도 내기 힘들다.
그렇다면 K팝 그룹 가운데 이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적잖은 이들이 유명 프로듀서의 힘에 기댄다. 물론 퍼포먼스 면에서 K팝 그룹들은 여타 뮤지션보다 훌륭하고 빼어나다. 하지만 적어도 그래미어워즈에서는 이 퍼포먼스 분야가 싱어송라이터나 라이브 실력에 대한 평가보다 앞서지는 않는다.
결국 르세라핌을 둘러싼 논란은 향후 K팝 그룹이 진화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외모와 퍼포먼스만으로는 안 된다. 현재는 K팝이 하나의 트렌드로서 유수의 페스티벌의 러브콜을 받지만, 트렌드가 바뀌고 다른 장르가 주목받을 때 K팝이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퍼포머’라는 수식어로는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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