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종교인 바둑축제’가 열리는 충남 서산의 서광사. 종교인들과 문화 예술인들이 바둑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축제의 아이디어를 낸 서광사 주지 도신 스님은 노래하는 스님으로도 유명하다. |
도신 스님의 노래 실력은 현역 직업가수 이상이다. 앨범도 여럿 냈고, 몇 년 전부터는 매년 서광사에서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다. 올 봄에는 무려 청중 8000명이 모였다.
‘종교인 바둑축제’는 앞에 ‘나눔과 소통을 위한’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소통’은 근래 사회 각 분야에서 화두가 되어 있는 단어인데, 이번 ‘종교인 바둑축제’는 종교 쪽에서도 서로 간의 벽을 넘어 소통해 보자는 것. 종교 간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은 오래된 얘기지만, 바둑을 매개로 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다재다능하고 재기 번뜩이는 도신 스님의 아이디어다.
▲ 도신 스님. |
“스님은 노래도 잘 부르시고, 바둑도 타이젬 8단이시면 무지 고수신데, 대중가요, 바둑 이런 것들은 절이나 교회나 성당에서는 권장하지 않는 것들 아닌가요?”
스님은 그냥 미소만 지었고, 옆의 다른 기자가 말을 받았다.
“예전에 노래하시고 바둑 두실 때 혹시 많이 맞으신 것 아닌가요? 하하하.”
사사롭고 화기애애한 자리였기는 하지만,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주지 스님을 상대로 조금 결례가 아닌가 싶어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은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기타리스트처럼 상반신을 앞뒤로 흔들면서 곡조와 박자를 붙여 ―
“아이구우~~ 아이구… 아이고~ 아이고오…오오오~”를 열창했다.
맞을 때마다, 비명 대신 이렇게 노래했다는 것이었다. 좌중은 뒤집어졌다.
전국 각지의 불교 기독교 천주교의 스님 목사님 신부님들, 그리고 문화-예술-학술계 인사, 네 그룹의 인사들이 모인다. 원래는 그런데 각 종단의 성직자 중에 바둑 두는 분들이 많지 않고, 일정 조정도 만만치 않아 참가 범위를 스님 목사님 신부님 말고도 처사 장로 신도들까지로 조금 넓혔다.
신부님 중에서는 이재열 신부님이 바둑 두는 신부님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참가했다. 바둑과 불교는 옛날부터 인연이 깊어 스님 중에는 바둑 고수가 즐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반면에 기독교 중에 바둑 고수가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 특히 이목을 끈 것은 기독교 쪽 대한성결교단에는 ‘바둑선교회’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둑선교회의 핵심인물 윤여탁 씨는 짱짱한 아마5단으로 지금은 칠순이 넘었는데, 예전에 직장-직능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경력이 있다. 이번 대회에 개인전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할 정도다…^^
첫 대회이니만큼 욕심을 내지 말자는 뜻으로 각 분야에서 10여 명씩을 초대했다. 문화예술학술 쪽에서는 서예가 김창동 씨가 대표로 추대되었다. 김창동 선생은 1970년대부터 바둑계 사람들과 친밀히 교류했던 인물. 프로기사를 상대로 서예를 지도했던 적도 있다. 바둑실력은 공인 아마5단.
네 단체가 단체별 대항전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한 팀은 네 명인데, 현장에서 추첨을 통해 불교 기독교 천주교 문화예술학술 인사 한 사람씩이 들어가 한 팀을 이룬 것. 끼리끼리 모인 팀으로 바둑을 둔다면, 아무리 나눔과 소통을 위한 바둑축제라고 해도 결국은 ‘승부’가 되기 십상이다. 섞여서 두어야 글자 그대로 친선교류전이 된다고 본 것.
19일 금요일은 자유시간. 서광사 주변을 산책하거나 서산 바닷가에 나가 보거나 일대를 관광하거나 바둑을 두거나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20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세 판을 두는 일정이다.
부춘산 자락의 서광사. 청랑한 하늘, 바람과 구름 속에 풍경과 목탁이 우는 법당 마루에서 가사장삼의 스님과 로만칼라의 신부님이, 성경을 든 손과 붓을 든 손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오로상쟁을 벌이며, 귤중지락을 만끽하며 수담을 나누는 모습은 소리 없는 대합주,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일 것이다. 우리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으나 지향하는 바, 도착하려는 곳은 같은 것이라는 정결한 믿음의 수담일 것이다. 하나님인지 부처인지 마리아인지 진리인지 아름다움인지, 지휘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다음에는 규모와 문호가 훨씬 더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거부하지 않는 한 원불교 천도교 유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슬람까지도 동참시킬 생각이다. 종교인 바둑축제가 뭔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바둑으로 ‘통’하는 일이어서” 우리는 더욱 반갑다. “바둑은 무효용의 효용”이라고 설파한, 작고한 선배도 계시지만, 이런 ‘통’함의 효용도 있으니 ‘무효용’은 ‘무한효용’과 통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화합과 축제의 마당이었으나 상금이 있다. 우승 1000만 원, 준우승 500만 원, 3등 300만 원, 4등 200만 원. 그러나 상금은 네 단체의 대표가 상의해 전액 사회봉사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대신 참가선수에게는 교통비와 숙식을 제공한다.
“멀리서들 와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비용까지 들이시게 하는 건 정말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작은 성의를 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서광사는 가족끼리 지인끼리 가볼 만한 곳이다. 서울 센트럴시티 터미널(호남선)에서 버스로 1시간 40분. 길 막히는 구간이 없어 거의 시간의 오차가 없다. 오가는 길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쏠쏠하다.
서광사에서는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최근 다시 개량한 숙박시설은 웬만한 고급 펜션 이상의 시설이다. 그리고 일세를 풍미했던 중광 걸레스님의 애제자 도신 스님을 만날 수 있다. 옷깃을 여미는 법문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 배를 잡고 뒹굴게도 된다. 게다가 재수가 좋으면 스님의 기막힌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까.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