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복귀 7경기 만에 2승 추가…만루포 노시환에 소고기 보답
2006년 한화에서 데뷔한 류현진은 2012년까지 98승(52패)을 거두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올해 한화로 돌아와 7경기 만에 2승째를 추가하면서 값진 이정표를 세웠다. 류현진의 통산 100승은 KBO리그 역대 33번째다. 한화 소속 투수로는 송진우(1997년) 정민철(1999년) 이상군·한용덕(이상 2000년)에 이어 역대 5번째다. 류현진은 또 통산 197경기 만에 100승을 거둬 김시진(186경기)과 선동열(192경기)에 이어 역대 최소 경기 100승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00승까지 7경기가 필요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지닌 투수다. 데뷔하자마자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KBO리그를 지배했고, 7년간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그런 그가 올해 친정팀 한화로 돌아오자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시즌 첫 6경기에서 1승만 추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3월 23일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잠실 개막전에서 3과 3분의 2이닝 5실점(2자책점)으로 부진했고, 홈 개막전인 3월 29일 KT 위즈전에선 6이닝 9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이어 세 번째 등판인 4월 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4와 3분의 1이닝 동안 안타 9개를 맞고 데뷔 후 한 경기 최다 실점(9점)으로 무너져 충격을 안겼다.
네 번째 경기인 4월 1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6이닝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으로 잘 던져 복귀 첫 승리이자 자신의 등 번호와 같은 통산 99승째를 신고했지만, 그다음에도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다섯 번째 등판인 4월 17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선 7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잡으며 호투하고도 김성욱에게 동점 3점 홈런 한 방을 맞고 3실점 해 다시 승리와 연을 맺지 못했다. 이어 4월 24일 수원 KT전에서는 5이닝 7피안타 7실점(5자책점)으로 흔들린 뒤 KBO리그가 올해 처음 도입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에 의구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류현진은 4월 마지막 날, 복귀 7번째 경기에서 통산 100승째를 채웠다. MLB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이던 2021년 8월 22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 이후 2년 8개월 만에 투구 수 100개를 넘기는 투지까지 보였다. 류현진은 "5회까지 투구 수가 88개라 당연히 6회에도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승민 투수코치님이 한 차례 의사를 물어보시기도 했지만, 선발 투수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이날 52개의 직구와 13개의 컷패스트볼(커터), 18개의 커브, 20개의 체인지업을 골고루 던졌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9㎞, 평균 구속은 시속 145㎞를 찍었다.
류현진은 0-0으로 맞선 2회 초 1사에서 수비 실책이 나오면서 흔들렸다. 박성한을 2루수 땅볼로 유도했는데 한화 2루수 이도윤이 포구 실책을 범해 1사 1루가 됐고, 류현진이 곧바로 후속 타자 고명준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이후 이지영을 3루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계속된 2사 2·3루에서 끝내 박지환에게 적시타를 허용했다. 박지환의 강습 땅볼이 류현진의 왼발을 맞고 굴절돼 내야 안타가 된, 불운한 타구였다.
그러나 한화의 후배들은 류현진의 통산 100번째 승리를 위해 금세 지원 사격에 나섰다. 3회 말 공격에서 이도윤, 이진영, 요나단 페라자가 SSG 선발 이기순에게 차례로 볼넷을 얻어 2사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지난해 홈런왕 노시환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결승 만루홈런을 터트려 4-1로 경기를 뒤집었다. 노시환의 시즌 7호포이자 개인 통산 2호 그랜드슬램이었다.
류현진은 4회 한 점을 다시 내줬다. 기예르모 에레디아에게 3루수 앞 번트 안타, 박성한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해 1사 1·3루에 몰린 뒤 이지영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실점을 했다. 4-2로 앞선 5회 다시 1사 1·2루 위기를 맞긴 했지만, 에레디아를 3루수 병살타로 막아내 2점 리드를 유지했다. 류현진은 6회를 삼자범퇴로 끝내면서 선발 투수로서 임무를 완수했고, 한화 타자들은 7회 4점을 더해 류현진에게 승리를 선물했다.
#안타 치고 2루까지 달린 추신수
류현진은 1회부터 흥미로운 승부를 했다. 1사 후 SSG 2번 지명타자로 나온 베테랑 추신수와 맞닥뜨렸다. MLB에서 정상급 투수와 타자로 활약하던 둘은 2013년 7월 28일 이후 3929일 만에 한국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류현진은 LA 다저스, 추신수는 신시내티 레즈 소속이었고 상대 성적은 2타수 무안타 1볼넷이었다. 이후 MLB에서는 더는 맞붙지 못하다 11년 만에 각각 한화와 SSG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와 타석에서 마주보게 됐다.
류현진은 추신수를 상대로 정면 승부했다. 초구 직구로 파울을 유도한 뒤 2구째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 안에 넣었다. 지면 가까이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보여줬고, 낮은 커브를 던져 파울을 유도했다. 현란한 완급 조절 능력으로 승부를 끌어간 뒤 마지막 5구째 바깥쪽 직구로 헛스윙을 유도해 삼진 처리했다. 추신수는 타석에서 물러나면서 묘한 미소를 띠기도 했다.
두 번째 타석에선 추신수가 웃었다. 한화가 0-1로 뒤진 3회 초 1사 후, 류현진은 다시 만난 추신수에게 초구 직구를 던졌다. 추신수는 이 공을 밀어 쳐 좌전 안타를 만들었다. 한화가 4-2로 앞선 5회 초에도 류현진은 다시 추신수에게 안타를 맞았다. 선두 타자로 나선 추신수에게 볼카운트 1볼-1스트라이크에서 높은 공을 뿌렸고, 추신수가 곧바로 받아친 뒤 2루까지 전력 질주해 좌전 2루타로 연결했다. 류현진은 경기 후 "신수 형에게 당연히 신경 써서 승부했고, 던질 수 있는 공을 다 던졌다. 하지만 형이 두 번째 안타 때 2루까지 뛸 줄은 몰랐다"며 "나이도 있는데 부상을 조심하셔야 하지 않나.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농담해 웃음을 자아냈다.
#'천적' 최정은 커터로 상대?
SSG 3번 타자 최정과 승부도 인상적이었다. 최정은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고 거포 중 한 명이다. 류현진이 MLB에 진출하기 전엔 '천적'으로도 유명했다. 7년간 총 65차례 맞붙어 타율 0.362(58타수 21안타)로 강했다. 특히 홈런 4개, 2루타 5개를 터트려 장타 비중이 높았다. 류현진에게 삼진 14개를 당했지만 고의4구 3개를 포함해 볼넷 5개를 얻어냈고, 몸에 맞는 볼과 희생플라이도 각각 1개씩 해냈다. 류현진은 MLB 진출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가장 만나기 싫은 타자'로 최정을 꼽으면서 "내가 어떤 공을 던지든 다 친다. '내 표정만 봐도 뭘 던질지 알겠다'고 하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최정은 류현진이 MLB에서 뛰는 동안 세 차례 KBO리그 홈런왕에 오르고 2년 연속(2016~2017년) 40홈런을 기록하는 등 정상을 향해 날개를 폈고, 마침내 '홈런의 상징' 같았던 이승엽 두산 감독(467개)마저 넘어 역대 최다 홈런을 때려낸 타자로 우뚝 섰다. 12년 만의 맞대결을 앞두고 만난 최정은 "분명 류현진 질문을 받을 줄 알았다"며 웃음을 터트리더니 "영상으로 봤을 때 류현진 컨트롤이 너무 좋더라. 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목표는 무조건 '1안타라도 치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또 "옛날에 맞대결할 때도 '못 쳐도 본전'이란 생각으로 했다. 올해도 똑같은 마음"이라며 "류현진이 큰 무대를 경험하고 와서 이제는 레벨이 더 올랐다. 나보다 더 멘탈이 좋은 선수이고, 시즌이 끝나면 어차피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12년 전과 현재의 류현진이 어떻게 다른 것 같느냐'는 질문에는 "변한 건 얼굴밖에 없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 예전이랑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고 농담해 폭소를 안긴 뒤 "너무 잘 던지는데 (다른 팀 타자들이) 왜 그렇게 잘 쳤는지 모르겠다. 영상으로 봤을 때는 정말 좋아 보였다"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최정은 과거 류현진에게 때려낸 홈런 4개를 "모두 기억한다"고 했다. 2006년 6월 8일 대전 경기 5회 좌월 솔로포, 2011년 4월 14일 인천 경기 4회 좌월 3점포, 2011년 5월 26일 대전 경기 2회 좌월 2점포, 2011년 6월 28일 인천 경기 4회 좌월 솔로포다. 최정은 "최고 투수의 볼을 때려 홈런을 친 것은 잊을 수 없다. 안타 친 것도 기억에 남는다. 현진이가 커브를 던졌는데, 안타를 맞고 마운드에서 웃었던 것도 기억난다"며 "한 번은 몸 쪽으로 깊게 볼성으로 던진 게 홈런이 돼 마운드에서 현진이가 화냈던 적도 있다"고 기분 좋게 회상했다.
이날 둘의 맞대결은 최정이 2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물러나면서 류현진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1회 첫 타석에서 최정이 볼넷을 골라냈지만 3회 유격수 땅볼, 5회 3루 땅볼로 물러났다. 2번의 땅볼 아웃 모두 류현진의 바깥쪽 체인지업에 최정이 타이밍을 빼앗긴 타구였다. 재미있는 것은 류현진이 최정과 첫 승부에서 공 5개 중 커터만 4개를 던졌다는 거다. 커터는 류현진이 MLB 진출 후 새로 장착한 구종이다. 초구 커터는 최정의 헛스윙을 이끌어내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았지만, 이후 던진 커터 3개에는 모두 최정의 배트가 나가지 않아 볼넷으로 연결됐다. 류현진은 경기 후 "첫 타석부터 (최정과 승부를) 많이 의식했다. 그래서 첫 타석에는 미국 가기 전에 안 던졌던 커터를 많이 던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놔 취재진을 웃게 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초구 이후에는 잘 참아서 볼넷이 되더라"며 웃은 뒤 "이제 다음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다음 승부를 기약했다.
#만루포 지원한 노시환은 소고기 포식
경기 후 한화의 후배 선수들은 류현진에게 물세례를 퍼붓고 얼굴에 케이크를 묻히면서 축제 같은 하룻밤을 만끽했다. 올해 입단한 19세 막내 황준서까지 합세한 '집안 잔치'였다. 류현진은 연신 도망 다니며 "하지 마!"를 외쳤지만, 입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 동료들에게 그런 세리머니를 처음 받아봐서 정말 기분 좋았다. (정수기 물통을 뽑아 온) 박상원이 그래도 좀 신경을 썼더라. 미지근한 물로 채워와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며 "경기 후 관중석으로 올라가 팬들 앞에 서는 단상 인터뷰도 처음 해봤는데, 역시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첫 승을 도운 후배에게는 보답도 확실히 했다. 이날 역전 만루홈런과 호수비로 100승을 지원사격한 내야수 노시환이 가장 큰 수혜자였다. 노시환은 경기 후 취재진에게 "류현진 선배님이 소고기를 한 번 사주셔야 할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했고, 이 말을 전해 들은 류현진은 "노시환 선수 실력이면 그 정돈 당연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짐짓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경기 후 류현진의 인스타그램에는 그가 직접 노시환에게 고기 한 점을 먹여주는 사진이 올라왔다. 류현진은 "가족들과 식사하러 가는데 시환이도 가고 싶다고 하길래 흔쾌히 오라고 했다"며 "고기를 입에 넣어주는 장면을 딱 한 번 연출했고, 그다음엔 시환이가 직접 아주 많이 먹었다"고 웃었다. 류현진 100승 축하 케이크를 특별 제작한 절친한 후배 투수 장민재도 동석해 류현진이 '쏘는' 한우를 마음껏 먹었다. 류현진은 "민재가 준 케이크도 참 잘 만들었더라"며 흐뭇하게 웃었다.
늘 류현진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던 후배 문동주와는 이 자리에서 영상통화를 했다. 문동주는 최근 등판에서 대량 실점을 해 류현진 등판일 직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류현진 선배가 저리 가라고 하실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최대한 많은 걸 배우겠다"던 그가 2군에 있느라 정작 100승 세리머니를 함께하지 못했다. 류현진은 "동주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더라. 난 그냥 '열흘만 있다가 빨리 돌아오라'고 말해줬다"고 응원했다.
큰 과제 하나를 해치운 류현진은 이제 다시 한화의 재도약에 앞장설 생각이다. 그에게 이달의 목표를 묻자 "4월에 까먹은 패배 숫자를 다시 채우는 것"이라고 했다. 한화는 지난 3월 7승 1패로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4월 성적은 6승 17패로 승패 마진이 -11에 달했다. 팀 순위도 하위권으로 처졌다. 류현진은 "이제 안 좋았던 4월은 끝났으니, 5월부터 또 열심히 달려나가야 한다. 팀의 목표가 우선이고, 개인적으로는 그냥 매 경기 선발 투수 역할을 잘해내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한·미 통산 200승은 빨리 하고 싶다"고 했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100승 55패, MLB에서 통산 78승 48패를 각각 기록했다. 통산 성적은 178승 103패다. 앞으로 22승을 추가하면 프로 통산 200승 고지에 올라선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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