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가 어느 땐데… 비박계 유력 정치인이 민간인 불법사찰팀이 수집한 ‘박근혜 X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대선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
이런 가운데 비박 진영 A 씨 측이 불법 민간인사찰로 물의를 빚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광범위하게 수집한 ‘박근혜 X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져 비상한 관심을 끈다. 정치권 일각에선 A 씨가 박 후보와의 정치적 ‘딜’에 실패할 경우 보관 중인 자료들을 야권 후보에게 건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도 박 후보 사찰 정황이 새롭게 드러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눈과 귀를 막는 참모들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다.”
지난 10월 21일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직후 기자와 통화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던진 직격탄이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박 후보가 국민 여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털고 가면 될 텐데 왜 이렇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못마땅해 했다. 이날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는 개인 소유가 아니며 어떤 정치적 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 공익재단”이라며 자신과 무관함을 재차 강조했다. 당초 사과 혹은 유감의 뜻을 밝힐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정면 대응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 지난 10월 21일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지만 당 내부에선 당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이런 와중에 ‘안하느니만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이후 새누리당 내부에선 “당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폭주했다고 한다. 상당수 의원들은 기자회견 전 여러 채널을 통해 박 후보 캠프 인사들에게 “정수장학회는 무조건 사과한 뒤 훌훌 털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몇몇 참모들이 박 후보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어 제대로 된 여론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과 맞물리면서 2차 ‘선상 반란’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경우 최경환 의원의 비서실장직 사퇴로 무마되는 것처럼 보였던 박 후보의 용인술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친이계와 소장파를 핵심으로 하는 비박 진영 인사들은 친박 비주류 의원들과 여러 차례 회동을 갖고 당 쇄신 방안에 대해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는 캠프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의원들도 지역구로 내려가 발로 뛰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놀고 있는 의원들이 많다. 캠프가 다 알아서 하겠다며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 아니겠냐”면서 “이번에도 우리의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탈당,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연대 등을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대응하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이들은 쇄신 대상으로 박 후보 보좌진, 일부 캠프 관계자, 황우여 대표 등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비박계 유력 정치인 A 씨가 박 후보의 친인척, 사생활, 재산 등이 담긴 파일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선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자료의 신뢰도, 활용 여부 등에 따라 대권 판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당국 관계자 및 A 씨 측근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른바 ‘박근혜 X파일’의 출처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한 문서라고 한다. 비선라인에 의한 민간인 불법사찰로 파문을 일으켰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꼽혔던 박 후보까지 사찰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2010년 12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 후보의 은밀한 만남을 사찰한 흔적이 담긴 수첩을 공개하기도 했다. 박 후보 역시 “나도 사찰 피해자”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정권 출범 후 친이계 인사들은 종종 박 후보를 지칭하며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며 반협박성 발언들을 노골적으로 내뱉곤 했다. 박 후보가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릴 정도로 정권에 비협조적인 것을 못마땅해 했던 것이다. 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한 고위 관료는 “정권 초기엔 고급 정보들이 몰린다. 그중엔 박 후보를 죽일 카드도 여러 개 있었다”면서 “‘박근혜 파일’은 지난 정권에서 이어받은 것도 있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 등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것도 제법 있었다”고 귀띔했다. 여의도 주변에선 민간인 불법 사찰의 ‘몸통’으로 거론되는 박영준 전 차관의 핵심 측근인 이영호 전 고용노사 비서관이 박 후보 사찰을 전담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기도 했다. 또한 박 후보가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이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던 시점을 전후로 집중 사찰을 벌였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와 관련 박근혜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영호에서 박영준으로 이어지는 보고 내용은 아무나 볼 수 없는, 비선에서 다뤄졌던 것으로 안다. 즉, 눈엣가시 같은 박 후보를 몰아내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은밀히 추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출범 계기를 박 후보에게서 찾기도 한다. 2008년 2월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윤리지원관실 전신)을 폐지했던 이명박 부는 같은 해 7월 명칭을 바꿔 이를 되살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광우병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공직기강을 확립한다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전방위 사찰을 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면서 출범 배경에 의문 부호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08년 총선에서 친박 공천 학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입지가 강화된 박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정황들이다.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 당시 모습. 일요신문 DB |
정치권에선 A 씨가 본 궤도에 진입한 대선정국에서 이 자료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정치권 변방으로 밀려나 ‘야전’ 생활을 하고 있는 A 씨가 박 후보와 거래를 하지 않겠느냐. 파일을 넘기는 대신 자신의 지분을 요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A 씨가 박 후보 아닌 제3의 세력과 손잡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박 후보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던 A 씨가 탈당해 안철수 후보 측과 연대할 것이란 얘기는 최근 여의도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핫이슈’이기도 하다. 이 경우 A 씨가 보관 중인 자료는 박 후보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박근혜 X파일’과 관련해 박근혜 캠프 관계자는 “새로 나올 건 더 이상 없다”고 일축하면서 “현 정권이 공개할 거였으면 진작 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