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뜁시다” 문재인 후보가 10월 6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담쟁이선거캠프 워크숍에 참석한 모습. 민주당은 단일화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조직을 총동원해 지지층 결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문재인 |
지난 25일 국회 본청 제2 회의장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의원총회. 문재인 대통령선거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이 호소력 짙은 어조로 동료 의원들을 향해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날 의총은 전날 마무리된 국정감사를 평가하고 모든 의원들이 문 후보를 적극 지원할 것을 결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오랜 전통과 자부심이 오히려 누가 되고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우리는 평론만을 할 수는 없다”는 한탄으로 시작한 김 전 의원의 연설은 “의원 한 분 한 분이 이렇게 우리 선배들의 역사가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으로 버텨주시고 앞을 열어주기 바란다”는 당부로 끝났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 <초한지>에 나온 유방의 말을 빌려 의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유방이 ‘나는 범부의 지혜와 용기밖에 없지만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영웅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천하를 통일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계신 존경하는 127명의 자랑스러운 민주당 의원님들이 장량, 소하, 한신이 되어 달라. 아니, 127명의 문재인이 되어 달라.”
이날 김 전 의원의 연설을 들은 한 의원은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김부겸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대로 안철수에게 당할 수만은 없다’며 민주당 의원들의 단결과 지원을 호소한 김 전 의원의 모습이 마치 군부독재 정권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함께 거리로 나서자고 서울대생들에게 호소했던 과거를 연상시켰다는 얘기였다.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김 전 의원의 이날 연설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눈앞에 둔 문재인 후보 측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치고 올라가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이다. 공식 후보등록(11월 25~26일) 이전에 단일화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향후 2주 동안 지지율 추이가 단일화의 승부를 가를 것으로 문 후보 측은 보고 있다.
그리고 단일화 승리를 위해 문 후보 측이 꺼내든 승부수는 총력전이다. 후보 혼자 전국을 누벼 온 지금까지와 달리 국회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등 당 조직을 총동원해 지지층 결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의 의총 연설은 총동원령을 내리기에 앞서 자존심 강한 의원들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잘 연출된 장면으로 보일 정도다.
실제로 문 후보는 25일부터 전국 순회 일정에 돌입했다. 문 후보는 이날 하루 동안 대구, 울산, 부산 등을 돌며 지역별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했고 28일에는 광주, 전남, 대전, 충남, 세종 선대위 출범식 일정을 소화했다. 정책 발표 중심의 ‘공중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당 조직을 십분 활용해 저인망식으로 민심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동시에 당의 영향권 내에 있는 지지자들에게 ‘안철수가 아닌 문재인이 대안’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던져주기 위한 조치다.
국회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등 당 조직의 골간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지금까지와 달라지는 점이다. 민주당은 각 의원 및 지역위원장들에게 오는 11월 4일까지 지역별 당원 교육대회를 모두 마쳐 달라고 요구했다. 바닥의 지지층부터 확실히 잡고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127명의 의원 모두가 선대위에 배치돼 하나 이상의 보직을 부여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류상 그랬을 뿐이었다.
하지만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감이 끝난 만큼 정부 예산안 심사를 해야 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절반씩이라도 지역에 내려가거나 직능조직들을 챙기는 데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원들별로 조를 편성해 지역, 직능조직을 전담 마크하도록 할 방침이다. 말 그대로 민주당 의원들과 지역위원장들이 대대적인 ‘하방’(下放)에 나서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총력전을 통해 2주일 이내에 문 후보 지지율을 4%포인트 이상 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10월 10일 이후 안 후보 지지율이 문 후보에 비해 5%포인트 정도 일관되게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지지율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조정기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시기적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점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단일화에 쏠리고, 그에 따라 후보들의 지지율에 변화의 여지가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우 단장은 “박근혜(새누리당) 후보와 경쟁할 때와 달리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 경쟁할 때에는 지지율이 ‘제로섬 양상’을 띤다”며 “2주 안으로 문 후보가 지지율을 3~4%포인트 끌어올리면 안 후보 지지율이 그만큼 빠지기 때문에 지지율 역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장 여론조사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당 조직을 동원한 총력 호소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그동안 선대위에 대해 소외감을 표출해 온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민주당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이 당원과 지지자들을 만나 안철수 후보 지지운동을 벌일 수는 없다”며 “조직망을 가동하는 게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내부 결속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문 후보가 2주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11월 10일을 전후한 지지율이 단일화 협상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지지율을 역전시키지 못할 경우 단일화 룰 협상에서 안철수 후보 측이 끌려갈 수밖에 없고, 결국 단일후보 자리를 내놔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후보 단일화 시점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이미 안 후보에게 빼앗긴 것 아니냐”며 “여기서 한 번 더 밀린다면 100만 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뽑힌 문 후보가 힘 한 번 못 써보고 단일후보 자리를 헌납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
충청·호남 거물 ‘득보다 실’
이종걸 최고위원과 안민석, 황주홍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쇄신의원 모임은 지난 25일 성명을 내고 “문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인적 쇄신을 포함한 당의 근본적 쇄신을 거부할 여유와 주저할 까닭이 전혀 없다”며 “당과 후보는 후보 자신을 빼고 모든 걸 버리고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비상한 결의를 지녀야 한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당의 총체적 분발을 위해 당과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공적보다는 과오 부분을 진실한 마음으로 관리해야 한다. 국민은 과에 대해 불안해하고, 이것이 지지율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실상 친노 색깔을 빼야 한다는 메시지를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다.
당초 이 성명에는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자칫 권력투쟁으로 비칠 수 있다”는 반론 때문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은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적절한 시점에 용퇴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성명을 발표한 25일은 민주당이 의원총회를 열고 문 후보 총력 지원을 결의한 날이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총력전을 펼치려는 문 후보 앞에 이런저런 걸림돌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문 후보가 이 같은 당내 인적쇄신 요구를 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문 후보 선대위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를 사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 발에 오줌 누자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두 사람이 사퇴하면 당장 며칠 동안은 ‘민주당이 변하나보다’ 하는 여론이 형성되겠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갈 수 없다”며 “오히려 두 사람의 공백이 장기적으로 당과 후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표 없이 충청 지역 선거를 치르기 어렵고, 가뜩이나 호남에서 친노그룹에 불만이 많은데 어떻게 문 후보가 박 원내대표를 내칠 수 있겠느냐”면서 “왜 새누리당이 ‘철새 도래지’라는 비판을 받아가면서까지 선진통일당과 합당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 산하 ‘새로운 정치위원회’에서도 인적 쇄신 문제가 거론됐지만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 뚜렷한 결론을 못 내린 것도 이 같은 시각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실 이런 이해찬-박지원 체제 정리에 대한 거부감은 문재인 후보와 현재의 선대위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 서서히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분위기다(70면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 인터뷰 참조). 하지만 이는 민주당의 쇄신을 바라는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과도한 인적 쇄신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문 후보를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실무진이 변경되다 보니 손발이 맞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문 후보가 제시한 정치개혁안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당은 25일 의총에서 문 후보가 발표한 정치개혁, 권력기관 개혁, 반부패 등 3대 정치쇄신 공약을 입법으로 뒷받침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강기정 최고위원과 최규성 의원이 정치개혁안에 포함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문제 삼고 나섰다. 최 의원은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지역 토호들의 난장판이 되기 때문에 당내에서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선출직 공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결국 문 후보 측은 이들 공약을 부랴부랴 수정했다. 당내 의견 수렴과 조율도 거치지 않은 채 국회의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을 공약으로 내걸 뻔했던 것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