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수술 포기하고 야수 전향 결심…홍원기 감독 “수비도 잘해야” 강조
그러나 그는 입단 후 고질적인 제구 불안에 발목을 잡혀 좀처럼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올해는 스프링캠프 막바지부터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투수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투수' 장재영의 1군 통산 성적은 56경기 1승 6패 평균자책점 6.45로 남게 됐다.
#토미존 서저리 포기
장재영에게 올 시즌은 중요한 기로였다. 그는 프로 3년 차인 지난해 23경기(선발 17경기)에서 71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해 처음으로 붙박이 1군 선발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키움의 강속구 에이스 안우진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군에 입대해 올해 장재영의 팀 내 비중과 역할도 더 커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3월 스프링캠프 막바지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하고 재활을 계속해왔다. 5월 1일 경북 경산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퓨처스(2군)리그 경기에서 실전에 복귀했지만, 공 11개를 던진 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저리다"며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때만 해도 가벼운 후유증으로 여겨졌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이틀 뒤인 5월 3일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거친 결과,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가 심하게 손상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료진은 장재영에게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권유했다. 이 수술을 받으면 회복과 재활에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장재영과 키움 구단, 홍원기 감독은 5월 7일 수술 여부를 두고 면담을 진행했다. 키움 관계자는 면담이 끝난 뒤 "선수의 뜻에 따라 수술이 아닌 재활 치료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며 "장재영은 현재 통증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한다. 당분간 휴식한 뒤 팔꿈치 상태를 지켜보고 재활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원기 키움 감독도 이날 고척 두산 베어스전에 앞서 "장재영은 팔꿈치 인대가 70~80%가량 손상됐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본인이 팔꿈치 통증이나 손가락 저림 증세가 없다고 해서 일단 수술을 안하는 쪽으로 답을 내렸다. 앞으로 재활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또 "장재영은 운동 욕심이라면 우리 팀에서도 손에 꼽게 대단한 선수인데, 결과에 대한 조급함 때문인지 불운한 부상이 찾아온 것 같다"며 "수술을 하면 1년 이상의 시간이 날아가고, 장재영은 아직 (프로에서) 보여준 게 없다. 그래서 수술보다는 재활을 선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국 야수 전향 선언
그러나 장재영이 수술을 포기한 진짜 이유는 그 후 2주가량이 흐른 5월 19일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는 고심 끝에 면담 자리에서 '야수 전향' 의사를 밝혔고, 키움 구단과 홍 감독도 그 뜻을 받아들여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갔다. 장재영은 "언제 타자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는지는 말하기가 어렵다. 투수를 더 해볼지, 군대를 바로 다녀올지, 아니면 타자로 포지션을 바꿀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래도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장재영은 덕수고 3학년 시절 타율 0.353 3홈런 21타점을 올린 특급 타자였다. 청소년대표팀에서도 중심 타자 역할을 맡아 매서운 방망이 실력을 보였다. 고교 졸업 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웬만한 키움 야수들보다 발도 빠르고 어깨도 강하다. 지난 시즌부터는 투타 겸업에 관심을 보여 비시즌에 타격 훈련을 병행하기도 했다.
키움 구단은 투수로 고전하고 있는 장재영이 타격과 수비 능력을 끌어올린다면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단은 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야수를 권유했지만, 장재영은 신월중 시절 자신의 주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키움 구단이 그 의사를 수용하면서 장재영은 유격수와 외야수 훈련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 홍 감독은 장재영의 야수 전향이 발표된 5월 19일 고척 SSG 랜더스전에 앞서 "시속 150km를 던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아쉬워하면서도 "본인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4년 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제구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번 팔꿈치 부상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 누구보다 가장 아쉬움이 큰 사람은 당사자인 장재영이다. 그는 "남들은 나를 그저 볼만 던지는 투수로 생각하겠지만, 그동안 정말 많이 노력했다. 투구폼과 템포도 바꿔보고, 겨울엔 호주 프로야구에서 잠시 투수 겸 타자로 뛰면서 마음도 다잡아봤다. 그래서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최근 들어 정말 많이 울었다. 단장님과 면담할 때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죄송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 결정을 내리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장재영은 그동안 제구 문제로 언론과 여론의 질타를 많이 받았다. 장재영을 향한 기대가 컸던 만큼, 제구 난조로 조기 강판되는 날이면 '9억팔'이라는 별명이 다시 거론되면서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장재영은 "이 모두 내가 야구를 잘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비난이다. 가끔은 도 넘는 손가락질로 힘들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내성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그래도 도망치듯 내린 결정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건, 새로운 도전의 무게감을 잘 알고 있다. 장재영은 "당연히 야수도 투수만큼 쉽지 않은 자리임을 잘 알고 있다. 타격이 쉬워서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내게 실망하신 분들이 많은 만큼,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타자 전향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타자 전향 첫날 안타 신고
첫 단추도 순조롭게 잘 뀄다. 장재영은 타자로 나선 첫 공식 경기에서 안타를 쳤다. 5월 21일 두산과의 2군 경기에 6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해 3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장재영은 1회 첫 타석에서 두산 1군 마무리 투수 출신인 정철원과 만나 3구 만에 루킹 삼진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3회 선두타자로 두 번째 타석에 나와 정철원의 초구를 받아쳤고,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장재영은 이어 5회 세 번째 타석에선 두산 오른손 투수 박소준에게 삼진을 당했다. 3볼-1스트라이크에서 5구째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6구째 헛스윙했다. 6회 마지막 타석에선 두산 왼손 투수 남호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냈다.
홍원기 감독은 이날 고척 NC 다이노스전에 앞서 "공식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장재영이 안타를 쳤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타구 질도 A급이라고 하더라"며 "일단 정식으로 결과를 듣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홍 감독은 또 "안타를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수비도 돼야 하고, 팔 상태도 점검해야 한다"며 "공격력 점검을 위해 지명타자로 내보냈는데,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직 1군에서 뛰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다.
홍 감독은 "충분한 적응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도 했다. "아무리 아마추어 때 타자로 잘했다고 해도 프로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며 "지금 2군에서 단계별로 올라오고 있는데,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시간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장재영은 센스도 있고, 다리도 빠르고, 어깨도 강하다. 훈련 때 보여준 모습은 좋았다"고 호평했다.
장재영 역시 이후에도 데뷔 첫 공식 경기 홈런을 터트리며 기대감을 키웠다. 5월 24일 LG 트윈스와의 2군 경기에 다시 6번 지명 타자로 나서 홈런 포함 6타수 4안타 5타점 2득점 맹타를 휘둘렀다. 기념비적인 홈런은 키움이 7-2로 앞선 4회 말 1사 1·2루 기회에서 나왔다. LG 하영진과 맞선 장재영은 볼카운트 1볼-1스트라이크에서 시속 135km짜리 높은 슬라이더를 받아쳐 비거리 115m짜리 좌월 3점 홈런을 터트렸다. 다만 홍 감독은 이와 관련해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장재영이 이제 타자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만큼 현재 2군 타격 성적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느 정도 단계를 거치며 확인해야 한다"며 "현재 1군에선 이주형이 허벅지 근육 문제로 지명 타자로 계속 출전하고 있다. 장재영이 1군에 올라오기 위해선 수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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