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2000명 검거한 인터폴 최장수 계장…“전세기 예약해 필리핀서 범죄자 47명 동시 수송 기억에 남아”
전재홍 경정의 국제공조 수사 경험은 ‘최장’ 인터폴 계장이라는 시간과 수많은 도피 사범 검거로 축적됐다. 범인 검거를 위해 그가 해외 출장을 떠난 것만 32회, 검거에 성공한 도피 사범은 총 2000명에 달한다. 그는 전세기에 필리핀 도피 사범 47명을 태워 단체 송환해 소위 ‘한국판 콘에어’로 불린 작전을 지휘하는 등 전에 없던 선례를 만들기도 했다.
전 경정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인터폴 계장으로 열심히 일했던 시간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한국에 인터폴 관련 실무 서적이 사실상 없다. 이 책을 통해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수사 기밀을 제외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터폴 계장을 8년이나 했다. 인터폴은 어떤 일을 하나.
“인터폴 최장수 계장이다. 인터폴은 해외로 도피한 피의자들을 잡아서 국내로 데려오는 일을 한다. 경찰은 각 국가마다 주권이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경찰력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 걸친 사건이나 피의자가 도주하게 될 경우, 각 나라 경찰이 협의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피의자들을 검거하기 위해서 만든 국제형사경찰기구가 인터폴이다.”
—인터폴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지구 끝까지 쫓는다’는 어떻게 쓰게 됐나.
“인터폴을 나오면서 사건을 처리했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터폴 관련 한국어 실무 서적이 국내에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8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겨 후배들이 볼 참고서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수사 기밀 유출이 우려될 만한 부분은 뺐다. 다만 경찰관이라면 이 정도 내용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인터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상호주의라고 하는데, 쉽게 얘기하면 내가 밥을 한 번 사야 상대방도 밥을 사는 것처럼 무엇인가 그 나라가 원하는 것을 해줘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 한국으로 도피해 오는 해외 범죄자는 거의 없지만 그런 경우 빠르게 잡아 그 나라로 송환시켜 주면, 그 나라도 숨어 있는 한국인 범죄자를 열심히 찾아내 한국으로 송환시켜 준다. 특정 국가를 언급하긴 어렵지만 A 국가에서 살인하고 넘어온 피의자를 서울청 인터폴 국제공조 팀에서 추적 수사를 잘해서 검거했고, 송환시켜 줬다. 그랬더니 그 나라에서도 한국이 요청한 범죄자들을 곧바로 잡아서 보내줬다.”
—8년 동안 일하면서 몇 명이나 한국으로 송환했나.
“약 2000명 넘는데, 모두를 엄청나게 많은 공을 들이는 건 아니다. 수사 타깃은 중요 요인에게 우선 포커스를 맞추고 나머지 대부분은 공개하긴 어렵지만 쉽게 잡는 방법이 있다. 또 가끔 자신이 수배 중인지 모르고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영화에서 해외로 도피할 때 어선을 이용해 밀항한다. 현실은 어떤가.
“밀항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밀항한다고 하면 어디서 뭘 구해야 하나. 보통 그런 방법도 대부분 모를 뿐더러 밀항을 시켜준다면서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대부분 범죄자는 체포 단계에 있을 때, 영장이 나오기 전 비행기를 타고 당당하게 나간다. 아직 영장이 나오기 전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도망갈 수 있다.”
—보통 어느 국가로 도망을 치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도망친다. 범죄자가 영어에 능통한 경우는 거의 없다.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서 한인사회가 있는 곳을 선호한다. 여기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놀거리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런 이유에서 동남아시아를 선호하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송환 사례가 있다면 어떤 건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필리핀 단체 송환이다. 필리핀에 근무하고 있는 코리안 데스크(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한국 경찰)가 활동을 열심히 해서 범죄자를 많이 검거하게 됐다. 그때 수용소에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내부적인 문제로 송환 추진이 안 됐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필리핀 고위층과 접촉해 ‘저희가 비행기를 보낼 테니 단체로 보내 달라’고 했고 필리핀 법무부 장관, 차관까지 만나서 승낙이 떨어지면서 계획이 추진됐다.”
“47명을 한 번에 데려오는 게 전무후무한 일이라 난관이 많았고 풀어야 할 문제도 산적했다. 범죄자 1명당 호송관 2명을 붙여야 하고 예비 호송관도 데려가야 해서 120명 호송관이 타야 했기 때문에 전세기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전세기를 예약하는데 1억 원이 약간 덜 들었다.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됐다. 만약 비행기가 도착했는데, 갑자기 협조가 안 되거나 47명이 한 수용소에 있다 보니 마음이 맞아 난동을 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도 없게 하기 위해 자기 전에도 수송 작전을 생각했고, 수송 작전을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47명을 데리고 인천공항 도착해 밖으로 나와보니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때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책 표지도 그때 사진으로 했다.”
—또 다른 사례는 뭔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로 송환한 일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배로 송환할 필요가 없다. 비행기가 손쉽고 빠른 데다, 비행기는 도망갈 곳도 없지만 배는 리스크가 너무 많고 선상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 항공편이 막혔고 배편만 운항이 재개가 된 시점이 있었다. 그래서 배를 이용해서라도 송환해 보자고 마음먹고 배를 이용한 최초의 송환을 했다. 당시 러시아 국적 1명과 중국 국적 1명이었는데 러시아 사람은 항해사인데 화학약품 관리를 안 해 폭발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 사람은 킹크랩을 보내주겠다면서 돈을 받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았다. 선실 내 방에 호송관과 피의자를 넣어두고 내가 밖에서 감시하면서 데려왔다.”
—피의자가 송환될 때 반항하지는 않나.
“1차로 현지에서 검거될 때 기가 팍 죽는다. 또 현지에서 수용 생활을 몇 개월 하다 보면 기가 더 죽는다. 한국 수사관을 만나면 거기서 기가 더 죽는다. 세 번 정도 꺾이기 때문에 피의자도 한국 가서 어떻게 조사받을 건가를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지 거기서 반항한다고 해봐야 죄만 늘어나고 좋을 게 없다.”
—필리핀에서 1세대 보이스피싱 대부로 꼽히는 속칭 ‘김미영 팀장’이 탈옥을 했다. 겨우 잡았는데 탈옥했다는 소식에 기분은 어땠나.
“2019년 서울청 인터폴 공조팀에서 적극적인 첩보로 김미영 팀장 위치를 필리핀으로 특정했고, 그때부터 한 명씩 조직원을 검거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얘기는 못 하지만 수집한 김미영 팀장 관련 첩보를 통해 필리핀 코리안 데스크가 현지에서 확인했다. 일주일에 몇 차례씩 화상 회의를 하면서 내용을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몇 개월 동안 했다. 결국 김미영 팀장을 체포했는데, 일단은 필리핀에서 범죄를 저지른 게 있어 필리핀에서 재판을 받고 수감됐다. 그런데 탈옥했다는 소식에 무척 허망했다. 그때 나뿐만 아니라 인터폴 공조팀, 코리안 데스크가 오랫동안 열심히 장기간 준비해서 검거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탈옥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한국은 탈옥을 꿈꾸기 어려운데, 필리핀 탈옥 사건은 자주 접하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특정 국가를 모욕하는 건 아니고 현실을 얘기할 순 있다. 나는 한국인 범죄자가 수감되는 이민청 수용소, ‘비쿠탄 수용소’라고 하는 데 가본 적이 있다. 이민청 수용소가 한국 구치소나 교도소 같지 않다. 큰 군인 막사 같은 곳에 한 부분으로 있다. 군인 막사 구석에 이민청 수용소가 있는데 굉장히 활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제한 받고 CC(폐쇄회로)TV도 있지만 꽤 자유로워서 당구도 치고, 음식도 배달해 먹거나 그 안에서 조리해서 팔기도 한다. 그 자유로운 틈을 비집고 탈옥하는 것 같다. 잡는 것도 어려움이고, 한국까지 데려오는 것도 또 한 번의 어려움이다.”
—도망친 피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처럼 도망가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사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다. 다들 마음 졸이고 있다가 잡힌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 번은 2층에 있는 사람을 잡으러 올라갔는데, 2층에 사람이 없었다. 알고 보니 사다리를 준비해 두고 1층으로 내려가서 도망갔다가 결국 주변에서 잡혔다. 도망쳐서 평생 사다리를 곁에 두고 누가 날 잡으러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사느니 차라리 제 발로 한국에 들어와 벌을 받고 털어내고 새출발하는 게 낫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 아직 못 잡아서 마음에 남는 피의자가 있나.
“8년 동안 웬만한 피의자는 잡을 만큼 다 잡아서 마음에 남는 피의자는 없다. 딱 한 명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후배들을 위해서 남겨주고 싶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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