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령 출전자인 영국의 밀란 자드론 선수(56·오른쪽)가 한국 여자 선수와 대국하고 있다. |
▲ 중국의 후위칭 선수와 한국의 한승주 선수(왼쪽)가 맞붙은 결승전 대국. |
올해는 10월 19~21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제7회 국무총리배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전이 열렸다. 대회 전에는 70개국이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그 중 네 나라가 빠져 66개국의 대표 선수가 한국의 빛고을 광주를 찾았다. 아시아에서 인도, 유럽에서는 포르투갈과 발틱 3국 중의 라트비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모로코가 불참을 알려오면서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이런 좋은 기회를 잃는다”고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은 개인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했으니 그렇다 하겠지만, 포르투갈 선수는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놓쳤다…^^”는 것이니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웬만하면 이륙을 좀 늦추고 봐 주지 그걸.
▲ 쉬린 모하마디 |
아마 세계대회도 우승이 한-중-일의 대결인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아마 세계대회는 1~3등 다음이 누구냐가 우승 못지않은 관심거리고, 4등부터의 자리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 중위권의 격돌이 불꽃을 튀긴다. 또한 반외의 교류가 반상 대결 못지않게 흥취가 있다. 우리 모두 하수인 것은 마찬가지이니 실력의 고하를 떠나 서로 난생 처음 보는 얼굴들이 꿀리는 일 없이 어울린다. 이번에 참가한 나라는 다음과 같다
▲아시아 17개국 :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몽골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이란 터키
▲유럽 32개국 :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아일랜드 키프로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폴란드 핀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아르메니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아메리카 13개국 : 미국 캐나다 멕시코 에콰도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우루과이
▲아프리카 2개국 : 남아프카공화국 마다가스카르
▲오세아니아 2개국 : 호주 뉴질랜드
참가 숫자는 유럽이 압도적이다. 거의 전 유럽을 망라하고 있다. 그 많은 나라 중에서 그루지아, 아이슬란드,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그리스, 알바니아 정도가 빠졌을 뿐이다.
아시아에서는 중동 쪽이 아직 열세다. 바둑 세계화의 미개척 분야로 아프리카와 함께 숙제로 남은 지역이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 선수를 보면 눈물겹다. 바둑이 뭐라고. 최소 36시간은 비행기 속에 있어야 했을 것이다. 남미도 거리가 멀긴 비슷하지만 그래도 마다가스카르에 비하랴.
미주도 참가율이 아주 높다. 오세아니아는 100%. 뉴질랜드 대표는 한국 출신의 김도영 선수(22·학생). 건너가기 전, 어렸을 때 바둑도장에 다니며 프로를 꿈꾼 적이 있는 청년이다. 추억을 되새기며 선전해 19위에 올랐다. 예전에는 각 나라 대표에 한국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 옛날 얘기. 중국인이 넘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바둑의 세계보급은 바둑을 모르는 외국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교포 2세, 3세도 소중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즐기던 바둑을 그들도 알게 하고, 맥을 잇게 하는 것은 더욱 중차대한 일 아닌가.
대회 우승은 한국의 한승주 선수. 열여섯 살, 고등학교 1학년. 2007년과 2010년 세계 청소년 바둑대회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고 지금은 연구생 1조의 실력으로 프로 입단후보 영순위. 맥마흔 시스템 6라운드, 마지막 판에서 국무총리배 단골손님인 중국의 강호 후위칭(31) 선수를 무난히 꺾고 6전 전승으로 트로피를 안았다. 우승을 노렸던 후위칭은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다가 바둑을 다 둔 다음, 공배만 남은 상태, 계가 직전에 돌을 거두었다. 중국 선수들 중에는 이런 스타일이 적지 않다.
최연소는 대만의 천치루이 선수로 열두 살. 내년에 대만기원 프로 입단이 예약된 천재 소년인데,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도중에 홍콩 선수에게 일격을 당해 11위로 주저앉았다. 최고령은 영국의 밀란 자드론 선수. 1956년생이다. 아마 초단의 회계사로 31위. 영국은 한때 유럽 바둑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터라 지금도 런던 시내에는 바둑클럽이 의외로 자주 눈에 띈다. 아마6단급 실력자들도 있지만, 기회를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 최고 인기상은, 그런 게 있었다면 단연 이란의 여성 대표 쉬린 모하마디(25)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쪽 지방 특유의 복장에 빼어난 미모로 인터뷰 세례를 받았다. 스포츠센터 강사. “직장 보스의 권유로 바둑을 배우게 되었고, 바둑대회에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2승1패의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상대들의 점수가 낮았던 까닭에 맥마흔 시스템에 따라 58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은퇴 프로기사 김동명 씨(65)가 국가대표 바둑감독으로 있는 인도네시아는 당당 23위. 현역 프로기사 이강욱 8단(30·해외보급단)이 이끌고 있는 베트남은 인도네시아보다 성적이 더 좋아 17위.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어딘지 외로워 보이고 시종 수줍은 웃음을 머금고 있던, ‘마미 리코토아리소아(33)’라는 긴 이름의 흑인 청년은 49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대회도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남도의 음식과 가을 풍경이 마냥 새롭고 설레, 아침에 대회장에서 만나면 충혈된 눈으로 이구동성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면서 웃었고, ‘승고흔연 패역가희’ 이런 말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들 절감하며 돌아갔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