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외부 매각 대신 자체 지분 매입으로 가닥이 잡히면 김 회장은 쌍용건설 회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된다. 지난 3월 대표이사에서 퇴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 회장이 최근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도 이 같은 시나리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김 회장은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 김성곤 회장의 2남으로 쌍용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내다 쌍용그룹 해체 후 채권단의 요청으로 쌍용건설로 복귀한 바 있다. 김 회장의 형인 김석원 전 회장은 현재 쌍용양회공업의 고문직을 맡고는 있지만 눈에 띄는 행보는 거의 없다.
현재 김석준 회장이 가지고 있는 개인 지분은 1.45%밖에 되지 않지만 회사 안팎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어 자리를 지키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평이다.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초 올해 말 매각 예정이던 쌍용건설은 대우건설 매각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내년 상반기로 매각이 미뤄지고 있다. 그러나 쉽게 매각 일정이 나오지 않는 데는 우리사주조합이 가지고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19.4%다. 게다가 우리사주조합은 채권단이 가지고 있는 지분 24.7%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다. 이를 행사할 경우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은 44.1%다. 쌍용양회가 가지고 있는 지분 6.13%를 합하면 50.2%가 된다. 김 회장 개인 지분까지 합하면 51.7%까지 가능하다.
쌍용양회는 옛 쌍용그룹의 주력사로 김석원 전 회장이 그룹 회생을 도모하며 막판에 일본업체인 태평양시멘트와 투자회사 TCC홀딩스를 대주주로 영입한 바 있다. 때문에 쌍용건설이 옛 쌍용그룹의 계열사였다는 점에서 쌍용양회의 현 대주주도 쌍용건설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캠코에서도 우리사주조합과 합의를 통하지 않고서는 매각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채권단 지분은 50.1%지만 우리사주조합이 채권단 지분 중 24.7%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50.1%가 아닌 25.4%만 매각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의 부실을 계열사가 나눠서 부담한 것이 그룹 해체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1999년 3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건설은 10:1, 9:1, 2:1 등의 비율로 수차례 감자를 진행했고 오너 일가의 지분은 이때 사라졌다.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채권단은 김석준 회장의 능력을 높이 사 경영을 그대로 맡겼고, 감자에 대한 보상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 것이다. 쌍용건설의 표현에 의하면 채권단이 ‘채찍과 당근’을 쓴 셈이다.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직원들의 회사 살리기에 대한 열의는 식지 않았다. 직원들은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당시 2500원대이던 주식을 액면가 5000원에 사들였다. 이때 김 회장도 자신의 이태원동 자택을 담보로 주식을 사들이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우선매수청구권을 우리사주조합에 넘겼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이 무작정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캠코가 예외적인 상황임을 들어 우선매수청구권을 제한하고 매각을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 회장이 2년 만에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모습을 보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4년 10월 워크아웃 졸업 때 모습을 보인 바 있는 김 회장은 그간 4148억 원 사기대출 및 80억 원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보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올해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대표이사와 이사직을 버리고 ‘백의종군’해 왔다.
쌍용건설 측은 “당시 기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판단이었다. 김 회장은 개인이 돈을 착복한 적이 없는 깨끗한 경영인이었다. 때문에 법원에서도 법정구속을 바로 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당시 7일 전 이용훈 대법원장이 두산그룹 분식회계 판결과 관련해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이라는 발언을 해 첫 케이스로 실형이 부과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실형을 선고받은 김 회장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되면 실형을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11월 6일 싱가포르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김 회장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2억 달러 공사 수주 실적을 밝히고 향후 해외 사업을 활발히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때 해외사업 비중이 70%에 이를 정도로 해외에서 인정받았던 쌍용건설은 워크아웃 동안 손발이 묶여 해외 사업을 활발히 못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해외 수주에는 김 회장의 비즈니스 인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김 회장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알린 셈이다.
때를 같이해 채권단에서도 매각과 관련해 구 사주가 인수하는 경우는 회사 정상화의 기여도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흘러다니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의 경우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옛 오너에게 다시 매각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최근 정황은 김 회장에게 좀 더 유리한 상황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쌍용그룹 2세 중 유일하게 경영일선에 남은 김 회장이 ‘쌍용’의 깃발을 간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