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이후 삼성이 핵심 계열사 지분을 어떻게 확보할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12월 28일 청와대에서 만난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는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배권 약화로 이어진다. 현재 삼성전자 지분구조상 이건희 회장의 우호지분은 28.75%다(보통주 기준). 삼성전자는 자사주 12.66%를 보유하고 있는데 자사주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 즉, 이 회장 측이 의결권에 동원할 수 있는 지분율은 총 16.08%인 셈이다. 여기서 삼성생명의 초과지분 2.26%를 처분하면 이 회장 측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13.82%로 떨어진다.
지난 봄 KT&G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칼 아이칸 측은 35%의 의결권을 확보한 바 있다. 현재 삼성전자 지분을 꿰차고 있는 외국인들의 지분은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들이 칼 아이칸의 경우처럼 연합을 하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금산법 개정안이 실제로 삼성전자 경영권 수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삼성전자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 자본 중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곳은 씨티뱅크(9.38%)가 유일하며 나머지 외국인 주주들은 수백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칼 아이칸의 경우처럼 하나의 연합체를 구성할 결속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까닭에 정치권 인사들과 일부 재계 인사들은 “삼성 총수일가가 지분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금산법 개정안의 취지를 흐리는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이 회장 측의 삼성전자 의결권이 줄어드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액은 57조 원으로 삼성그룹 전체 매출액 120조 원의 47.5%이며 삼성전자는 연간 순이익만 7조 원 이상(2005년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입장에서 그룹 전체를 떠받치는 알토란 같은 존재인 삼성전자에 대한 장악력이 낮아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을 뿐더러 수많은 외국계 펀드들이 삼성전자 경영권 탈취를 위해 연합할 가능성을 무조건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회장과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수성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까.
일단 삼성전자 스스로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자사주 매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자사주는 삼성전자 전체 지분의 12.66%다. 삼성전자 주가는 12월 28일 종가기준으로 61만 3000원이며 주식 총수가 약 1억 4730만 주에 달해 전체 시가총액을 90조 원 정도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지분 1% 확보를 위해 900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7조~10조 원가량의 현금을 항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이후 무차입 경영을 위해 현금 보유고를 늘려온 것이다. 7조 원이면 삼성전자 지분 7.8%를 매입할 수 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초과분을 벌충하고도 남을 정도다.
자사주는 의결권 행사와는 무관하므로 삼성생명 초과지분(2.26%)에 대한 의결권을 메우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있을 때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겨 의결권을 확대할 수 있다.
한편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해 삼성전자 지분 매입에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어차피 금산법 개정안 시행으로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3.34% 중 8.34%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 주식 총수 20만 주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8.34%는 1만 6680주다. 현재 삼성생명 장외거래가 56만 원으로 환산해보면 8.34%는 93억 원 정도가 된다. 삼성전자 지분의 극히 미미한 양밖에 살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러나 삼성생명 상장 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증시전문가들은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주가가 100만 원 이상으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장 후 지분을 처분하면 더 많은 삼성전자 지분 매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삼성그룹 순환지배구조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에버랜드가 삼성전자 지분을 추가 확보하는 것은 삼성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개인주주로 참여 중인 이건희 회장 일가가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는 점이 삼성그룹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반 삼성 정서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 총수일가가 또 다른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삼성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일이다.
일각에선 삼성생명과 마찬가지로 비상장 계열사였다가 얼마 전 상장된 인터넷 통신 교육 업체 크레듀에 주목하기도 한다. 지난 11월 14일 상장 당시 크레듀 공모가는 2만 4000원이었다. 이 종목은 ‘삼성 계열사’라는 특수를 타고 12월 28일 종가기준 4만 6200원을 기록 중이다. 크레듀의 지분구조상 최대주주는 제일기획(26.65%)이며 삼성에버랜드(8.88%) 삼성경제연구소(10.66%) 삼성SDS(7.11%) 등 삼성 주요 계열사들이 대주주 명단에 올라있다.
재벌들은 비상장계열사 지분을 ‘싼 가격’에 확보한 뒤 물량을 몰아줘 기업 가치를 높이고 나서 해당 계열사를 상장시켜 주가 폭등을 부르는 방법을 종종 사용해왔다. 금싸라기가 된 해당 지분을 팔아 주요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 승계를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 사례처럼 삼성그룹 또한 앞서 거론한 삼성생명이나 크레듀를 삼성전자 같은 핵심 계열사 지분 확보에 사용할 수도 있는 셈이다.
재계에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는 주요 그룹은 삼성 외에도 현대차그룹, 동부그룹, 한화그룹, 동양그룹, 동원그룹 등이 있다. 금산법 개정 과정에 삼성이 앞장서서 ‘관심’을 표명했지만 이들 역시 금융계열사의 지배구조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셈이다. 때문에 이들 역시 삼성 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으로 보여 삼성이 어떤 방법으로 개정 금산법에 대응할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