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 광복절에 개봉…‘행복의 나라’ ‘빅토리’ 등 대작들과 맞붙어 고전 예상
가수 김흥국이 국회에서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 시사회를 마치고 외친 말이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30여 명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약 500명이 모였다.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한 김흥국은 이날 시사회에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박정희, 육영수 두 분의 전쟁 같은 사랑을 통해 근대 한국사가 온전하게 재조명될 것으로 믿는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김흥국이 갑자기 영화 제작자가 됐다. 8월 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은 김흥국이 기획과 제작, 배급 등을 모두 맡은 작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야기를 재연한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한 한국전쟁 당시를 거쳐 산업화가 이뤄진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한마디로 박정희‧육영수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우파 보수층 집결을 유도하는 영화다.
그동안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등 보수층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꾸준히 제작됐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이 직접 나서서 제작을 주도한 작품은 처음이다. 대중에는 콧수염을 달고 ‘들이대!’를 외치는 해병대 출신 가수로 익숙한 김흥국이 느닷없이 박정희 영화의 제작자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 우파 보수를 지향하는 정치 성향이 바탕이 됐지만, 그를 움직이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2월 개봉해 117만 명을 동원한 다큐영화 ‘건국전쟁’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묘사한 작품으로 보수층 집결에 힘입어 100만 흥행을 일군 화제작이다.
#김흥국, 갑자기 박정희 영화 만드는 이유
김흥국은 보수 집권당의 강성 지지자로 유명하다.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보수 정당의 편에 서서 공개 유세에 동참하고 있다.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도와 국민의힘 소속 출마 후보들을 적극 지원했다. 그 활동을 인정받아 6월 국민의힘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총선 직후에는 한동훈 대표와 따로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등 여권 인사들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있다.
보통 연예인들은 특정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정치 성향을 밝히는 걸 극도로 꺼리지만 김흥국은 다르다. 오히려 ‘감추는 게 더 이상하다’는 주의다.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방송 활동에 불이익을 받기도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목소리를 낸다. 실제로 김흥국은 2011년 4월 재보궐 선거 격전지였던 경기도 분당을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의 선거운동을 벌여, 당시 진행하던 MBC 라디오 ‘두시 만세’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김흥국이 일신상의 이유로 하차한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김흥국은 자신의 정치 활동이 문제가 됐다면서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다.
정치 참여가 늘면 늘수록 방송 출연 횟수는 줄어들지만 김흥국은 ‘연예인들도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는 데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과거 라디오 하차 당시에도 “대중예술인에 대한 근본적인 경시와 매도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선거운동 참여 등 정치 활동을 문제 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쳤다. 스스로 “보수 우파 연예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김흥국의 이런 행보를 고려하면 영화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의 제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영화의 제작 역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김흥국은 3월 열린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건국전쟁’을 보고 많이 울었다”며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존경했다. 그런데 생각은 했지만 감히 두 분을 영화로 제작한다는 생각까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흥.픽쳐스’라는 이름의 제작사를 설립하고 윤희성 감독과 작업에 돌입했다.
김흥국은 “윤희성 감독은 오랫동안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공부하면서 자료를 수집했다”며 “이번 영화를 통해 두 분에 대해 몰랐던 비화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전폭적인 믿음에도, 사실 윤희성 감독은 영화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영화인들의 데이터베이스에도 경력 사항이 등록되지 않았고,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서도 영화나 방송 관련 경력을 찾을 수 없어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다.
#8월 15일 개봉 보수층 집결할까
김흥국은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어떻게 만나 부부가 됐는지 집중적으로 그린다. 4월 첫 촬영을 시작한 장소가 강원도 정선인 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실제로 박정희 부부가 한국전쟁 도중 2주간 머물렀던 정선 산골의 민가를 찾아내 촬영을 진행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이후 문경과 구미, 김천, 울릉도 등에서 총 76일간 촬영을 이어갔다.
이렇게 완성된 영화는 실제 기록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70%를 채우고 나머지 30%는 배우들의 재연으로 당시 상황을 극화했다. 상영시간은 120분으로, 배우 고두심과 현석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김흥국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해방정국의 역사를 바로 알리겠다”고 포부를 다지고 있다.
‘그리고 목련이 필 때면’은 타깃이 분명한 작품이다. 영화의 기획부터 완성까지 보수 진영을 겨냥한 정치색이 확실하다. 특히 완성된 영화를 처음 공개한 자리가 국회라는 사실 역시 보수층을 흡수하려는 전략을 짐작하게 한다. 심지어 개봉일을 광복절인 8월 15일로 정한 사실에서도 제작진의 ‘의도’가 느껴진다.
다만 영화가 보수층 관객을 넘어 누가 봐도 만족할 만한 완성도를 갖췄는지에는 의구심이 있다. 제작자인 김흥국은 물론 연출을 맡은 윤희성 감독 역시 개봉 영화를 만든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보수층 결집을 이뤄 100만 관객을 동원한 ‘건국전쟁’의 경우 극의 메시지가 역사 왜곡 등 논란을 일으킨 것과 별개로 만듦새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00만 관객을 모을 수 있던 힘이다.
개봉 직후의 상황도 고전이 예상된다. 영화가 개봉하는 하루 전날인 8월 14일에 ‘행복의 나라’와 ‘빅토리’ 등 한국영화부터 ‘트위스터스’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무려 4편의 기대작이 동시에 개봉한다. 영화들 모두 상영관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그 치열한 틈에서 우파 보수층을 겨냥한 박정희 영화가 출격한다. 보수 지지층의 단체관람을 유도해 상영을 꾸준히 이어갈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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