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은 감독이 김선형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KBL |
# 스타 출신 감독의 ‘독한’ 변신
▲ 문경은 감독. 사진제공=KBL |
그러나 문경은 감독은 시즌 개막과 함께 평가를 뒤집었다. SK는 달라져 있었다. 개막전 패배 이후 5연승에 이어 다시 연패 없이 4연승을 달리며 9승2패로 당당히 가장 높은 순위에 SK를 올려놨다. 두 차례 패배도 4점차 이내의 아쉬운 승부였다. 그만큼 팀의 조직력은 안정돼 있었고, 무서운 팀으로 탈바꿈했다.
SK가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형님’이 잔뜩 독을 품어서다. ‘순둥이’로 유명한 문경은 감독이 독하게 변했다. SK의 흐트러진 문화부터 바꿨다. SK는 자유분방하기로 소문난 구단이다. 모래알 조직력의 근원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문경은 감독이 올 시즌 가장 먼저 바꾼 것도 ‘자유’ 박탈이다. 문 감독은 규칙을 정해 놨다.
SK 선수들은 오전 7시만 되면 무조건 코트로 나와 자유투를 쏴야 한다. 무려 100개. 신인부터 최고참까지 예외는 없다. 자유투를 쏘지 않으면 아침밥도 먹을 수 없다. 오전 훈련 이후에는 다같이 모여 아침을 먹는다.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으며 대화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다. 문 감독은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한 SK의 전통적인 문화로 만들 생각이다. 아침부터 얼굴을 보고 웃어야 팀워크가 생긴다”는 지론을 펼쳤다.
또 코트에서 뛰는 누구도 열정을 다하지 않으면 바로 벤치행이다.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져도 마찬가지다. 문 감독은 베테랑 가드 주희정을 식스맨으로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불만은 터져 나오지 않고 있다. 주희정도 코트에 있는 시간 최선을 다해 뛴다. 달라진 모습이다. 감독과 선수간 신뢰가 쌓인 덕분이다. 문 감독은 “코트에서는 선후배가 없다. 만약에 코트에서 딴짓을 하면 누구라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문 감독이 독하게만 변한 것은 아니다. 선수들에게는 여전히 따뜻한 형님이다. 선수들과 개인 면담을 수시로 하면서 애로사항을 듣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독설보다 칭찬으로 다독인다. 감독 생활 1년 만에 ‘밀당(밀고 당기는 기술)’의 귀재가 됐다.
단지 리더십뿐이 아니다. 문 감독은 파격적인 전술도 들고 나왔다. 사실상 모험에 가깝다. SK는 ‘1가드 4포워드’라는 극단적인 전술을 구사한다. 김선형을 포인트가드로 전환시키고 박상오, 김민수, 최부경, 애런 헤인즈를 포진시켰다. 개인기가 탁월한 김선형과 장신 포워드들이 뒤를 받치는 구조는 올 시즌 폐지된 수비자 3초룰의 이점을 살리는 기가 막힌 전술이었다. 수비에서도 지난 시즌까지 원주 동부와 안양 KGC인삼공사가 재미를 봤던 ‘드롭 존’을 접목시켰다. 문 감독은 “우리는 비시즌 동안 혹독하게 그것만 훈련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문경은 감독의 변화 효과는 코트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신뢰감이 쌓인 SK의 조직력은 마치 찰흙처럼 끈적끈적해졌고, 패배 의식을 벗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타 팀 감독들도 “무섭게 덤비는 SK 같은 팀이 가장 무섭다”며 이미 겁을 먹기 시작했다.
# 야전사령관으로 돌아온 김선형
▲ 김선형. 사진제공=KBL |
김선형은 포인트가드 과도기다. 외곽슛과 돌파 능력이 뛰어난 김선형의 최대 강점은 폭발적인 득점력이다. 그러나 올 시즌 포인트가드를 맡으면서 개인 기록은 줄었다. 지난 시즌 평균 득점 14.9점이었지만, 올 시즌 11경기 평균 득점은 10.7점에 불과하다. 어시스트도 지난 시즌 평균 3.5개에서 4.1개로 크게 늘지는 않았다. 김선형은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는 단계다. 개인 득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팀 성적이 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손해라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은 나보다 득점을 해줄 선수들이 워낙 많아 동료를 살리며 리딩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김선형의 포인트가드 역할은 아직 미완성이다. 소속팀 베테랑 가드 주희정과 비교해도 안정감이 떨어진다. 공격형 가드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진 못한 상황이다. 아직 포인트가드로서 김선형을 평가하긴 이르다. 문 감독이 말한 시즌 전체를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김선형이 야전사령관을 맡으면서 팀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일종의 ‘해피 바이러스’다. 울산 모비스 가드 양동근은 “김선형에게는 뭔가가 있다. 같이 있으면 웃음을 준다. 대표팀에 함께 있을 때 그랬다. 지금의 SK도 아마 그런 영향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형은 아직 이팔청춘이다. 의욕이 넘치고 꿈도 많은 어린 선수다. 워낙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데다 끼도 넘친다. 선후배 할 것 없이 붙임성도 좋아 팀의 융화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선형은 “사실 포인트가드를 맡으면서 부담도 많았는데 형들도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시고 다른 후배나 동료들도 잘 따라줘 부담을 털고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선수들 사이에서 끈끈한 신뢰도 엄청나게 생겼다”고 싱글벙글 했다.
SK는 시즌 첫 10경기서 8할 승률을 기록했다. 99-00시즌에 이어 팀 역사상 두 번째다. 당시 SK는 정규리그 2위에 이어 팀 창단 이후 유일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총 16차례 10경기 8할 승률을 기록한 팀은 100%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냈다. SK는 8일 현재 승률 0.818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 SK는 모래성이 아닌 13년 만에 금자탑을 쌓을 기세로 들떠 있다. 그 중심에는 2년차 징크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린 문경은 감독과 김선형의 호흡이 숨쉬고 있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