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성펀드 공세에 이어 이번엔 도덕성 논란에 휘말린 이호진 태광 회장. | ||
지분 매집을 주도한 한국도서보급 김남태 대표가 불구속 기소됐지만 이호진 회장 부자에 대해 수사당국은 ‘오너일가의 불법 행위는 입증되지 않았다’며 처벌 계획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불법 매집을 통해 지분을 불린 주체가 결국 이 회장 아들이었다는 점에서 태광 총수부자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월급쟁이 사장이 누구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겠냐는 것이다. 장하성 펀드의 공세로 한동안 기업 구조 투명성 논란에 시달렸던 태광과 이호진 회장이 상품권 업체 논란으로 인해 또 다른 암초를 만난 셈이다.
한국도서보급 김남태 대표에 대한 기소 사유는 ‘그룹 계열사 지시를 받고 한국도서보급 소액주주의 주식 거래를 주선하면서 회사 협찬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대한화섬 박명석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라 김 대표는 영풍문고가 보유한 한국도서보급 주식 2000주를 주당 1만 6600원에 거둬들였고 그 대가로 도서문화상품권 3332만 원어치를 협찬비 형식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분들은 이 회장 아들의 몫이 됐다.
이번 지분 매집을 담당한 김 대표가 기소된 상태에서 ‘그룹 계열사의 지시를 받았다’는 점이 논란을 낳고 있다. 과연 지시의 최종 주체가 박명석 대표일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번 거래를 통해 지분을 획득한 주체가 이 회장의 아들이란 점에서 이 회장이 이번 매집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
이 회장 아들이 이번에 추가로 획득한 한국도서보급 지분은 8%다. 이 회장 아들은 종전의 37%에 더해 한국도서보급 지분율을 45%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최대주주는 50%를 보유한 이호진 회장으로 이호진 회장 부자가 이 회사 지분 95%를 차지하고 있다.
중학생으로 알려진 이 회장 아들이 보유한 한국도서보급 주식은 총 9만 주다. 이번 지분 매입 거래가격 1만 6600원으로 환산하면 이 회장 아들이 지닌 지분의 평가총액은 15억 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한국도서보급 외에 이 회장 아들이 대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린 계열사로는 태광시스템즈가 있다. 이 회장 아들은 태광시스템즈 지분 49%(이호진 회장이 지분율 51%로 최대주주)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 이 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던 태광시스템즈는 지난해 9월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주식 총수가 종전의 1만 주에서 6만 주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실권을 해 지분율이 100%에서 51%로 줄고 이 회장 아들이 49%를 차지해 대주주 명부에 새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태광 측은 “한국도서보급의 경우 지분이 불법으로 증여된 것이 아닌데 총수일가가 지분을 획득했다는 것 때문에 ‘편법 증여’로 오해하는 시선이 있다”고 밝힌다. ‘편법 획득’은 맞지만 이호진 회장이 갖고 있던 한국도서보급 지분을 이 회장 아들이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던 지분을 이 회장 아들이 획득한 것이므로 ‘증여’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한국도서보급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수개월 동안 진행돼 온 점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이번 편법 지분 매입은 한국도서보급이 상품권을 사행성 게임장에 공급해 거둬들인 수익 653억 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바다이야기’파문이 불거지면서 상품권을 통해 거액을 벌어들인 업체들, 그리고 이들과 정·관계 실력자들이 맺은 유착관계에 시선이 쏠리면서 한국도서보급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상품권 발행 1위 업체인 한국도서보급의 전직 이사들이 국회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 여러 명에게 후원금을 냈던 것이 드러나 화제에 올랐던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이번 지분 매집 실무과정을 처리한 김남태 한국도서보급 대표가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향후 김 대표 재판과정에서 이 회장을 식겁하게 할 돌출변수가 불거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에 대해 태광 측은 “이번 검찰 조사는 한국도서보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다이야기 파문 이후 상품권 업체들 전체를 상대로 해온 것”이라고 역설한다. 검찰의 이번 발표가 ‘태광그룹을 겨냥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 한국도서보급은 태광그룹의 돈줄로 회자되기도 한다. 상품권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 돈 중 수백 억 원을 계열사들에 대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광이 최근 들어 인수한 유선방송사들 중 경영실적이 부진한 업체들의 공시내역을 보면 한국도서보급이 연 7~9%로 수십 억 원을 대출해준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부 인사들이 ‘태광그룹의 신흥 돈줄’로 보는 한국도서보급의 지분을 이 회장의 중학생 아들이 집중매집하는 것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시각에 태광 측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 반박한다. 태광 측 인사는 “태광그룹이 매년 3조 원 이상 매출실적으로 올리고 자산규모만 해도 8조 원 규모인데 1년에 수백 억 원 굴리는 업체(한국도서보급)를 두고 돈줄이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역설했다. 이 회장 아들의 지분 매집에 대해서도 태광 측 인사는 “원래 40%에 가까운 한국도서보급 지분을 갖고 있던 대주주였는데 이번에 8% 늘린 것 가지고 집중 매집 운운하는 것은 어색하다”고 덧붙였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