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피해자 부모도 가해자 부모도 될 수 있어…한쪽은 강력 처벌 원하고 한쪽은 처벌 회피 시도
따라서 학부모들도 누구나 피해자 부모나 가해자 부모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 부모가, 또 다른 누군가는 딥페이크 성범죄자가 된 자녀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가해자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종 강력범죄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 가장 먼저 처벌 수위를 끌어 올리는 방식의 대응이 나온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8월 29일 오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부처 긴급 현안보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현행 징역 5년의 처벌을 7년으로 강화하는 식으로 입법적 조치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한다”고 밝혔다.
8월 28일 교육부는 17개 시도교육청을 통해 파악한 2024년 1월 1일부터 8월 27일까지 학생·교원 딥페이크 피해 건수가 총 196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학생 피해 186건, 교원 피해 10건이었다. 학생 피해의 경우 초등학교 8건, 중학교 100건, 고등학교 78명이었고 교원 피해는 초등학교 0건, 중학교 9건, 고등학교 1건이었다. 예상 외로 고등학교보다 중학교에서 피해건수가 더 많았다.
이날 교육부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학교 딥페이크 대응 브리핑’에서 김도형 교육부 학교폭력대책과장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서는 지속성, 고의성, 피해의 크기, 피해 회복 여부 등을 본다”라며 “딥페이크 특성상 아주 고의적이고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아 처벌 수위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학폭위 조치 가운데 가장 높은 9호(퇴학)까지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중학교에서는 9호(퇴학) 조치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인 까닭에 최고 조치가 8호(전학)다. 따라서 가해자가 고등학생이면 퇴학 조치가, 중학생이면 강제 전학 조치가 나올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피해 사례가 나왔다. 이렇게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을 아우르는 10대 초중반에서 대거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가 나올 경우 촉법소년 논란이 다시 대두될 수 있다. 촉법소년은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으로 형사책임 능력이 없어 범죄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고 보호처분 대상이 된다. 만 14세 미만이면 생일이 지나지 않은 중학교 2학년 학생까지 포함된다. 사건의 특성상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 가운데에는 촉법소년이 꽤 포함돼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법무부장관 시절인 2022년 6월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를 언급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그거(딥페이크 성범죄) 하는 분들 중, 혹시 하고 싶어 하는 분들 중에서 촉법소년 연령에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며 “지난 국회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같은 국민 여망이 큰 제도도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까지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해 긍정적이던 여론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10대를 중심으로 딥페이크 성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가해 학생의 가족과 지인들이 반대 의견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로 여겨지던 촉법소년이 갑자기 급증할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된 여파다. 게다가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가 엉뚱하게 젠더갈등으로 비화하려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촉법소년 관련 논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처벌 강화, 학폭위 조치 수위, 촉법소년 문제보다 더 시급한 부분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기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 ‘허위영상물(딥페이크 영상물 등)의 반포 범죄와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 범죄 등’을 추가했지만 양형 기준은 매우 낮다.
우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2에는 허위 영상물을 편집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반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영리 목적으로 반포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양형 기준은 편집한 자와 반포한 자는 징역 6월~1년 6월, 영리 목적으로 반포한 자는 1년~2년 6월이다. 그나마도 심신미약,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 등의 감경요소까지 반영하면 편집과 반포는 징역 8월로 감경이 가능하고, 영리 목적의 반포는 징역 4월~1년 4월로 감경이 가능하다.
실제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공범 박 아무개 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유랑 부장판사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은 징역 10년이었다. 박 씨는 상습허위영상물편집·반포 등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2에 따라 징역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데 상습이라 7년 6월로 1.5배 형량이 늘어나고 경합법가중을 적용해 다시 1.5배를 하면 최대 11년 3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양형 기준에 따르면 ‘기본’으로는 최대 3년 4월 15일에 불과하며 ‘가중’(10월~2년 6월)으로 보면 최대 6년 5월 15일까지 선고할 수 있다. 따라서 재판부가 ‘기본’ 양형기준보다는 높은 ‘가중’ 양형기준(1년 10월 5일~6년 5월 15일)에서도 비교적 높은 양형으로 선고했다고 보인다. 이런 까닭에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양형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기관의 수사 의지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10대인 경우 부모 등 가족이 보호자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피해자 부모가 가해자의 강력한 사법 처벌을 요구하며 피해자 보호에 집중한다면 가해자 부모는 최대한 사법처벌을 피하거나 약화시키려 시도하게 된다. 10대 가해자 부모가 딥페이크 성범죄 흔적을 지으려 디지털장의사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기관의 역할이 중요한데 여전히 구멍이 많다. 뉴스1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의 한 중학교에서 2학년 남학생이 또래 여학생 대상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했다가 적발됐다. 경찰 신고가 이뤄져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8월 20일 해당 중학생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 제작) 혐의로 수원지검에 불구속 송치했는데, 그 직전에 해당 중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외 이민을 떠나 버렸다.
이미 해외 이민이 예정된 상황이었음을 인지한 피해자 부모가 거듭 출국금지를 요청해 어렵게 출국금지가 이뤄졌지만 기간이 한 달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뒤 가해 중학생과 부모는 해외로 출국했다.
경찰은 뉴스1에 가해자가 모든 조사를 마쳤고 부모와 법률대리인이 향후 검찰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출석하겠다고 약속한 데다 미성년자라 출국금지 연장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가해 중학생의 부모는 경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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