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후보(왼쪽)와 문재인 후보가 6일 백범기념관에서 전격 회동을 가졌으나 이후 안 후보 측의 협상 중단으로 단일화 작업이 파행을 겪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
“오늘 단일화와 관련된 중대한 여론조사가 실시됩니다. 필히 응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론조사 대비해 외출 시 집 전화 착신해주세요” “오늘 문캠프 회의결과 요약. 목표제시. 카톡플러스100만.”
야권 단일화를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다시 한 번 조직동원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과정에서의 지역구 경선, 6월 모바일 국민참여경선을 통한 당 대표 선출 때 이미 조직동원으로 민심이 왜곡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데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그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조직력이 거의 전무한 안철수 캠프로서는 문 후보의 ‘조직동원’은 일종의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느낄 만큼 민감한 문제다.
안 캠프 측은 문재인 후보의 시민캠프 측에서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 응대를 독려하는 수준을 넘어 착신 전환까지 요하는 문자메시지까지 돌리자 거의 ‘멘붕’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급기야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시민캠프 측은 “캠프 차원에서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니라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문 후보 지지메시지를 보낸 것이다”라고 해명했지만 안 캠프 측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안 캠프 측 자문을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두 후보 간 여론조사가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만큼 민주통합당 조직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최근 휴대폰을 통한 여론조사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카톡플러스(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서 불특정 다수와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 현재 두 후보 모두 이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음) 역시 조직동원의 도구로 충분히 활용될 소지가 있다”라고 전했다.
▲ 손을 모은 두 후보 측 단일화 방식 협상팀. 왼쪽부터 안 후보 측 이태규 미래기획실장, 금태섭 상황실장, 조광희 비서실장, 문 후보측 박영선 공동선대위원장, 윤호중 전략기획실장, 김기식 미래캠프지원단장. 공동취재단 |
대표적인 곳이 서울 관악을 경선이다. 당시 18대 관악을 현역인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에 맞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공동대표 측은 단일화 여론조사 전날 전화 25대를 새로 개설한 뒤 12대를 제3자의 휴대폰으로 착신 전환시켰다. 이 중 여론조사에서 10명이 응답에 성공했다. 선거법상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임시전화를 대량 개설한 뒤 제3자 휴대폰으로의 착신 전환’은 사실상 조직을 동원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결국 ARS 여론조사 경선에서 이정희 전 대표는 김희철 의원을 94표 차이로 꺾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됐지만 이 전 대표의 보좌관이 여론조사 조작을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되면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를 대선판으로 확대할 경우에도 민주당 조직력이 무소속 후보와의 여론조사 대결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조직을 동원해 대규모 인원이 착신전환을 할 경우 오차범위 내 개입을 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민주당 전략팀이 전국 조직을 총 동원해 50만~100만 명을 목표로 집전화 착발신 전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여론조사를 할 때 보통 10콜당 1콜 정도의 응답률을 보이는데 이는 모두 집전화를 상대로 했을 때 얘기다. 하지만 대규모 인원이 집전화 착발신을 해놨을 경우 응답률이 크게 오를 수 있다. 착발신 전환을 50만 명 정도가 모두 완료했을 경우 7~8%포인트의 지지율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자체 조사됐다. 이는 조직원들이 대거 착발신 동원에 실제 참여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확률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조사분석사 송 아무개 씨(30)는 이에 대해 “극단적으로 민주당원 10만 명이 조직적 착신 전환으로 조사방식에 관계없이 무조건 응답할 경우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2% 정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송 씨는 “모집단 1000명에 응답률 10%인 여론조사에 10만 명이 동원됐다고 가정해 보자. 유권자 4000만 명 중 10만 명이니 전화 받을 확률은 1/400. 나머지 399/400인 사람들은 응답률이 10%이기 때문에 결국 모집단 1000명 안에는 약 1:39.9의 비율로 동원된 이들이 포함될 수 있다. 문 후보의 지지율을 20%라고 가정하면 (1+7.98)/40.9=0.22, 즉 22%까지 올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의 차이가 4.6%P였으니 민주당에서 20만 명 이상만 동원한다면 충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다.
사실 이런 민주당의 조직동원 가능성 때문에 안 후보 측은 ‘정당의 조직력 남용을 막는 대책’이 있어야 공정경선이 담보된다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여론조사 종사자들은 총선이 아닌 대선에서의 조직동원은 “현실성이 부족한 허수”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는 “지역구 단위 여론조사라면 조직동원은 분명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전국 규모의 여론조사에서 동원이란 사실상 영향력이 없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을 많이 잡아 200만 명이라고 보더라도 총 유권자 4000만 명의 1/20 수준밖에 안 된다. 여론조사로 1만 명을 조사한다고 했을 경우, 응답률을 최고 20%까지 잡아도 ‘동원된’ 민주당원이 단일화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확률은 1000명에 1명 내지 2명 수준이다”라며 “각 여론조사기관에서 RDD 방식을 충실하게 적용한다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당의 조직이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조사 시기가 이미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민주당 조직원 50만~100만 명이 동원된다면 조사의 객관성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1%P 차만 돼도 박빙의 단일화 승부에서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 측에서는 “안 캠프 측이 실제 동원능력 여부가 검증이 안 된 사안에 대해 꼬투리를 잡는 식으로 문제점을 계속 부각시킬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펴고 있다. 문재인 시민캠프의 한 상근자는 이에 대해 “안 후보가 민주당이 선거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론조사 참여를 독려하는 것을 왜 걸고넘어지는지 모르겠다. 안 후보 역시 전국에 수많은 지지 모임이 생기지 않았나. 결국 둘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되는 일이다. 조직동원 문제제기가 단일화 파기보다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친노 성향의 민주통합당 한 초선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후보 측 조직동원 지적에 관해)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야권에서 정권교체와 함께 현 정권에 대한 성찰이 이어져야 하는 판국에 엉뚱한 이슈를 거론하니 답답할 따름이다”라고 전했다.
결국 민주통합당의 조직동원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두 캠프의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어느 쪽도 실익이 없는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지금 야권에서 서로 무의미한 토끼몰이를 지속하는 상황”이라며 “실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조직동원)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 결국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먼저 빠지고 나중에 문재인 후보 지지율도 빠지게 되면서 공멸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대체 누굴 역선택할 건데요?
안철수 캠프 측은 이번 민주통합당 조직동원 문제를 제기하기 전 여론조사의 ‘역선택’ 문제도 지적한 바 있다. 안철수 캠프의 김성식 공동선대본부장, 금태섭 상황실장은 기자간담회와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상승 추세는 안철수 후보의 ‘본선 경쟁력’을 의식한 새누리당의 역선택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역선택 문제와 착신전환 문제를 제기된 시점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안철수 캠프의 ‘진심’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갤럽 장덕현 부장은 “여론조사를 직접 하는 입장으로써 역선택이라는 말 자체에 회의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장 부장은 “보수 진영에서 역선택을 해서 영향을 끼치려고 하더라도 중도층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 후보를 견제해야할지, 아니면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당에 소속돼 있고 지지율 상승 추세에 있는 문재인 후보를 견제해야 할지부터 이견이 나뉠 수 있을 것 아닌가”라며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그대로 봐야 한다. 야권 후보의 지지율이 갑자기 올랐다고 해서 이를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역선택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라고 전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