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6일 공판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지난해 4월 구속돼 두 달간 옥고를 치른 정 회장에 대한 2월 5일 선고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선고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가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나온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 국장이 얼마 전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정 회장 선고공판에 대한 이런저런 관측이 쏟아졌다.
앞서 검찰은 변 전 국장에게 ‘현대차로부터 200억 원 채무를 줄여주는 대가로 로비스트인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로부터 2억 원 뇌물을 받은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구형했었다. 변 전 국장 무죄 판결로 인해 로비스트로 지목된 김동훈 전 대표의 진술 신빙성 논란이 일어나면서 정몽구 회장 또한 그 ‘특수’를 얻을지 모른다는 관측도 제기된 바 있다. 징역 10년 구형을 받은 변 전 국장의 무죄판결은 징역 6년을 구형받은 정 회장 측에게 ‘적어도 집행유예 선고 정도는 받게 될 것’이란 기대를 품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차 사건 관련 인사들의 무죄판결이 정 회장에게 독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정몽구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2월 5일 현대차 관련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온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아 명암이 엇갈렸다. 정대근 회장은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285평을 66억 2000만 원에 현대차에 파는 대가로 현대차 김동진 부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지난해 8월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징역 7년, 추징금 3억 원 구형을 받은 바 있다.
이를 두고 ‘현대차 사건으로 구속된 변양호 정대근 두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정몽구 회장마저 가벼운 형량을 받으면 사법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론스타 관련 인사들 영장 기각 사태 등으로 검찰과 평행선을 달려온 법원이 검찰 내에서 지난해 최대 성과로 평가하는 현대차 사건의 주역 정몽구 회장을 솜방망이 처벌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평도 제기된다.
두산 총수일가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 삼성에버랜드 항소심 선고공판의 잦은 연기 등으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법원이 여론 환기 차원에서 정몽구 회장 측이 기대했을 법한 집행유예보다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은 지난해 재계와 법조계를 달궜던 ‘형평성 논란’의 재점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회사 돈 286억 원 횡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박용성-박용오 두산그룹 총수일가가 1심은 물론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박용성 전 회장은 이번 특별사면에도 포함돼 대형 경제사범 중 가장 짧은 시간에 형에서 벗어나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는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으며 이건희 삼성 회장 소환 또한 물 건너갔다는 관측마저 흘러나온다. 이들 재벌총수들과는 대조적으로 지난해 옥고까지 치른 정몽구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된 것은 형평성 논란을 재차 유발할 동기가 된다는 지적이다.
재계 일각에선 현대차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거론하기도 한다. 몇몇 재계 인사는 “현대차는 해외 영업 수익은 삼성전자에 뒤질지 몰라도 국내 중소업체들과 하청 등으로 생계형 관계를 맺고 있는 사례로만 치면 국내경제 기여도에서 삼성전자가 비할 바가 못 된다. 법원이 과연 경제적 파장을 고려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선 현대차가 삼성 두산에 비해 검찰·법원의 기류에 깊이있게 대응하지 못해 이 같은 결과를 불렀다는 이야기도 흘러 다닌다. 법원 내엔 삼성에버랜드 사건 주역으로 지목된 4인방(이건희 회장, 이재용 전무,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과 학연 등으로 맺어진 인사들이 수두룩하다고 알려진다. 두산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검찰 고위 인사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에 대해선 ‘현대차 변호인단과 법원 고위층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다른 재벌가와 대조를 이뤘다.
일각에선 법원 내 최근 상황 때문에 당초 집행유예가 기대됐던 정몽구 회장이 손해(?)를 봤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관련한 탈세 논란이나 석궁 테러 사건의 단초를 재판부가 제공했다는 일부 비판론 등이 법원의 재판봉을 무겁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선언 이후 상징적 판결이 필요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정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결국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가 이번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게 되면 항소심 선고공판은 아무리 서둘러도 올해 중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엔 정·관·재계는 물론 모든 여론이 대선 정국의 소용돌이에 빠져있을 것이 자명하다. 지난해 옥고까지 치렀고 1심에서 다른 재벌가에 비해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은 정 회장이 설사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등의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여론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재판부가 정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지만 법정구속은 면하게 해 준 점도 이미 옥고를 치른 정 회장에 대한 배려(?)라 보는 시각도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