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선임 과정 하자 있다” 결론 불구 협회 꿈쩍 안해…최종 발표엔 ‘축구협 마이너스 통장 개설’ 내용 공론화 전망
문체부는 10월 2일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감독을 선임한 케이스를 분석한 결과, 규정과 절차가 모두 위반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선임 절차 문제점이 특정됐음에도 문체부는 대한축구협회와 홍 감독이 체결한 계약을 무효화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발견했지만,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는 묘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문체부 특정감사 최종 결론은 10월 말 공개될 예정이다. 문체부는 중간결과 발표를 통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감독 선임 이슈에 대한 특정감사 내용을 먼저 공개했다.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축구협회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했다고 했다”면서 “그러나 특정감사 결과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부적정한 감독 선임 문제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문체부 특정감사 중간발표 결과에 따르면, 2024 AFC 아시안컵 이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선임할 당시엔 전력강화위원회가 무력화됐던 점이 확인됐다. 최종 감독 후보자 2명에 대한 최종 면접을 전력강화위원장이 아니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직접 진행한 점도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사회를 통한 감독 선임 절차도 누락됐다.
대한축구협회 축구국가대표팀 운영규정 제12조에 따르면 국가대표 감독은 전력강화위원회 추천으로 이사회에서 의결한다. 그런대 대한축구협회는 전력강화위원회가 소집도 되기 전에 에이전트를 선임했고, 후보자 20여 명을 추려 접촉했다. 처음부터 전력강화위원회가 무력화된 셈이다.
전력강화위원회 위원들은 2023년 1월 15일 열린 제1차 전력강화위원회에서 마이클 뮐러(독일) 전력강화위원장에게 감독 선임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전력강화위원장은 클린스만 전 감독을 비롯한 5명을 추렸고, 2023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뮐러 위원장 단독으로 1차 온라인 면접이 진행됐다.
2차 온라인 면접은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이 직접 진행했다. 2배수로 추린 최종 후보자를 면접한 뒤 대한축구협회는 2월 7일 2차 전력강화위원회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을 통보했다. 대한축구협회 이사회는 그 어떤 과정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사회는 사실상 패싱된 채 감독 선임이 진행됐다.
홍명보 감독을 선임할 때엔 전력강화위원회가 무려 11차례나 열렸다. 2024년 2월 21일부터 4월 30일까지 1~6차 전력강화위원회가 열렸다. 1~2순위 후보자와 협상이 모두 결렬되면서 6차례 전력강화위원회가 모두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감독 선임 과정을 총괄했다.
이 기간 동안 대한축구협회는 황선홍 당시 U-23 대표팀 감독을 감독 대행으로 활용했다. 황 감독은 3월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2연전과 2024 파리올림픽 예선을 겸하는 2024 AFC U-23 아시안컵 구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황 감독은 대표팀 감독대행을 맡으며 태국과 2연전서 1승 1무를 거두며 월드컵 3차예선 진출엔 성공했다. 그러나 4월 열린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신태용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U-23 대표팀에 덜미를 잡히며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황 감독이 U-23 대표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여건이 올림픽 진출 실패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 불발 후폭풍 속에서 대한축구협회는 5월 20일부터 6월 21일까지 제7~10차 전력강화위원회를 개최했다. 감독 선임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대한축구협회는 임시 감독 체제로 A매치를 치렀다. 김도훈 임시 감독이 선임돼 중국, 싱가포르 등과 2차 월드컵 예선을 마무리했다.
제10차 전력강화위원회에선 클린스만호 출범 때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감독 후보 추천 권한을 모두 전력강화위원장에게 위임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6월 28일 홍명보 감독을 1순위로 보고하며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6월 30일 제11차 전력강화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선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최종후보 3인을 면접한 뒤 전력강화위원장에게 결과를 보고하기로 논의했다. 7월 3일부터 5일 사이 이 이사가 감독 후보자 면접을 진행했다.
이임생 이사는 외국인 감독 후보자 2명을 면접한 뒤 귀국했다. 그 다음 행보는 ‘심야 빵집 회동’이었다. 이 이사는 빵집에서 홍 감독을 설득했다. 홍 감독은 7월 6일 감독직 수락 의사를 밝혔다.
7월 8일 이 이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홍명보 감독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 7월 10일~12일 대한축구협회 이사회는 재적이사 26명 중 23명이 참가한 가운데 21표 찬성, 1표 반대, 1표 정식 이사회 회부 요청이라는 결과에 따라 홍 감독 선임 안건을 최종 의결했다. 이사회 이사 중 일부는 ‘이사회 서면결의가 단순 요식행위에 가까운 가부 판정으로 의견을 낸다는 것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7월 15일 홍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문체부 특정감사는 대한축구협회가 홍 감독 선임 이후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고 했다. ‘심야 빵집 회동’ 당사자인 이 이사가 감독 추천 최종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고 밝혀냈다. 6월 30일 대한축구협회 임시회의가 감독 선임 권한을 특정인에게 위임할 수 있는 정식 회의로 인정할 아무런 규정상 근거가 없다는 취지다.
대한축구협회는 특정감사 지적사항과 관련한 답변서를 통해 “‘클린스만 감독 이사회 선임 절차 누락’ 사항을 제외하고는 감사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체부 특정감사 중간결과 발표 브리핑을 담당한 최현준 문체부 감사관은 홍 감독 선임 절차가 법적으로 무효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선임 과정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해서 홍 감독과 계약이 무효라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답했다.
최 감사관은 “홍 감독 선임 과정서 절차적 하자가 발생했고 국민들 비판 여론이 크다”면서도 “우리가 특정한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는 독립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전문적인 분야”라면서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검토해 국민 여론과 상식,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정감사 중간결과가 발표되기 이틀 전 해당 내용을 먼저 보고받았다. 9월 30일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 브리핑에 따르면 9월 30일 윤 대통령은 유인촌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 감독 선발 관련 감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여러 의혹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확실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유 장관에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이 돼야 한다”면서 “특히 국민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팀 사령탑인 감독 선발은 과정부터 공정하고 책임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통령과 문체부가 강력한 진상조사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가운데, 대한축구협회가 반박논리를 지속 펼치는 것을 놓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여권 한 관계자는 “과거 스포츠 종목단체들은 대통령이 ‘눈빛’만 쏴도 문제점을 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면서 “그런데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 절차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진상조사를 직접적으로 촉구하고 문체부가 조사를 하고 있음에도 대한축구협회가 반박 논리를 지속해서 내세우고 있다. 상당히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율이 낮으니 대한축구협회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면서 “진상조사가 확실한 특정 조치로 이어진다면, 간단하게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사안인데 정부까지도 형식적인 감사로 논란을 마무리한다면 논란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야권 한 관계자도 “현재 대한축구협회 감독 선임 절차와 관련한 논란엔 여야가 없다”면서 “감독 선임 절차 불공정성을 밝혀내고, 해묵은 축구협회 졸속행정 실태를 보다 확실하게 공론화하고 조치도 확실하게 취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대한축구협회가 배짱 일변도로 나가고 있는 행태 자체가 현 정권 레임덕 시그널 중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고도 본다”고 했다.
문체부는 10월 말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결과엔 감독 선임 과정 절차적 문제뿐 아니라, 천안 축구종합센터 건립, 지도자 자격 관리 등 사안에 대한 감사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클린스만 전 감독 위약금 및 천안 축구종합센터 건립을 목적으로 대한축구협회가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한 일련의 과정도 공론화될 전망이다.
최종 발표에선 감사 결과에 따른 처분 요구(징계 등 사안) 관련 내용이 공식적으로 공표될 전망이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대한축구협회와 관련한 수사의뢰 여부 및 행정 조치 등이 공식화될 경우, 논란은 새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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