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21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추도식에서 정상영 KCC 명예회장(왼쪽)과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분향하고 있다. | ||
현대중공업 계열인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1월 16일부터 1월 22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KCC 주식 52만 6000주를 사들였다. 취득 단가는 주당 26만~28만 원대로 다섯 차례에 걸쳐 52만 6000주 를 매집했는데 현대삼호중공업이 쏟아부은 돈은 1400억 원을 웃돈다. 이로써 현대삼호중공업은 KCC 지분 7.63%를 보유하게 됐다. 현대중공업 계열이자 현대삼호중공업이 최대주주인 현대미포조선이 KCC 지분이 3.78%를 갖고 있으므로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닌 KCC 지분은 총 11.41%가 된 셈이다. 종전 6.41%에서 5% 늘어난 수치. 이는 정 명예회장 장남이자 KCC 최대주주인 정몽진 회장의 17.71%에는 못 미치지만 개인 2대주주인 정 명예회장(10%)보다는 높은 수치다.
KCC도 현대중공업 지분 8.15%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의 이번 지분 매입으로 KCC-현대중공업 양측의 지분 교류 폭이 더 넓어진 셈이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KCC 지분 매입이 시세보다 다소 높게 이뤄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월 16일 현대삼호중공업이 KCC 지분 51만 2300주를 매입할 때 취득 단가는 주당 27만 4000원이다. 이날 시장에서 KCC 종가는 27만 3000원. 종가로 보면 시장 기준보다 1000원 비싸게 지분을 매입한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후 지분 매집에서도 나타난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올 1월 총 다섯 차례에 걸친 KCC 지분 매집에서 해당일 주가(종가 기준)보다 평균적으로 1000원 이상 비싸게 KCC 지분을 매입했다.
주당 1000원을 더 주고 주식 을 산 것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나 1월 16일~22일 사이 현대삼호중공업이 매집한 KCC 지분이 52만 6000주임을 생각하면 5억 2600만 원의 웃돈을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지분 매집은 KCC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CC 주가는 지난해 11월 중순 30만 원대에 잠시 올랐다가 하락세에 접어들어 1월 말 24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현대중공업그룹의 추가 지분 매집이 완료된 1월 말부터 주가가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2월 14일 현재 27만 7000원까지 올랐다. 결과적으로 하락세에 있던 KCC 주식을 현대중공업이 웃돈을 주고 대량 매집해 주가 상승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KCC는 지난 1월 15일 자사주 51만 2310주를 처분했다. 1월 16일부터 22일까지 현대중공업 계열이 사들인 KCC 주식 52만 6000주와 비슷한 수치다. 만약 KCC가 내놓은 자사주를 현대중공업이 사들인 것이라면 KCC는 일주일 만에 1400억 원가량을 벌어들인 셈이 된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
지난 2003년 KCC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한 이른바 ‘시숙부의 난’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 경쟁에 뛰어든 ‘시동생의 난’이 있었다. KCC가 갖고 있는 현대그룹 계열사 지분은 정몽준 의원에 대한 우호지분으로 평가된 바 있다. 정상영-정몽준 조합의 결속력이 강해질수록 현 회장의 현대그룹 경영권 침공 가능성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도 드세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최근 업계 인사들 사이엔 ‘2003년엔 정상영, 2006년엔 정몽준, 2007년엔 다시 정상영 차례’란 말이 나돌고 있다. 정몽준 의원 측이 KCC 지분을 후한 값에 사주면서 KCC 지분구조에서 정상영 명예회장 우호지분 역할을 강화해주는 대신 지분 매각을 통해 얻은 실탄으로 KCC가 현대그룹 지분 매집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최근 KCC의 현금 보유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또한 정상영-정몽준 조합의 현대그룹 재침공 가능성을 부채질한다. KCC가 최근 공시한 자료들에 따르면 KCC 금고에 현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CC는 지난 1월 11일 주당 5000원씩 주주 배당을 집행했다. KCC 자사주는 1월 22일 현재 39만 5271주(3.76%)다. 이번 배당을 통해 KCC가 챙길 수 있는 현금이 20억 원 정도였던 셈이다.
지난 2월 17일 KCC는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에 신탁했던 주식을 신탁기간 만료에 따라 현금으로 반환받는다고 공시했다. 해당 금융기관들과의 계약 금액은 약 285억 7000만 원이었다고 나와 있다. 수백억 원의 현찰이 KCC 금고에 되돌아온 셈이다.
만약 재침공이 이뤄진다면 타깃은 어느 곳이 될까. 올 8월에 본격화될 현대건설 인수전에 눈길이 쏠린다. 현대건설이 현대상선 지분 8.6%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지분은 38.6%로 현대중공업 측 31%에 크게 앞선다. 현대그룹 역시 유상증자와 상황우선주 발행 등으로 수천억 원의 실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재계 일각에선 현대건설 매각작업이 사실상 노무현 정부 임기에는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과 KCC의 ‘지분 교환’은 현대건설 접수를 위한 ‘정씨 동맹’이 몇 년간 굳건할 것임을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에 통보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반투자가들 입장에선 현대중공업이나 KCC의 현대건설 인수가 호재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따라서 ‘주가에 대한 악재 요소’ 희석 차원에서 상대회사 주식 매입을 통한 주가 상승으로 주주들을 달래는 효과를 노렸다는 평도 있다.
상대사 주식 매입은 범 현대가 인사들의 ‘고토 회복’ 염원에 대한 말뚝박기인 셈이다. 이런 까닭에서 다음 정권에서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누구에게 더 유리할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벌써부터 한창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