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겨냥 직격탄, 의원들과 만찬 등 세력 확장 움직임…당내 회의적 시각 적잖아
#한동훈 전면전 나선 배경
검사 시절부터 법무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조선제일검’이라 불려온 한 대표의 입이었다. 그런데 정치 입문 이후 한 대표 행보는 이런 별칭과는 거리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립각, 친윤계의 견제 등 여러 이유로 한 대표는 몸을 사렸지만 이는 그에게 자충수가 됐다. 한때 ‘이재명 대항마’ 영순위로 꼽혔던 한 대표의 존재감은 약해졌고, 보수진영에선 대안 찾기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최근 한 대표의 입은 다시 속사포 모드로 돌아왔다. “거칠 것이 없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러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더 이상 밀릴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긴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용산과의 전면전을 벌여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얘기가 더욱 많다.
그동안 여권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판은 금기로 통했다. “야권의 여권 공세용 무기일 뿐이고 결국 윤 대통령 탄핵으로 연결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여당 당대표이자 검찰 시절부터 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한 대표가 선봉에 서서 이 불문율을 깨부수고 있다. 연일 “김건희 나오라”고 외치는 야당의 공세와 견줘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라는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목소리다.
한 대표는 연일 김 여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한 대표는 10월 10일 인천 강화문화원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의 기소 판단과 관련, “검찰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그의 측근으로 불리는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이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면 특검법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도 “개인 의견을 제가 논평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검찰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로 대신하겠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이 발언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검찰 출신인 한 대표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언급했다. 과거 ‘검사 한동훈’이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라면서 “여론은 김건희 기소가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김건희 기소’가 국민 눈높이에 부합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친윤계 인사들이 ‘김 여사 공개 비판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두고 “김 여사를 공격하거나 비난한 게 아닌데요”라고 받아친 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가 필요하고, 국민의힘은 그런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당정 갈등 양상이 표출되는 것이 한 대표에게도 좋지 않다’는 질타에 대해서도 “유불리가 아니라 맞는 말을 해야 한다”면서 친윤계를 때렸다. 한 대표는 “친윤이든, 대통령 비서실이든 익명성 뒤에 숨어 민심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의견이 있으면 자기 이름 걸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발언은 10월 9일 나왔다. 한 대표는 이날 보궐선거가 진행 중인 부산 금정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이 ‘친한(한동훈)계 의원들이 김 여사가 활동을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보도가 나왔다’는 질문을 하자 “저희 의원들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몰랐는데, 저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김 여사의 공개 활동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한 대표의 스피커 출력이 높아진 것은 용산이 각종 논란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대통령실은 김대남 전 선임행정관의 ‘공격 사주’ 의혹,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내세우며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명태균 사건’이 동시에 터지면서 궁지에 빠졌다. 대통령실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고, 친윤계 역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거론되는 상황 때문인지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이 한 대표의 독대 요구를 수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최근 대통령실은 한 대표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수용, 10월 16일 재보궐 선거가 끝난 이후 일정을 확정하기로 했다. 앞서의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용산을 보호해줄 스피커가 없다. 한 대표와 싸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 같다”면서 “이는 한 대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10월 10일 접촉한 대통령실 관계자들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독대 필요성에 대한 참모들의 건의를 ‘며칠 전’ 수용했다고 한다. 정확한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 대표의 발언 강도가 세진 시점도 이 즈음이다. 한 대표가 ‘기울어져 있던’ 당정 관계를 바로 잡고, 보수 지지층에 대한 심리전에 나설 적기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10월 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의힘 당원이던 김대남 씨와 국민의힘을 극단적으로 음해해 온 유튜버 등의 공격 사주 공작이 계속 드러나는 걸 보면서 당 대표로서 당원들과 국민들께 송구한 마음”이라면서 김 씨의 용산 배후설을 은근슬쩍 건드렸다. 그리고는 “그런 공작들에도 불구하고 당원들과 국민들께서 압도적으로 (저를) 선택해 맡겨주셨다. 새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잘하겠다”고 적었다. 구태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닌 선명성을 가진 자신이 이제 여권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한 대표는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에 연루된 인물로 의심받는 명태균 씨와 관련해서도 10월 10일 인천 강화문화원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면서 “명태균 김대남 씨 같은 협잡꾼, 정치 브로커들이 정치권 뒤에서 음험하게 활개 친 것을 국민들은 몰랐을 것이다. 저도 몰랐다. 전근대적인 구태 정치”라고 성토했다.
앞서의 초선 의원은 “명태균 논란에서 한동훈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는 한동훈이 기존의 정치인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정치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또 다른 초선 의원은 “한 대표가 새정치를 들고 나오면서 여권 전체를 향한 선전전과 심리전을 시작했다”며 “발언 수준도 갈수록 세지고 있어 수세에 몰린 용산에 대한 우위 차지 전략으로 읽힌다”고 했다.
#한동훈 세결집? 글쎄
한동훈 대표는 필리핀·싱가포르 국빈 방문과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차 3개국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10월 6일 출국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깊게 패인 감정의 골을 반영하는 장면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한 대표는 앞선 9월 중순 윤 대통령의 체코 순방길 환송 행사엔 참석한 바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여권 수뇌부가 공항에 총출동한 여권의 중요 행사였는데도 한 대표는 자리하지 않았다. 체코 원전 수주 등 윤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를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고, 아세안 순방에서도 굵직한 결과가 예상돼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순방 행사부터 키우려 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이러한 계획과는 그 결을 달리 했다.
윤 대통령이 출국하던 시간에 한 대표는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후보 지원 유세를 하고 있었다. 같은 날 저녁 한 대표는 친한동훈계 의원 20여 명과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선 친한계의 세력화를 도모하자는 논의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는 만찬에서 “다음 모임은 50명으로 만들자”는 한 참석자의 말에 “자주 만나 소통하겠다”고 답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만찬 전에 한 대표가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렸다는 전언도 나왔다. 스킨십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한 대표였는데 완전히 달라진 스탠스였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한 대표가 평소와 다른 것 같다”며 “때가 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한 대표 만찬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한동안 한 대표가 위축된 태도를 보였는데, 이날 모처럼 고무된 것처럼 보였다. 의원들 개개인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면서 악수를 했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이어 10월 7일에는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오찬을 했다. 원외 위원장들에겐 지구당 부활을 거듭 약속했다. 이들의 마음을 잡기 위함이었다. 오래전 잡았던 격려 모임이라지만 원내외 인사들과 이틀 연속 대규모로 회동한 것은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세력이 모자란 한 대표가 당내 지분 확대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선 친윤계를 향한 선전포고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권에서는 용산이 궁지에 몰렸고 한 대표의 기세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대체로 인정하는 기류다. 하지만 친윤계는 물론 중도성향 의원들 중 상당수는 최근 한 대표 행보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민주당을 필두로 야권이 대통령 탄핵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마당에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실에 총구를 겨누는 것을 넘어 세 확장에 나서는 게 적절하느냐는 이유다.
계파색이 짙지 않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10월 10일 한동훈 대표를 겨냥, SNS에 글을 올려 “김 여사에 대한 악마화 작업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해적 발언을 삼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 기소 판단과 관련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주문한 것을 두고 하는 비판이었다.
그는 “수사가 객관적 사실과 법리에 근거해서 결론 내는 거지 국민 눈높이에 맞추라는 식은 법무부 장관까지 했던 사람의 발언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어 “법과 원칙에 맞는 수사 대신 여론재판을 열자는 것인가”라며 “지금은 법리와 증거에 기반한 수사에 따라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릴 때”라고 했다.
친윤으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도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한 대표의 김 여사 활동 자제 요구에 대해 “그런 부분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라며 “대통령 임기가 2년 반이나 남아 있는데 한 대표는 공개적이나 비공개적이나 측근 입을 통해서 계속해서 대통령을 비판하고 공격하고 있다”고 한 대표를 때렸다.
친윤계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 임기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한 대표가 세 결집을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동참할지 의문이다. 만찬 자리에 갔던 20명 중에서 ‘찐’ 친한은 얼마나 될까”라면서 “이를 한 대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재보궐 선거 이후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점쳤다. 국민의힘 원로들은 한 대표의 세력 확대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전직 중진 의원 말이다.
“야당이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를 흔들어대는 의도는 정의실현이 아니라 정파적 이익 구현이라는 것을 한 대표가 모를 리 없다. 야당이 날을 세울 때는 일단 방어를 하는 게 여당 대표의 책무인데 대통령실을 향해 공세를 펴는 것은 자기 이익 추구 정치에 불과하다. 최근 한 대표 지지율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를 보수 지지층들이 너무나 잘 안다는 것을 방증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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