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백설공주)에서 변요한이 연기한 고정우는 그의 말처럼 정말 ‘처절하리만치’ 외로운 캐릭터다.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자신의 고향인 무천시에서 발생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면서 그는 친한 친구 2명을 살인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다.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고향에 남아 아들을 대신해 속죄하듯이 이웃의 멸시와 폭력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족보다 끈끈했던 이웃들의 악의 속에서 고정우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사라진 두 명의 친구를 찾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홀로 분투하게 된다.
“정우는 열아홉 살 때부터 10년을 복역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알고 있는 우정과 사회, 그리고 모든 문화는 열아홉 살에 멈춰 있는 상태예요. 그런 정우가 가지고 있는 간절함은 ‘나를 왜 살인자로 만들었어’의 원망이 아닌, ‘사라진 내 친구 보영이와 다은이는 어디 있냐’에 있죠.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답답한 지점은 ‘누명을 쓰기 전에 정우가 더 영악하게 대처했어야 했다, 제대로 복수를 해야한다’는 데 있는데, 정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원래 인생이 또 그렇게 ‘고구마’이기도 하고요(웃음). 하지만 저는 그래서 정우의 엔딩에 더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그 이후에도 이 친구가 더 잘살았으면 바라고요.”

“고정우라는 역할 자체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 홀로 고독과의 싸움을 해야만 했죠.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땐 제 자신인 변요한을 꺼내기도 하고, 캐릭터를 꺼내기도 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는데 고정우는 그런 것보단 우선적으로 지켜줘야만 했다는 점에서 약하면서도 참 특별했던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에겐 필살기가 있고, 나름의 인간관계가 있고 그런데 정우는 얘가 뭐만 하면 다들 ‘닥쳐’ 이러니 캐릭터들끼리 대화도 많지 않았고(웃음), 노상철 형사와 하설이만이 제 빛이었죠(웃음).”
그의 말대로 고정우의 곁에는 함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두 명의 조력자, 노상철 형사(고준 분)와 하설(김보라 분)이 있었다. 과거의 아픔 탓에 범죄자를 향한 철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던 노상철은 고정우를 만나 함께 진실을 좇아가면서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된다. 첫 만남은 삐딱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천시의 외로운 섬 같은 존재였던 고정우에게 노상철은 아버지이자 형처럼 그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된다. 노상철을 연기한 배우 고준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두고 “(연말 연기대상의) 베스트커플 상을 노리고 있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사실 현장에서 저와 고준 형은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찍고 있었어요. 시나리오의 흐름처럼 관계성이 변화하고 있었거든요. 정우와 상철이 친하지 않은 신에선 실제로도 서먹서먹했죠. 아무래도 각자 역할이 맡고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만도 버거워서 (친해지는 것보다) 거기 집중하는 시간이 더 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야기대로 친해지면서부터 많이 가까워졌어요. 지금은 관계가 진짜 너무 좋은데요, 만일 형이 ‘베스트커플상’을 그렇게 원하신다면 저도 동생으로서 당연히 따라가야 할 것 같아요(웃음).”

“사실 저는 무천시 주민들을 전부 용서 못 하겠는데요(웃음). 하지만 저희 드라마에서 다루고자 하는 건 그 용서의 여부가 아닌 것 같아요. 정우는 분명히 그 아픔을 잊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더 잘 걸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마치 히어로처럼 ‘내가 그런 누명을 썼으니까 권선징악을 할 거야!’라는 것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그런 부분에서 오는 강력함이 있는 것 같고요. 만일 정우가 다 해치우는 이야기였다면 지금 제가 결말에서 느끼는 여운은 없었을 테니까요(웃음).”
이처럼 결말 전까진 어두움 속으로 하염없이 침잠하는 이야기였지만 되새겨보면 현장에서의 즐거운 에피소드가 몽글몽글 떠오르기도 했다. 고정우가 열아홉 살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됐고, 바로 그 시점에 사건의 열쇠가 존재하는 만큼 고교 시절의 연기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기에 고정우와 그 친구들은 모두 한 번 씩 교복을 입고 연기해야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교복을 입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부끄럽다”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다시 그날의 촬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연기했을 것이란 게 변요한의 이야기다.

교복 연기 투혼까지 불살랐던 작품을 보내며 변요한은 최근 촬영이 끝난 영화 ‘파반느’의 2025년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영화 ‘그녀가 죽었다’에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 그리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까지 세 작품을 연달아 선보였던 그다. 2011년 데뷔 후 드라마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꾸준하고 안정적인, 그래서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준 그의 이 다음, 또 다음 스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무엇보다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변요한은 언제가 다시 또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할 작품을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제게 있어서 정말 특별한 한 해였어요. 이렇게 어려운 시기인데도 세 작품이나 대중들을 만났죠. 어쩌다 보니 몰려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요(웃음).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제가 정말로 벌거벗고 연기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장치도, 버프도 없는 그런 인물을 연기 해보고 싶었는데 정우를 통해서 할 수 있었던 거죠. 저는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려는 편인데, 만일 로맨틱 코미디 작품과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동시에 들어왔다고 해도 저는 이 작품을 했을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 있어 사명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