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온병훈이 외로운 법정 투쟁 끝 무죄를 선고받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올 전망이다. |
# 그때 그 순간
“하지 않아도 될 인생 공부를 제대로 했다”는 게 온병훈의 표현이다. 그가 연루된 사건은 2010년 8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대구와 대전시티즌 간의 K리그 홈경기. ‘경기에 져 달라’는 현역 선수 출신 승부조작 브로커 최 아무개 씨의 제의에 장 아무개, 조 아무개, 양 아무개, 안 아무개, 이 아무개 선수 등 당시 대구 선수들은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다. 대구가 0-1로 뒤진 채 맞이한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그라운드로 나설 때 장 선수가 전반전에 상대 골대를 프리킥으로 맞히는 등 좋은 활약을 한 온병훈에게 다가왔다. “오늘 골을 넣지 말라. 경기에서 우리가 지면 500만 원을 주겠다.”
후반전 중에도 장 선수는 계속 온병훈을 향해 눈치를 줬고, 참다못한 온병훈은 한마디했다. “형, 지금 장난 해?” 결국 대구는 1-3으로 졌다. 당시 온병훈은 종료 직전 만회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리고 잊었다. 온병훈은 유일하게 당시 정황을 부모에게 털어놓았다. 서울 모처에서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와 편의점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대구의 한 식당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 외동아들에게 따끔한 불호령을 내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때마침 그날은 온병훈의 생일이라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여 조촐한 저녁 식사를 했다.
그 후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온병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검찰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온병훈을 소환했다. 처음 승부조작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한 그였기에 “이참에 모든 문제가 싹 정리됐으면 좋겠다”며 여유를 부렸지만 상황은 금세 바뀌었다.
자진출두 형식이었다. 자신이 검찰 조사를 왜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소환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최악의 판결을 받았다. 원심은 장 선수가 검찰과 법정에서 주장했던 온병훈에 대한 500만 원 승부조작 대가 교부를 사실로 인정했고, 온병훈은 유죄가 됐다. 장 선수와 대질심문에서 온병훈은 “차라리 지금이라도 나한테 500만 원을 주고 그런 얘길 하라”며 절규했다. 나중에 장 선수는 “온병훈이 내 제안을 정말 장난인 줄 알고 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지만 파장은 컸다. 그 때 충격에 어머니가 쓰러졌고, 머리까지 다쳤다. 당시 대구의 홈경기 승리수당은 약 250만 원. 500만 원은 불과 2경기 승리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자칫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돈의 액수치고는 너무 적었다. 또 말 한마디의 파급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망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 잃어버린 시간들
검찰에 소환된 시점부터 완전 무죄가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7개월이었다. 다른 구단과 달리, 대구 구단은 2012시즌까지 선수로 등록돼 있던 온병훈에 대한 계약을 그대로 유지했다. 프로연맹 역시 선수 자격 영구박탈 징계 대신 ‘보류’ 처분을 한 상태였다. 온병훈이 워낙 완강하게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대한축구협회 황보관 기술위원장도 일본 J리그 오이타 시절, U-18세 유스 클럽에서 가르친 제자를 끝까지 믿었고 탄원서까지 써줬다. 축구 행정가로 활동하는 황보 위원장은 역시 축구 행정을 제2의 인생으로 설정한 온병훈에게 롤 모델이었다.
온병훈은 법원을 오가는 동안에도 운동을 쉴 수 없었다. 아마추어 축구 클럽 동호회에 나갔다. 그러나 외부 시선은 따가웠다. 주변에서는 “쟤 승부조작을 했다며?”라고 수군거렸다. 어쩔 수 없이 온병훈은 개인 훈련에 매진해야 했다. 풋살, 헬스, 수영으로 보강운동을 끊임없이 했고, 황보 위원장의 조언 속에 영어 공부에도 매달렸다. 간혹 승부조작에 연루됐던 선후배, 동료들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는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은 자살까진 생각지 못했지만 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온병훈의 곁을 떠났다. 수렁 속에 빠진 그를 끝까지 믿어준 건 부모님과 에이전트(TI스포츠 김승태 사장), 극히 일부 동료들이 전부였다.
“인간관계가 저절로 재정립되더라. 처음 문제가 터졌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도 돈 받았지?’라며 외면했다. 법원에서 무죄가 나왔을 때 ‘축하한다’고 하는 일부의 지인들도 있었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정말 어려울 때 내 옆을 지켜준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다.”
# 그라운드가 그립다
올해 3월 29일 창원지방법원에서 유죄를 받은 뒤 10여 차례 법원 출입을 거쳐 창원고등법원으로부터 최종 판결을 받는 날, 평소와 달리 그는 혼자 법원을 찾았다. 늘 동행했던 가족들도 이날만큼은 함께하지 않았다. 아들의 만류였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두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또 잘못 나오면 어떡하지? 원심과 같은 결과가 나오면 안 되는데.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물론 고등법원에서 또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대법원까지 투쟁을 할 생각이었지만 온병훈은 마치 형장으로 걸어가는 사형수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무죄라는 드라마틱한 판결이 나왔고, 온병훈은 비로소 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후론 매일 꾸던 악몽도 사라졌다. 이제는 ‘범죄자’란 수식어에서 자유롭기에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풋살을 하고 땀을 흘리는 동안 항상 가슴에 품었던 ‘축구를 다시 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도 되살아났다.
앞으로 온병훈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잃어버린 1년 반까지 포함하면 프로 생활 7년차. 중요한 건 대구 구단이 여전히 온병훈을 자신들의 소속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죄 판결을 법원에서 내린 만큼 선수 복귀는 문제없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잔여 연봉은 부차적인 사안이다. 몸 상태를 체크하고, 일이 잘 진행되면 내년 시즌부터 온병훈이 그라운드를 누빌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축구가 너무 절실하다. 장내 음악과 함께 에스코트키즈의 손을 붙잡고 그라운드로 들어선 순간, 잔디의 냄새를 잊을 수 없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뛸 수 있을 것 같다. 체력만 꾸준히 끌어올리면 된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