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 대선 승리를 위해 문재인 후보에 대한 실망감을 부각해 안철수 전 후보의 지원을 막아내겠다는 전략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새누리당 사무처의 한 간부는 최근 ‘오만, 자만, 느슨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당 지도부에 올렸다고 했다. “조직(새누리당) 근육이 수축은 않고 이완만 하고 있는데 이러다 2002년 이회창 꼴 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당시 정몽준-노무현 단일화 국면에서 정몽준이 단일화를 파기하자 한나라당에서는 ‘이겼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는데 결과가 뒤집혔다는 것. “‘2002년 재탕’이 우려된다”는 그는 “선거가 아직 10여 일이나 남았는데 그때 샴페인 터뜨릴 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문재인에 대한 실망감을 부각시켜 안철수 지원을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18대 대선 판세의 캐스팅보트는 안철수 전 후보가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안 전 후보의 칩거가 길어질수록 새누리당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될 수 있으면 안 전 후보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링 위에서는 치열하되 경기장 밖에서 안 전 후보가 계속 서성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첫 번째 전략으로 우호적인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보수 신문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문재인-안철수 ‘떼어놓기’에 나섰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되지 못한 탓을 문 후보에게 덧씌움으로써 안철수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감성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안 전 후보를 ‘팽(烹) 프레임’에 가두고, 악용당했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입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안 전 후보의 단물만 빨았다고 공세하고, 문 후보가 단일화 방법을 일임하겠다며 ‘맏형’ 이미지를 얻어놓고서는 말뿐이었다고 조롱하는 논평이 대표적이다.
실제 지방에 머물던 안 전 후보가 서울에 와 측근들을 다독이면서도 문 후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자 새누리당은 떼어놓기 전략이 ‘먹혔다’고 보고 있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두고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크게 실망했다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보도가 잇따르는 것,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가 안 전 후보가 적극적으로 문 후보를 돕지는 않을 것이란 취지로 조금씩 언론에 흘러나오는 것도 ‘박 우호 언론’이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문 후보를 ‘노무현 프레임’에 넣어 ‘실정의 동반자’로 네거티브하면서 안 후보에게 ‘실정 재탕의 동반자가 되지 마라’고도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근소한 차이든, 현격한 차이든 ‘박근혜가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되도록이면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의 대선이라면 앞서고 있다는 결과를 사방에 알려 밴드왜건효과(편승효과)를 노린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이기고 있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져주는 것, 즉 대세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정석인데 그 반대로 수를 두는 것이다. 여론이 안 전 후보를 불러내지 못하도록 하고, 안 전 후보가 사퇴해 단일화됐지만 그 상대가 지고 있는 것에 조바심을 내지 못하도록 미리 막는다는 취지다.
전통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새누리당은 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와 검증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책 대결로 가자면서도 네거티브를 놓지 못하는 것은 상처를 내는 것만큼 짧은 시간에 큰 효과를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첫 포격으로 문 후보의 평창동 빌라와 부산 부민동 4층짜리 상가의 다운계약서 의혹을 제기하면서 압박하고 나섰다. 문 후보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혀 실망감을 불러일으키고 안 전 후보에게는 같은 카테고리에 엮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 안철수 전 후보(왼쪽)와 문재인 후보.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안 전 후보는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라 국민에게 불려나왔다며 등장했는데 다시 그런 방식으로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면 새누리당 집권이 오히려 좋은 판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새누리당의 전략대로 안 전 후보가 잠행만 거듭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안 전 후보 스스로 백의종군을 선언했고, 과정은 어찌됐든 단일화한 후보이기 때문에 안철수 방식으로 문 후보를 도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 전 후보의 부활 시기가 늦춰질수록 문-안 두 사람의 공동유세 효과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박 후보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은 최근 개인 성명서를 통해 “문재인 안철수는 단일정당 창당 대국민 선언을 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진정한 쇄신을 이룰 수 없는 만큼 신당 창당 약속이야말로 강력한 쇄신과 통합의 결단이라는 논리다. 신 의원은 이 성명서 발표 직후 수많은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다. 안철수를 링 위에 다시 올려놓자는 신호로 해석된다.
민주당 전직 의원 74명도 “두 사람은 하나의 새로운 정치세력의 탄생을 통해 국민 여망에 적극 부응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신당 창당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안 전 후보 캠프의 조용경 국민소통자문단장이 최근 기자들과 만나 “안 전 후보가 앞으로 새 정치를 하려면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신당 창당을 언급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문-안 양측이 모두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없다며 호사가들의 아이디어라고 일축했지만 박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단일화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 만큼 무시만 할 수도 없게 됐다.
박 후보가 스스로 잘해서 점수를 얻기보다는 문-안 두 후보의 단일화를 헐뜯고, 안 전 후보의 등장을 지연시키는 전략으로 중도층 낙과 줍기에 나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 전 후보를 지지했지만 문 후보에게 흘러가지 않은 ‘관망 표’가 박 후보 손을 들어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선우완 언론인
수첩 없으면 ‘불안불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각 방송사가 제안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양자 토론을 사실상 거부했다. SBS는 지난 11월 27일, KBS는 11월 29일 각각 양 후보에 토론을 제안했다. 이에 문 후보 측은 흔쾌히 응했지만, 박 후보는 ‘유세일정’을 핑계로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후보가 ‘양자토론’을 기피하는 내막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고 있다. 박 후보로서 양자토론이 가장 부담되는 대목은 역시 현재까지 대선 레이스에서 수위를 점하고 있는 여권 후보라는 점이다. 또한 박 후보가 여권 후보로서 상대 후보의 거센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내공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점은 지난 11월 26일에 있었던 방송3사 TV단독 토론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자 토론이 아닌 비교적 부담이 덜한 단독 토론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는 전체적으로 많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기본적인 정책구상과 자신의 공약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준비된 수준’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특히 박 후보는 토론회 내내 자신을 향한 ‘압박’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 당 관계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는 후문이다. 공약과 관련한 여타 패널들의 평이한 질문에는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차분히 답해 나갔지만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화법으로 자신을 몰아세운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질문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 후보는 자신의 ‘경제 민주화’에 대한 공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홍성걸 국민대 교수의 ‘재원 마련의 현실성’에 대한 즉흥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증세를 하지 않아도 기존 예산을 절약해서 실행할 수 있다”는 다소 일반적인 답변만 내놨다.
만약 양자 토론이 진행될 경우, 문재인 후보가 시종일관 극심한 ‘압박’으로 박 후보를 몰아세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구나 생방송 토론회의 경우 돌발질문과 그에 따른 복잡한 상황변화가 예상되는데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고있는 박 후보가 과연 그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기간 내내 각종 국정현안과 수치 등을 꿰고 있는 문 후보가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져 물을 때 박 후보가 과연 거기에 대응, 또는 그것을 넘어서는 수준의 논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대표는 “박 후보의 단독 토론은 일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어조는 대선 후보로서 손색없었지만, 정책을 설명하는 디테일한 측면에서 많은 약점을 노출했다. 시종일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여권 후보로서 맞대응할 만한 내공이 있어야 하는데 벼락치기로 준비해서 될지는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