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수야 나와라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근혜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안철수 모시기’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11월 6일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 논의를 위해 첫 회동할 당시 모습. 최준필 기자 |
현재 민주당 내부 기류는 “안철수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안 전 후보의 ‘화끈한 지원’ 없이는 대선 승리가 난망하다는, 일종의 ‘안철수 유도론’이다. 이번 대선은 표면적으로 보면 박근혜-문재인의 양자대결이지만, 여야후보는 사실상 ‘안철수 프레임’에 휘둘리고 있다. 문 후보는 안철수 모시기를,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안철수 갈라치기를 대선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문재인의 안철수 품기 전략과 안철수 프레임의 변수를 짚어봤다.
절치부심, 정권교체라는 목표 하나로 지난 5년간을 달려온 민주당이 대선 2주 정도를 앞두고 흔들리고 있다. 비관론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공식선거운동 초반 시그널은 빨간불이다.
요인은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당내 전문가들은 “‘정권심판론’과 ‘단일화’가 대선승리의 ‘절대반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은 지난 총선 때 이미 무참하게 깨졌다. 이번 대선에서도 ‘모든 게 이명박 대통령 탓이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단일화 효과도 그 자체로서 표심을 움직이는 동인이 되지 못한다. ‘단일화 만능론’의 맹점은 지난 총선 때 민주당 지도부가 진보진영과의 야권 단일화로 진을 빼 정작 자기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내부 반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 개인의 답답한 행보에서 그 이유를 찾는 사람도 있다. 선거 상황이 결코 유리하지 않은데 느슨한 대응만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답답하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핵심요직을 지낸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실장과 일할 때 정말 힘들었다. 문 실장이 무슨 결정을 내릴 때 신속하게 하지 못하고 계속 미적거리는 것 때문이었다. 결정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특히 이번 선거과정에서 인적쇄신 등 당 개혁에 대한 신속한 결단이 한 번도 없었던 점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재 민주당의 대선 분위기는 “위기론 정도는 받아들이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는 정도로 모아진다. 사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을 때 민주당 사람들 중 상당수는 ‘큰일 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안철수 사퇴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와의 격차가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다소 안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지도부는 허둥대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일까. 민주당 사람들 대부분은 ‘이대로는 못 이긴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 매일 ARS 조사를 돌리고 있는데, 언론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비해 격차가 좀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래서 매일 오전 8시 열리는 선대위의 ‘상황점검회의’의 긴장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결국 민주당의 타개책은 ‘철수 찾기’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지도부는 “안 전 후보가 적극 결합하지 않으면 진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민주당은 아직 공개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안 전 후보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 안 전 후보를 언급할 때 ‘안철수 후보님’이라고 꼭 존칭을 붙이고, 문 후보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철수 후보님의 희생적인 결단’이라며 공치사에 여념이 없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의 선거 전략은 언제나 ‘내 상품이 이러니까 사 주세요’가 아니라 ‘남의 물건은 너무 안 좋으니 차라리 내 것을 사세요’라는 안일하고 색깔 없는 것이었다. 지난 총선의 참패가 그 결과를 잘 말해준다. 그런 민주당에게 국민들은 ‘남 욕 하지 말고 너도 한번 잘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기대기 반사이익’ 전략은 개선되지 못할 것 같다.
현재 민주당은 ‘안철수 모시기’에 선거의 사활을 건 듯 보인다. ‘이미 후보는 정해졌으니 모든 걸 다 내주고라도 안철수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안철수 모시기’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도 쏟아진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대통령직인수위와는 별도로 새정치위원회를 꾸리고, 안 전 후보에게 새정치위원회 위원장을 맡겨야 한다는 구상이다. 문 후보가 인수위를 중심으로 정부개혁에 나서고, 안 전 후보가 새정치위원장으로서 정치와 정당개혁을 맡는 ‘쌍끌이 전략’인 셈이다. 정치 개혁의 키를 안 전 후보에게 쥐어주고,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안 전 후보도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신당창당론으로 이어진다. 안 전 후보에게 직접 신당의 강령과 당헌당규 제정 등의 설계를 맡겨 새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런 밑자락은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신기남 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안철수 대선 후 신당을 공약하라’고 촉구했고, 김부겸 등 선대위의 일부 인사들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통합국민연대’이라는 구체적 이름과 계획도 나온다. 여기에도 안 전 후보 참여가 핵심이다. 문재인 후보측은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로 대표되는 미래세력뿐 아니라, 진보, 노동, 시민사회세력에 합리적 보수세력까지 여섯 갈래가 하나로 합쳐지는 형태”의 정치결사체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안 전 후보가 여기에 합류한다면 대선 이후 ‘대통합국민연대’를 새로운 국민정당 형태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에서는 대선 전 문 후보와 안 전 후보가 만나 대선 이후 신당창당을 공개 선언하고 대선을 통해 국민 추인을 받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이는 현재의 민주당에 안 전 후보가 들어올 수는 없기 때문에 민주당 전체를 포괄 또는 부분 ‘정리’해서 신당을 만드는 게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민주당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민주당은 안 전 후보가 가급적 빨리 등판해 주기를 바라지만 자칫 그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간 더 큰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말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다. 민주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에 대해 “문 후보가 안 전 후보에게 특사를 보내 그에게 (신당창당 등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프리핸드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으로 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특사라는 얘기도 있다. 박 의원은 박선숙 전 의원과도 가깝기 때문에 충분히 특사로 써먹을 수 있는 카드다. 하지만 양쪽에서는 모두 부인하고 있다. 특히 안 전 후보가 워낙 예민하게 구는 바람에 문 후보측에서도 제대로 말을 안 하는 상황인 것 같다. 박영선 의원 외에 조광희-노영민 비서실장 라인도 물밑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양측 교감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 선택은 안 전 후보에게 달렸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단 안 전 후보는 12월 3일 캠프 해단식을 갖는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선거 지원 여부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6면 기사 참조). 현재로선 당의 누구도 안 전 후보의 지원수위와 시기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장외에서 조건부로 돕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정도다.
‘대선의 10일은 총선의 100일에 맞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통령 선거는 마지막까지 극적인 돌발변수가 많이 발생한다. 남은 2주 동안 몇 번은 판세가 요동칠 것이다. 그 중심에 ‘안철수 등판론’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뻔한 각본에 박수 치고 감동 받을 유권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민주당 주변에서는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문재인이 우리의 당당한 대선후보’라고 외치며 떳떳하게 국민심판을 받는 게 낫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런 진정성이야말로 줄듯 말듯하며 애태우는 안철수 프레임을 잡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지적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