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금강산 골프장 착공식에서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 | ||
김윤규 전 부회장은 지난 3월 20일~24일 아천글로벌 사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 최승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아천글로벌의 평양·개성 사무소 개설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래와 수산물 등 무역사업에 어느 정도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아천글로벌은 또 북한 노동자의 해외 인력 송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기술인력센터를 세워 북한 노동자를 교육시킨 뒤 두바이 등 해외 건설현장에 송출한다는 계획. 여기까지는 현대아산의 사업 영역과 부딪치지 않지만 문제는 사업영역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듯하다는 데 있다.
아천글로벌은 지난해 8월 설립됐다. 자본금 5000만 원. 현대아산 시절 김 전 부회장의 최측근이던 육재희 전 현대아산 상무가 대표이사다. 결국 고소 취하로 해결됐지만 지난해 11월 대북사업 사기 스캔들에 휘말렸던 김 전 부회장의 아들 진오 씨도 이사로 올라가 있다.
법인등기부상 아천글로벌 설립 목적은 종합건설업, 자문 알선 중개, 무역 및 여행 관광개발 및 여행, 골프장개발운영, 부동산개발 사업 등 대북사업과 관련한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현대아산과 갈등을 빚을 요소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아천의 회사 정관 중 ‘골프장 개발 운영’에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개성공단에 건설을 추진 중인 골프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 지난 2월 김 전 부회장이 독자적으로 개성 골프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현대그룹 측을 긴장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김 전 부회장의 독자 대북사업이 구체적 행보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8월께로 보인다. 김 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26~29일 현대아산 부회장 사퇴 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었다. 당시 방북 이유는 북한에 지원한 연탄보일러의 운용 실태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귀뚜라미 측이 사업 일정상의 이유로 방북을 취소해 독자적인 방북이 됐다.
어쩌면 김 전 부회장 측 말대로 롯데관광과는 연관 없이 ‘독자사업’과 연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등기부상 아천글로벌의 성립일이 지난해 8월 23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동행했던 육재희 전 현대아산 상무도 이미 아천글로벌의 대표이사였다.
김 전 부회장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일단 느긋하다. 김 전 부회장의 사업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사업은 사업권을 갖는 대신 북한에 ‘당근’을 줘야 하는 점 때문이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부회장은 자금이 없는 것으로 안다. 대북사업의 불투명성 때문에 펀딩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경협자금을 끌어와야 하는데 인력송출의 경우 국내 실업 상황 등 여론이 좋지 않을 듯하다. 골프장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허가권’을 쥐고 있는 통일부도 “거래질서 존중”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금껏 현대아산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독점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지난해 9월 개성골프장 사업권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현대 이외의 제 3의 어떠한 업체도 골프장에 진출할 의향이 있으면 사전에 현대와 협의하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롯데관광의 개성관광 참여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측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다.
반면 김 전 부회장의 저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몇몇 인사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한 사람에 대해서 북한 당국이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서 “현대 측으로선 방해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김 전 부회장이 현대아산에서 ‘퇴출’ 당할 때 북측이 보인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구구한 뒷말을 남기기도 했다.
북측은 롯데관광의 개성관광 진출 요청에서 보듯 ‘사업다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2005년 김 전 부회장 사퇴 때 북한이 보여준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도 감안해야 한다. 북측은 금강산사업이나 개성 사업의 파트너인 현대아산이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금력’이 떨어지자 남측의 다른 경쟁업체를 등장시키려는 제스처를 계속 내보이고 있다. 복수경쟁 체제를 통해 ‘수익 극대화’에 나선 셈이다. 바로 이 점이 대북사업 접점에서 북측 인사와 그들의 생리에 훤한 김 전 부회장의 ‘부가가치’가 커지는 대목이다. 때문에 대북사업에서 ‘김윤규 변수’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인 셈이다.
아직은 ‘교두보’ 확보에 불과한 김윤규 전 부회장의 행보가 앞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대북사업에 어떻게 맞물릴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